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사 시민기자의 청소년노동인권이야기 <1>

매달 둘째 주에 ‘이로사 시민기자의 청소년노동인권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이로사씨는 청소년인권복지센터 ‘내일’의 ‘일하는 청소년 지원 팀장’이며 중부청소년근로권익센터 상담원으로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과 상담, 권리구제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2009년에 결성된 인천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활동가이기도 합니다. 청소년 노동인권 상담을 하며 경험한 이야기를 글로 풀어냅니다.

▲ 이로사 청소년인권복지센터 ‘내일’ 일하는 청소년 지원 팀장
2015년 1월이었던 것 같다. 2014년에 한 청소년 노동실태조사 인터뷰에서 두 번째로 만났던 그가 ‘카카오톡’으로 연락했다.

“저… 뭐 좀 물어봐도 되요? 제가 편의점에서 일했는데요”

“아, 요즘은 배달 안 해요?”

“네, 배달은 그 때 이후로 안 하고, 할 게 없어서 편의점에서 알바를 했어요. 그런데 제가 일이 있어서 못 나가다가 그만 두게 됐는데, 그래도 알바비를 받을 수 있나요?”

“갑자기 그만뒀더라도 일한만큼 월급은 받아야죠”

“네, 알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 질문과 답변, 이렇게 간단한 도움으로 문제가 해결됐을까, 싶어 먼저 전화를 걸었다. 십중팔구 물어보기만 할뿐 포기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말이다. 역시나 해결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냥 포기하려한다고 덧붙였다. 전화기 너머의 표정이 보이지 않으니 어떤 마음으로 대답하고 있는지 알려면 조금 더 물어봐야 했다.

그는 갑자기 집안에 일이 있어 편의점 일을 못 나갔는데 못 나간다는 말을 못하고 출근하지 못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다보니 정말 못 나가게 됐다. 어차피 무단으로 그만 둔거라 일 한만큼의 돈을 달라는 말을 못하겠다고 했다.

“그래도 일한만큼의 임금은 받아야한다”고 설명했지만, 그는 이미 마음을 접은 듯했다.

“그렇군요. 말도 없이 갑자기 못나가게 돼서 곤란한 처지군요. 그래도 일한 동안의 것은 받아야할 것 같은 데, 생각이 바뀌면 연락을 주세요. 임금을 어떻게 계산해야하는지 차근차근 설명해줄게요”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으려다가 다시 물어야할 것이 생각나 통화를 이어갔다.

“그런데요. 왜 쉬겠다는 말을 못한 거죠? 쉬겠다고 말하면 지금처럼 월급을 포기하는 상황이 오지 않았을 것 같은데”

“사장님이 쉬는 건 없다고 처음부터 말했어요. 반드시 출근일을 지켜야한다고, 아니면 그만두라고 했어요”

“한 달에 한 번 휴가가 생기는 걸 혹시 알고 있었나요? 휴가를 쓰는 건 결근이 아니라 권리에요”

“아니요. 몰랐는데요. 알바에도 휴가가 있어요?”

“그럼요. 1주일을 만근하면 일당을 받으면서 하루 쉬는 것이 있어요, 주휴수당이라고 하는 건데 몰랐죠?”

“전혀요. 사장님이 그런 말씀 안 해주셔서…”

“그럼 일하는 동안 한 번도 쉰 적이 없는 건가요?”

“네. 그냥 한 달 동안 계속해서 일했어요. 그러다가 집에 일이 생겼는데, 쉬겠다고 하면 뭐라고 험한 소리를 할 것 같고, 그러다 그만두라고 할 것 같아서요. 그래서 말을 못했는데 안 나가니까 다시 가서 뭐라고 할말이 없어서요”

명치 아래서부터 답답함이 북받쳐 올라왔다. 문제의 원인을 알 것 같았다. 지난번에 전화로 물어봤을 때 받을 수 있는 임금이란 걸 알았지만 아마도 혼자서는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학교를 10년 넘게 다녔지만 어떤 교사도 아르바이트 할 때 연차나 주휴를 쓸 수 있다는 이야길 들어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권리를 이야기한다는 건, ‘나이 어린 녀석이 대드는 것’과 다를 바가 없고, 약속한 걸 안 지키는 이상한 사람이 되는 거란 걸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해봤자 바뀌는 건 없고 시간 낭비일 뿐이다’라는 걸 그동안 많이 목격했을 것이다. 청소년이면 겪어봄직한 수많은 ‘가정’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제 이 청소년에게 무엇을 말해야할까?

