나는 수영을 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왔다.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흑인은 물에 뜨지 않는다, 우리와 다른 인종이다, 수영선수 중 흑인이 한 명도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시골 아이들이 대게 그렇듯 어릴 때 내 얼굴은 무척 새카맸다. 중학교 1학년 때 인천으로 전학 온 내게 ‘아프리카 심’이란 별명이 붙었다. 게다가 나는 곱슬머리다. 어쩌면 나는 황인종이라기보다는 흑인에 가까울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황당하지만 사춘기 무렵엔 별의별 생각을 다 하기 마련이니까.

6년 전 지인들과 바닷가에 갔을 때, 친구가 수영하는 모습을 봤다. 부럽고 멋졌다.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어떻게 수영을 할 수 있어? “누구나 배우면 다 하죠” 그는 내게 먼저 물에 떠보기를 권했다. 일단 물에 뜨고 나면 물이 안 무서워지고, 그래야 수영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의 말은 맞고 내 말은 틀렸다. 아니 그 선생님의 말은 틀렸다. 흑인이 물에 뜨지 않는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단지 인종차별로 흑인들이 물속에 몸을 담글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몸에 근육량이 많거나 뼈가 무거우면 보통 사람보다 물에 잠기는 부분이 더 많겠지만 그렇다고 가라앉을 정도는 아니고, 그 차이도 인종에 의한 것보단 사람 간의 차이가 더 크다.

 
사람이 물에 뜬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몸의 밀도가 물의 밀도보다 작기 때문이다. 밀도는 물질을 이루는 입자가 얼마나 조밀하게 붙어있는지를 나타내는 말로, 같은 무게의 솜과 금의 부피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같은 무게일 때 금에 비해 솜의 부피가 훨씬 크다. 금 입자들이 솜에 비해 훨씬 조밀하게 붙어있기 때문이다. 이때 ‘금의 밀도가 솜보다 크다’고 말한다. 달리 말하면, 같은 부피일 때 무게가 더 많이 나가는 물질의 밀도가 크다.

밀도만으론 몸이 물에 뜨는 걸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 지구엔 ‘부력’이란 것이 있다. 액체에 어떤 물체를 넣었을 때, 중력은 물체를 잡아당겨 액체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그러면 액체는 물체가 들어오는 게 못마땅하기라도 한 듯이 반대 방향으로 밀어내려한다. 중력의 반대방향, 즉 위쪽으로 액체가 물체를 밀어 올리는 힘을 부력이라고 한다.

물체가 액체 속으로 얼마만큼 들어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밀도가 좌우한다. 물보다 밀도가 큰 것은 중력의 힘을 더 많이 받아 가라앉는다. 반면 물보다 밀도가 작은 물체는 중력보다 부력이 더 커서 뜨게 된다.

밀도의 기준은 액체상태의 물이다. 액체는 온도에 따라 밀도가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에, 4℃에서 물의 밀도를 1(g/ml)이라 정했다. 우리 몸의 밀도는 평균 0.97이다. 폐 속의 공기가 밀도를 작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겨우 0.03 작은 데다 우리 몸의 무게중심은 폐보다 더 아래인 배꼽 근처에 있다. 위로 미는 힘(부력)과 아래로 당겨지는 힘(무게중심)이 살짝 엇갈린다. 이 때문에 자칫 물속에서 균형을 잃고 기우뚱하기 쉽다. 물을 먹고 허우적거리게 된다. 낙담하고 수영하기를 포기한다.

나도 그랬다. 그날 친구가 가르쳐준 방법은 고개를 뒤로 젖히고 가슴을 내밀면서 발을 공중에 띄워 눕는 것이었다. 몸의 힘은 최대한 뺀 채로. 이때 무릎은 곧게 편 상태여야 한다. 무게중심을 폐와 일직선에 놓아야 균형이 맞는다. 폐의 부력을 최대한 이용하는 방법이다.

친구가 옆에서 몸을 받쳐줬다. 처음엔 긴장을 많이 해서 몇 번이나 눕다가 허우적거리며 일어났다. 하지만 결국 나는 물에 떴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같이 놀러간 사람들에게도 이 방법을 알려줬다. 그날 바닷가엔 사람 열 댓 명이 물 위에 둥둥 떠다녔다. 저마다 하늘과 구름을 바라보거나 눈을 감고 귀에 찰랑이는 바닷물의 소리를 들었다. 고요했고 신비롭고 충만했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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