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쩍, 쿠쿵’ 천둥번개가 치더니 요란하게 비가 쏟아졌다. 한낮인데도 밤처럼 어두컴컴했다. 나와 언니, 남동생은 방 한가운데 모여 앉았다. 부엌에서 이제 막 들어온 엄마에게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다. 엄마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옛날이야기를 시작했다.

“스무 살 때, 고개 하나 너머에 오빠가 살았어. 어느 날 일을 마치고 오빠네로 심부름을 가는데 겨울이라 해가 빨리 졌어. 그래도 보름달이 떠서 사방이 훤하게 밝았지. 한참 가다보니 고개 너머에서 ‘어~허 너~여’ 하는 상여소리가 들리는 거야. 소리는 점점 커졌지. 산길에서 혼자 상여를 맞닥뜨리면 무섭잖아. 막 뛰었지. 올케언니가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 ‘언니, 저기서 상여가 와요’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상여가 안 오는 거야. 길이 여기밖에 없는데 말이야. 언니가 춥다면서 ‘이만 들어가자’고 했어. 그러고 보니 상여소리도 안 나더라고. 이상하다, 이상하다 하면서 마당에 들어서는데, 갑자기 주먹만 한 함박눈이 쏟아지는 거야. 이상하지. 분명 보름달이 떠 있었는데.”

 
초등학생 저학년이었던 나는 상여가 뭔지, 혼자 밤중에 산길을 걷는다는 게 어떤 건지 몰랐다. 심각하고 진지했던 엄마의 표정 때문에 으스스할 뿐이었다. 믿기 어려운 이 이야기를 자세히 기억하는 이유는, 엄마가 아직도 이날 일을 가끔 떠올리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말은 안 했지만, 이야기만 놓고 본다면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우선 상여소리는 소리가 전달되는 방식 때문에 나타난 현상일 수 있다. 소리는 온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전달된다. 낮에는 지표면 온도가 높아서 소리가 위로 올라간다. 하지만 밤에는 지표면이 공기보다 빨리 식어 소리가 위로 올라가지 않고 옆으로 휘어진다. 그래서 멀리서 난 소리도 크게 들린다. 상여소리는 엄마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멀리에서 들려왔을 것이다.

두 번째로, 뇌가 소리를 인식하는 방식도 생각해야한다. 큰 소리라고 잘 들리고 작은 소리라고 안 들리는 게 아니다. 뇌는 신호음과 소음을 구분한다. 신호음은 의미 있다고 여기는 소리이고, 반대로 소음은 의미 없는 소리다. 대체로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는 소음이고 말소리는 신호음이다. 물론 말소리라고 해서 모두 신호음이 되는 건 아니다. 와글와글 시끄러운 소리로 가득한 교실 안에서 다른 이야긴 잘 안 들려도 내 이름만은 마치 초능력처럼 분명히 들린다. 내 이름이 바로 신호음이다. 우리 뇌는 신호음을 ‘진짜 소리’로 받아들인다.

그날 밤, 엄마에게 상여소리는 신호음이었다. 귀를 기울일수록 소리는 더 크고 분명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또 그날은 주먹만 한 함박눈이 내렸다. 함박눈은 습도가 높은 날 내린다. 공기 중의 물방울은 소리를 반사하고, 소리는 증폭된다. 게다가 밤길이다. 심장 뛰는 것도 느낄 만큼 예민한 심리상태도 한몫했을 것이다. 이미 멀어지고 있는 상여소리를 가까이 다가오는 것으로 착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보름달과 함박눈은 어떻게 설명할까? 초저녁 보름달은 동쪽에 있다. 대체로 구름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한다. 편서풍 때문이다. 밤하늘이 어두웠던 탓에, 그리고 동쪽 하늘의 보름달에만 시선이 간 탓에, 몰려오는 먹구름을 보지 못했던 건 아닐까.

아무리 과학으로 해석해본들 엄마는 앞으로도 그날 일을 ‘여전히 알 수 없는 이상한 일’로 여길 것이다. 신비롭고 두렵기도 했던 그날의 강렬한 기억이 쉽게 지워지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 일은 적어도 엄마에겐 영원한 ‘전설의 고향’이다.

얼마 전, 3년 동안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던 배를 올리기로 결정한 날, 하늘에 노란색 리본모양의 구름이 나타났다. 비행기가 지나간 자국도, 조작한 사진도 아니었다. 기상청 관계자는 ‘권운’이라 설명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그 구름은 권운 따위가 아니다. 그 구름은 유가족의 슬픔, 시민들의 바람, 그리고 아이들이 보낸 메시지이다. 가슴 아프고 눈물겨운 전설은 이렇게 탄생한다. 그래서 전설은,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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