“쉬지도 못하고 일하느라 고생 많이 했네요. 혹시 일하면서 별 것도 아닌 일에 험한 말을 듣지는 않았나요?”

전화기 너머로 한숨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네, 험한 말보다 쉬지 못하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편의점은 일하는 도중에도 쉬는 시간이 없잖아요. 그래서 그만두게 된 것 같아요”

따지고 보면 그의 잘못이 아닌데 깊은 한숨은 그의 몫이 됐다. 상담자의 짧은 위로가 힘이 될 수 있을까? 이번 일을 해결하면 그 다음은? 전쟁터 같은 자본시장에서 자신을 방어할 수단을 갖지 못한 노동자는?

▲ 지난 5월 1일 부평역에서 열린 ‘2017 세계노동절대회’에 참석한 특성화고교 졸업생(왼쪽에서 세 번째)이 현장실습 제도의 문제점을 밝히고 있다.
아래 글은 이번 노동절에 ‘특성화고등학교 현장실습 중단과 근본 대책 마련’을 촉구한 한 특성화고교 졸업생의 발언이다. 이전에 <인천투데이>이 보도했던 ‘취업률 때문에 현장실습생에게 사장 성추행도 참으라는 특성화고’ 기사의 당사자이다.

“노동절에 일부러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특성화고 출신이고, 중소기업에서 두 달간 현장실습생으로 일했습니다. 저는 근로계약서 미작성, 사무실 내 흡연, 연월차 미지급, 언어ㆍ신체적 성희롱을 학교에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학교에선 저를 나무라고 회사에 계속 다니길 강요하고, 성희롱 신고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고, 퇴사한 것이 제 잘못인 양 귀교 교육마저 시켰습니다.

귀교교육을 진행하는 모든 선생님들은 퇴사한 저희들에게 ‘인내심이 부족하다, 끈기가 없다’는 얘기만 하시고, 인내심과 끈기를 기른다고 깜지 쓰기를 시켰습니다. 선생님들의 의도와 다르게 반성보다는 화만 났습니다. 저는 ‘난 잘못한 게 없고, 상처는 내가 받았는데 왜 학교에 와서까지 혼나야 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회사에 있었던 일보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 더 화가 났습니다.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고, 학생을 보호해야할 학교와 선생님이 권력과 권위로 학생을 찍어 내립니다.

이러다보니 선생님에게 마저 신뢰가 가지 않았고 배신감마저 들었습니다. 가장 가까웠던 어른인 선생님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니까 모든 어른들에게 거부감이 들고, 사회를 마냥 안 좋은 시선으로만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이런 학생이 저 하나뿐이겠습니까? 제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 중 몇몇은 졸업하고 나서 퇴사해야겠다고 얘기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또 다른 희생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있지만 말을 안 할 뿐입니다. 학교에선 권력에 복종하는 법을 가르치거든요. 다치고 죽지 않아도, 학생이라고 함부로 굴리고 싸게 부려먹으려는 현장실습 때문에 마음의 상처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의 상처를 사회초년생이 겪는 흔한 일쯤으로 치부하는 무감각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생기는 겁니다.

다행히 저는 용기를 내어 억울함을 말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현장실습과 성과 올리기에 급급한 학교 때문에 안타까운 일이 더 이상 생기지 않게 힘을 모아주세요. 현장실습을 중단하고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해주세요. 제 후배들은 오늘도 자신이 다음 차례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며 입사지원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가장 낮고 약한 자리의 불합리함에 귀 기울여 변화를 이뤄내는 진짜 민주주의를 보여주세요. 감사합니다”

이 졸업생의 발언은, 우리 사회가 청소년들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촛불의 승리를 이야기하는 요즘, 더욱 간절하게 말하고 싶다. 의무 이전에 권리가 먼저라고.

※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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