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멀리서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가슴이 철렁했다. 벌떡 일어나 창밖을 내다봤지만 컴컴한 어둠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고양이 소리는 한동안 이어졌다. 나는 한숨을 쉬며 두 손을 모았다.

지난 1월 어느 오후, 집 앞 골목에서 내 앞을 지나가는 노란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평소 버릇대로 “이리 와” 하며 인사했다. 그랬더니 이 고양이가 내 뒤를 성큼성큼 따라오는 게 아닌가. 이런 일은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 물이라도 줘야겠다 싶어 계속 손짓을 했다. 도망갈세라 현관문을 연 채 물을 담고 있는데 어느새 고양이는 집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목이 말랐나보다. 물을 꽤나 많이 마셨다. 배도 고플지 모른다. 개의 식성과 습성은 잘 알지만 고양이와는 가까이 지낸 적이 없었다. 그때 국물멸치가 생각났다. 예전에 강아지와 함께 살 때 육수를 내고 남은 국물멸치의 살을 발라 강아지에게 주곤 했다. 소금기가 적당히 빠져 짜지도 않고 살도 부드러워 간식으로 ‘딱’이었다. 강아지도 무척 좋아했다.

▲ ⓒ심혜진
나는 국물멸치를 한 움큼 끓였다. 냄새를 맡은 고양이가 연신 야옹거리며 주위를 오갔다. 흐물흐물해진 멸치를 찬물에 헹궈 살을 발라 줬다. 고양이는 멸치를 한 마리씩 그릇에서 꺼내 바닥에 내려놓고 천천히 씹어 삼켰다. 배고플 때 정신없이 입에 밥을 밀어 넣는 내 모습을 떠올리니 웃음이 나왔다. 고양이에게서 교양과 품격을 느꼈다.

“맛있어?” “야옹”

세상에. 고양이는 대답도 하는구나! 거실 한쪽에 배를 깔고 엎드리기에 요를 한 장 깔아주었다. 잠시 뒹구는가 싶더니 이내 잠을 잔다. 코까지 곤다.

가만히 고양이를 바라보던 중 퍼뜩 정신이 들었다.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남편이 이 사태를 알면 뭐라고 할까. 쟤를 어쩌자고 집에 데려온 걸까….

남편이 퇴근했다. 역시나, 고양이를 보자마자 얼른 내보내라고 난리다. 고양이도 일어나 몸을 움츠렸다. “나가라고 해도 안 나가. 할퀴어서 손으로 잡을 수도 없어. 오빠가 한 번 내보내 봐” 고양이는 눈을 질끈 감고 남편과 나의 대화를 듣는 듯했다. 속이 상한 나는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씻고 나온 남편이 방문을 열고 여기저기 둘러본다. 고양이가 방에 있는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거실로 나가보니 현관문이 열려 있었고, 고양이는 없었다. “왜 문을 열어 놨어. 왜 나갔어…” 나는 엉엉 울었다. 이후로도 유독 추운 날엔 고양이 생각에 눈물을 찔끔거렸다.

세 달 후 집에 오는 길 비슷한 장소에서 그 고양이를 다시 마주쳤다. ‘아! 살아 있었구나’ 혹시 이번에 다시 나를 따라 온다면 어떻게 할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고양이 옆을 지나치는 순간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심장이 철렁했다. 이전의 눈빛이 아니었다. 잔뜩 주눅 든 채 경계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통통했던 몸집도 눈에 띄게 말랐고 털도 푸석했다. 뒤를 돌아보니 고양이는 편의점 앞을 잠시 기웃거리다 이내 골목으로 사라졌다. 마음이 한없이 쓸쓸했다.

고양이가 우리 집을 다녀간 뒤부터 국물멸치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다짐한 것도 아닌데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다. 육수에서 국물멸치의 자리는 액젓으로 대신하고 있다.

크레타 섬을 여행하는 작가가 SNS에 글을 올렸다. 그곳의 길고양이들은 절대 사람을 피하지 않는단다. 아무도 해치지 않기 때문이다. 내 슬픔과 죄책감의 뿌리도 여기에 있다. 고양이의 눈빛을 변하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낯선 이를 믿고 따르던 고양이에게 나와 우리 동네 사람들은 무슨 짓을 한 걸까….

사람 살기도 힘든 세상이라 한다. 그래서 더욱,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캣맘이 될 용기도 없다. 그저 오늘도 무사하기를, 기도한다. 고양이를 위한 건지 나를 위로하기 위함인지 알 수 없어 공허하고 헛헛할 뿐이다.

※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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