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희 인천여성회 회장
나는 ‘가족’보다는 ‘식구’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혈연이나 혼인으로 이뤄진 규정력이 강한 가족보다는 한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식구라는 표현이 훨씬 포용적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가족은 법적으로 규명되는데, 도대체 가족이 뭐 길래 법으로까지 규정하며 유지해가고 있는 것일까? 지인들에게 ‘가족 하면 떠오르는 생각’을 물었다. ‘안정감, 쉼, 밥, 배경’ ‘위로, 짐’ ‘미안함, 편안함, 내편, 명절’ ‘가장 편하지만 가장 어려운 존재’ ‘구속, 외로움, 충전, 또 다른 일터’ ‘부양의무, 권리보다 의무’ ‘버겁고 힘겹다.

나만 생각할 수 없는 관계’ ‘가깝고도 먼 사이, 사랑, 돈, 결혼’ ‘원한다고 생기지 않음, 밉다고 버릴 수 없음’ ‘인정, 무조건, 애증, 욕심’ ‘기대, 노동, 가면’ 등, 실로 다양했다. 누군가는 ‘긍정적인 면은 소속감, 안정감, 애정이고, 부정적인 면은 국가주의의 이미지 포장도구’라고 답하기도 했다.

가족은 법적으로 규명되고 관습적으로 유지되는 면이 강하다. 혼인·출산과 무관하게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관습적으로 누구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다고 생각해왔다. 그렇다보니 결혼하지 않은 사람, 아이를 낳지 않은 사람에게 ‘저출산’ 문제의 책임을 묻기도 한다. 그 반대의 경우를 생각하지 않는다. 결혼제도 밖의 출산이 인정된다면 어떨까? 동거하는 사람들도 가족으로 인정해주면 어떨까? 바뀐 현실에 대응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과거에 만든 법과 관습이 멍에가 되고 있지 않은가. 낡은 법과 관습을 바꿔야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부담감을 덜 수 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보라와 선우의 결혼이 난관에 부딪혔던 것은 ‘동성동본’이었기 때문이다. 동성동본이라는 말 속에 여성의 존재는 없다. 성은 가족이 아닌 부계혈통의 유지이기 때문이다. 동성동본금혼제도는 미풍양속이기에 유지해야한다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게 폐지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97년에 헌법재판소가 위헌임을 판결했는데 2005년에서야 폐지됐다.

이제 동성(同性)결혼도 합법화될 수 있는 게 아닌가.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면, 1989년 덴마크에서 세계 최초로 동성커플의 ‘시민결합’을 법적으로 인정했다. 시민결합은 혼인관계에 준해 배우자로서 권리와 상속, 세제, 보험, 의료, 입양, 양육 등의 법적 이익이 일부 혹은 온전히 보장된다. 2001년 네덜란드는 테오도시우스 법전 이후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최초의 국가가 됐다.

지난해 4월 1일 기준, 영국과 미국, 프랑스, 아르헨티나 등 20개국에서 동성결혼을 허용하고 있고, 시민결합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들을 포함하면 35개국이 동성커플의 법적 지위를 보장하고 있다. 한국의 군사법원이 단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현역 장교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던 지난달 24일, 대만에선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최고재판부의 판결이 나왔다.

세상은 사람들의 생각에 따라 달라진다. 법이 사람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법을 정해야한다. 가족제도는 차별을 내포하고 있다. 현재 가족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가족의 의미는 단일하지 않다. 가족의 의미를 다양하게 규정할 수 있는 사회ㆍ문화적 기반을 조성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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