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꽃 (15)

노동으로 흘린 땀이 마른 자국이 마치 꽃과 같아 소금꽃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예비)노동자들이 시민기자로 참여해 노동 현장이나 삶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일하고 있는 와중에도 진로 고민은 끝이 없다. 이 고민은 과연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와 잘하는지를 둘러싼 자아성찰인 동시에 관심을 기울이는 다양한 일자리들의 불확실한 전망과 열악한 처우를 불안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내가 꿈꿔온 분야의 일자리들은 고용 형태가 매우 불안정하다. 지금 직장에서도 난 7개월짜리 단기계약직이다.

단기계약직 혹은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의 수많은 촛불들은 고용유연화라는 태풍 앞에서 언제나 금방이라도 꺼질듯이 흔들리거나 허망하게 꺼질 수밖에 없다. 어느 웹툰 작가의 말대로 이들의 삶은 완성된 삶, 즉 ‘완생(完生)’이 아니라, 불안과 소외, 부당한 차별 대우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미생(未生)’인 셈이다.

임금노동자 세 명 중 한 명이 비정규직이라고 한다. 그것도 일용직은 제외된 통계다. 이들은 정규직에 비해 훨씬 적은 임금을 받으면서 훨씬 더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한다. 더욱이 중화학과 건설업계는 산재 발생 가능성이 높은 위험한 작업을 하도급 업체의 파견노동자들에게 맡김으로써 산업재해의 외주화를 시도하고 있다.

“우리 회사 소속이 아니니 보상해줄 이유가 없다”는 논리로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하는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이다. 결국 파견ㆍ용역 노동자들도 겉으로 보기엔 하청업체의 정규직 노동자이지만 사실상 파견근무라는 형태의 비정규직 노동자일 뿐이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다고 믿거나 직업의 귀천을 따지던 전근대의 추억이 아직도 남아있는 걸까? 최근에 국민의당 이언주 국회의원이 내뱉은 막말은 바로 그 전근대의 추억이 아직까지도 기득권층의 뇌리에 남아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일 테다. 그의 말에 의하면 학교 급식소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냥 밥하는 동네 아줌마”에 불과하다.

또 매일같이 학생 수백, 수천 명들에게 정성껏 조리한 음식을 내놓느라 손에 물기가 마를 시간이 없을 그들의 노동은 “잠깐 교육해서 시키면 그만”인 하찮은 노동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직업은 “부가가치나 생산성이 높아지는 직종이 아니”다.

이 의원이 말하는 ‘부가가치나 생산성이 높아지는 직종’은 아마도 이윤을 창출해 자본의 증식에 기여하는 활동, 특히 기업 중심의 경제계에 종사하는 직업군을 총칭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그의 의식을 지배하는 가치체계에서 밥을 하는 노동은 부가가치나 생산성을 높여주는 노동이 아니고, 그 둘은 수평이 아닌 수직적 위계질서에 속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가치체계를 적극 활용해 전자는 후자에 비해 열등하고 천한 노동이므로 후자와 동등하게 대우해줄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을 것이다. 자, 이제 노동의 가치를 측정하는 이 의원의 저울에 수많은 비정규직, 파견ㆍ용역ㆍ일용직 노동자들의 노동을 얹어보자.

우리는 그 결과를 주변의 수많은 ‘미생’들에게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 의원이 대변하는 기득권층의 논리로 그것을 풀어보면 이렇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가가치나 생산성을 높임으로써 자본 증식에 적극적이고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노동은 귀하고 가치 있지만, 그렇지 못한 노동은 하찮고 무가치하다. 그러므로 전자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높은 임금과 복지를 보장받을 자격이 있지만, 후자의 노동자는 비정규직으로 값싸게 사용해야 마땅하다.

어쩌면 그 논리는 우리의 무의식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을지 모른다. 나는 비정규직이 넘쳐나는 현실을 그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 가치체계가 합당하다고 여겨왔던 것은 아닐까? 나의 끝없는 진로 고민은 부당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싸우기보다는, 처음부터 안정된 고용이 보장돼있는 편한 길을 택하려했던 데서 생겨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강부경 시민기자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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