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허우범 시민기자의 ‘사라진 도시를 찾아서’ <1> 타클라마칸사막 속 ‘흰 양의 마을’

▲ 오토바이로 사막 속 마을을 찾아가고 있다.
“사막 한가운데 당나라 시대의 마을이 그대로 있습니다”

귀가 번쩍 뜨이고 온몸이 화끈거린다. 정말 사실일까. 믿기지 않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 정보를 알았으니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왕복 1000Km(킬로미터 )거리를 번개처럼 달려 어렵게 출입허가증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아무도 온 적이 없다니, 몸은 더욱 안달이 나서 주체할 수 없을 지경이다.

들뜬 마음으로 사막 속의 마을을 향해 출발하려는데 갈 수 없단다. 사막길 20Km를 왕복하기에는 연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시골마을이라 주유소도 없다. 어이없다는 말은 이런 때 하는 것인가. 모든 준비가 끝났는데 정작 구하기 쉽던 휘발유를 못 구한다니. 어렵게 받아낸 허가증도 소용이 없다는 말인가. 망연자실할 때, 마을 사람들이 오토바이를 가져왔다. 무척 고마운 마음에 입맞춤이라도 해주고 싶다.

3000년을 산다는 호양목(胡楊木)들이 즐비한 모래산을 달린다. 거친 사막은 쉽게 길을 내주지 않는다. 넘어지고, 쓰러지고, 밀고 당기며, 여기저기 상처가 아릴 때서야 사막 한가운데 경이로운 풍경이 드러난다.

“아! 마을이 그대로 잠들어 있네”

진짜 그랬다. 동남쪽 성벽에 있는 자그마한 문을 들어서자, 1000년을 넘게 내린 모래눈이 마을을 오롯이 품고 있었다. 이엉을 얹은 지붕은 모래의 무게를 못 이겨 주저앉고, 화석 같은 서까래만 공룡의 뼈처럼 누워있다. 부서진 흙담은 모래를 털어내고 겨우 얼굴을 내민 울타리에 의지한 채 몸을 추스르고 있다.

▲ 당나라 시대의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
순간, 어린 시절의 풍경이 스쳐간다. 꽁꽁 언 손을 녹이며 자고 난 이른 아침. 밤새 아무도 모르게 내린 함박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은 채, 새벽 왕자에게 첫 발을 딛게 하던 그때 그 벅차오름. 성벽의 메마른 나무문을 열고 둔덕에서 내려다보는 마을의 첫 느낌이 마치 그와 같았다.

시간이 정지한 무채색의 도시를 유채색의 나그네가 배회한다. 아무도 깨지 않은 새벽길을 걷는 그 느낌이다. 이글거리는 태양에 모래조차 숨죽인 고요가 온몸을 전율시킨다. 순간, 귀가 아프다. 아, 1000년의 정적을 깨는 발자국소리가 그립다.

울타리 너머로 부스스한 차림의 청년이 사르르 사립문을 열 것만 같다. 잠 없는 노인 두세 명이 고샅길을 지나는 나그네를 긴장하며 볼 듯하지만, 어디에 있는지 보이질 않는다. 아침밥 짓는 연기도 오르지 않고,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아낙도 없다. 성깃한 울타리 사이로 짐승에게 먹이를 주던 아이들은 또 어디에 있는가.

이곳 고성의 이름은 ‘아치커 카오치커(阿其克考其克)’다. ‘쓰고 깔깔한 양’이라는 위구르 말이다. 성의 이름치고는 좀 이상하다. 다른 뜻은 없을까. 안내인도 모른다고 한다. 위구르 말 ‘아커 카오치커(阿克考其克)’는 ‘흰 양의 언덕’이라는 뜻이다. 훨씬 멋지다. 중국인들이 위구르어를 한자로 음차(音借)해 표기하는 과정에서 전혀 다른 뜻으로 바뀐 것은 아닐까.

▲ 1000년이 넘게 내린 모래바람에 파묻힌 마을 모습.
아무튼 고성의 이름으로 미뤄볼 때, 주변에 목초지가 있어서 양을 많이 키운 마을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양치기 목동들은 사라지고 1300년이 넘는 세월은 모래바람이 돼 목초지를 사막으로 만들어 놓았다.

모래 속에는 가옥 650여 채가 잠겨있다. 그중에 한두 곳을 발굴했는데, 실을 짜는 도구인 가락바퀴(紡輪)와 물레(紡錠)가 나왔다. 양털을 채취해 생활에 필요한 각종 모직물을 만들어 사용했을 것이다. 반지와 금잔, 옥(玉)과 비단조각도 나왔다. 당시 사람들이 먹었던 밀과 좁쌀도 나왔다. 샘플로 채집한 것이 이 정도면 꽤나 부유한 마을이었던 것 같다. 갑자기 이 마을의 모래를 모두 걷어내고 싶다. 어떤 사람들이 오순도순 살고 있었을까.

645년, 당나라 시대의 유명한 고승인 현장(玄奘)이 인도에서 불경을 가지고 장안으로 귀국하던 중에 이 부근을 들렀다. 그때도 이 지역에는 물길이 말라가고 있다고 했다. 물이 마르는 그날부터 지금까지 모래바람이 이 마을을 뒤덮은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물이 없으면 살 수 없다. 이 마을 사람들도 동쪽으로 길을 바꾼 강을 따라 떠나야했다. 정든 고향을 버리고 떠나야만 하는 마음이 얼마나 쓰렸을까. 마을 사람들은 사찰의 불탑을 돌며 간절히 기원했으리라.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초원에서 양들과 함께 행복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해달라고. 그리하여 조만간 고향 마을로 되돌아올 것을 고대하며 저마다 집터를 온전히 보존했으리라. 마치 어제까지도 살았던 사람들이 지난밤에 홀연히 빠져나간 것처럼.

‘흰 양의 마을’을 떠나기가 아쉬워 다시 한 번 뒤돌아본다. 아직도 1300년 전의 벗이 모래 속에서 불쑥 일어나 놀라움에 굳어버린 내게 손을 흔들며 인사할 것만 같다. 하지만 정지된 시간은 블랙홀이 돼 나그네조차도 빨아들이려한다.

▲ 마치 동화 속의 마을처럼 느껴지는 시간이 멈춘 도시.
오토바이 시동소리가 시간이 오래 지났음을 깨우쳐준다. 고요 속에 잠들었던 청각도 잠을 깬다. 순간, 고요한 통증과 편안한 소음 사이의 혼란함이 당혹스럽다. 1000여년의 시간 동안 우리는 얼마나 병들어 있는가. 1000여년의 시간 동안 우리는 또 어떻게 병들어갈 것인가.

회오리바람 사이로 선한 사람들이 소원을 빌던 불탑이 보인다. 1300년의 향기로운 미소가 뜨거운 바람결에 묻어온다. “강물이 길을 바꾸는 날, 나를 보고 고향을 찾아올지니…” (다음에 계속)

※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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