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꽃 ⑪

노동으로 흘린 땀이 마른 자국이 마치 꽃과 같아 소금꽃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예비)노동자들이 시민기자로 참여해 노동 현장이나 삶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7월 초가 결혼기념일인 우리 부부는 20주년 때부터 아이들을 떼어놓고 둘만의 섬여행을 하고 있다. 올해가 벌써 네 번째인데, 덕적도ㆍ굴업도ㆍ대이작도에 이어 이번엔 2박3일 여정으로 승봉도를 다녀왔다.

육말칠초의 섬 여행은 여행객이 거의 없어서 비용이 적게 들고 섬 전부를 내 것인냥 맘껏 느낄 수 있어서 ‘꿩 먹고 알 먹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아내의 고향은 강원도 원주 신림, 나는 전라북도 진안이다. 둘 다 산중에서 나고 자란 탓인지, 말 수가 적고 조용한 것이 서로 닮았다. 그래서 섬을 더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매해 5월이 오면 설레 틈이 날 때마다 인터넷을 뒤지며 섬을 탐한다. 아내는 밀려드는 파도에 갈매기가 말을 걸고 쏟아지는 햇살을 두 팔 벌려 따스하게 안아주는 바다를 상상하며 먹을거리와 준비물을 미리 챙기곤 한다.

올해 여행에서 화두는 ‘이사’였다. 몇 년 전부터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하고 싶었다. 훌쩍 커버린 세 아이들과 함께 살기에는 아홉 평 전셋집은 김밥 옆구리 터져나갈 듯이 좁았다. 대출조건을 충족해도 현재 보증금 3500만원으론 턱없이 부족했기에, 이사 할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연안부두에서 배를 타고 1시간 조금 넘게 달려 자월도를 거쳐 봉황새의 대가리 모양을 닮았다는 승봉도에 도착했다. 인천의 섬들은 형태만 다를 뿐, 한산하고 조용한 분위기는 거의 비슷하다. 숙소에 짐을 대충 풀고 곧바로 맥주 한 캔씩 챙겨 들고 바다로 나갔다. 백사장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이사 갈 집을 어떻게 꾸밀지 얘기하면서 간만의 여유로움을 즐겼다. 도시에서 지친 영혼을 인적이 드문 한적한 섬에 맡겼다.

여행 마지막 날, 저녁밥을 먹으며 아이들 끼니가 걱정돼 큰아들에게 전화했다. “아들, 끼니는 잘 챙겨먹고 있지?” “네.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낼 봐요 아빠” “응. 좋은 환경 만들어주지도 못했는데 건강하고 곧게 잘 커줘서 고마워” “좋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시잖아요. 저는 아빠가 자랑스러워요” 무능하고 부족한 나를 이해해주는 큰아들이 고맙고 기특해 울컥했다.

요즘 우리 부부의 마음은 부푼 풍선처럼 들떠있다. 비록 8000만원을 대출받아 계약한 열여섯 평 전셋집이지만, 아침마다 화장실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을 치르지 않아도 되고, 온가족이 빙 둘러앉아 도란도란 얘기하며 밥 먹을 수 있는 넓이의 거실을 생각하니, 흡족하다. 그동안 늘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살았다. 이제야 그 빚을 조금이나마 갚는 것 같다.

승봉도의 기운이 아직 남아있다. 내년엔 어느 섬이 우리 부부를 부를까? 어떤 화두가 우리 부부를 기다리고 있을까? 열심히 살자 1년을.

/심현석 시민기자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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