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속으로] 배태민 전국금속노조 인천지부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 비정규직지회장

<인천투데이>은 올해 새로운 코너로 ‘현장 속으로’를 마련했다. 다양한 직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만나 그들의 애환과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자 한다.

인천 연수구 송도에 위치한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주)는 (주)만도와 독일 자본 헬라(Hella)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2008년 설립됐다. 자동차 감지센서와 전자제어장치 등, 자동차의 첨단 안전장치 부품을 만든다.

이 회사의 노동자 250여명은 지난달 12일 오전 9시 연세대학교 송도캠퍼스에 모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금속노조 인천지부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 비정규직지회(지회장 배태민ㆍ이하 노조) 설립총회와 출범식을 개최했다. 조합원 300여명 가운데 대다수가 참여한 것이다.

노조 가입 대상자 345명 중 신입사원과 퇴사예정자를 제외하고 모두 노조에 가입했다. 배태민 지회장은 그 이유를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 로고가 새겨진 작업복을 입고 사원증을 달고 수년째 일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 회사 직원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오전 8시에 야간작업을 마친 배 지회장을 지난달 28일 회사 근처 커피숍에서 만났다. 푸석한 얼굴의 그는 “요즘 현장 근무와 노조활동으로 인한 과로로 면역력이 떨어졌다”고 했다. 최근에는 감기에 된통 걸려 응급실에 갈 정도였다고 덧붙였다.

불법도급, 원청회사에서 직접 업무 지시

▲ 배태민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 비정규직지회장.
“야간근무를 마치고 오전에 퇴근하면 보통 오후 1시께 자는데 요즘은 통 못 잔다. 신경 쓸 일이 많아서 그런 거 같다. 저번 주에도 감기로 낮에 응급실에 갔다가 야간에 출근하고 그 다음날 퇴근해 노조 회의를 하느라 쉬지 못했다. 때가 때인 만큼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무리할 수밖에 없다”

한숨도 못 자고 야간근무를 한 데다 아직 감기기운이 남아있어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쉬지 못하게 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그는 오히려 고맙다고 했다. 노조의 상황을 독자들에게 잘 전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노조에서 제공한 자료를 보면, 이 회사의 2015년 매출액은 4350억원이고, 영업이익은 360억원, 당기순이익은 246억원에 달했다. 최근에 더욱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배 지회장은 강조했고, 이런 고도성장은 제품을 실제 생산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력이 있어 가능했다고 했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동의절차 없는 일방적인 임금체계 변경, 2주 단위 12시간 주야 맞교대, 생산량을 맞추기 위한 비상근무조 운영, 강제 연차 사용, 연말 성과급 차등 지급 등, 차별 대우가 만연하다고 했다.

이 회사의 사무직과 현장기술운영직은 정규직이다. 그러나 생산직 350여명은 전원 비정규직이다. 생산직의 근로계약은 서울커뮤니케이션이나 에이치아르티시(HRTC)와 체결했지만,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주)가 작업 배치와 변경을 지시하고, 업무 지시와 감독, 근무태도 관리와 징계, 업무수행 평가, 연장근무나 휴일 등 노동시간 결정에 모든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는 제보와 증거가 넘쳐난다는 게 배 지회장의 설명이다.

배 지회장은 분명한 불법도급이고, 노조는 현재 법률적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모든 운영을 원청인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주)에서 직접 지휘했다. 내가 2011년에 입사했는데 그때도 그랬다. 2008년에 이 회사가 설립됐고, 2009년 12월부터 공장을 가동했다. 그때 입사한 조합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때부터도 원청의 지시를 받고 일을 했다. 그런데 그때는 뭔가 잘못된 것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왜냐면, 당시 사장이 ‘일을 잘하면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는 말을 해,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했다. 시간이 지나니까 그런 말은 없어졌고, 그 말을 했던 사장은 (주)만도로 인사이동을 했다”

현장에서 같이 일하는 원청 직원과 차별대우

▲ 전국금속노조 인천지부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 비정규직지회 출범식이 2월 12일 연세대 송도캠퍼스에서 열렸다.
많은 노조 결성 사례에서 보듯, 이곳도 비인간적 차별대우가 노조 결성을 촉발한 계기였다. 배 지회장은 “차별을 받아 생긴 울분이 노동자들을 한마음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원청회사 사장이나 직원들이 우리를 자기네 부하 부리듯 했다. 누가 봐도 불법도급이다. 참다못한 조합원들이 개인적으로 여기저기 알아봤다. 개인적으로 알아보니 한계가 있어, 금속노조를 찾았다. 예전에는 원청회사 직원들이 우리를 무시해도 먹고 살아야하니까 참았지만 이제는 그럴 때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300명이라는 인원이 모이기 쉽지 않다. 가입 대상자 중 90% 가까운 사람이 조직됐다. 신규입사자와 퇴사예정자를 제외하고 다 조직됐다. 한마음이어서 가능했다”

우리나라 헌법에 노동3권 보장을 명시한 지 반세기가 넘었지만 여전히 노동자들에게 노조나 노동법은 친숙한 단어가 아니다. 그들이 노조로 모이는 용기를 내는 건, 같은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상대의 행동에서 비롯할 때가 많다.

“현장에서 같이 일하는 원청회사의 기술운영직들은 기본적으로 도급회사 직원들한테 처음부터 반말을 한다. 아무리 친해도 예의를 지켜야하는 것 아닌가? 원청 직원들은 우리를 부를 때 이름을 부르지 않고 ‘야’라고 한다. 나이 차도 얼마 안 나는데 기분 나쁘다. 조합원들의 가장 큰 불만 중 하나가 이거다”

심지어 현장기술운영직이 여사원을 성추행한 사건도 있었다고 배 지회장은 전했다. 성적 모욕감을 느낀 여성이 회사에 신고했지만, 가해자에게 한 달 정직이라는 징계로 사건은 무마됐다. 자진 퇴사의 형식을 띄긴 했지만 그 여사원은 더 이상 회사를 다닐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조합원들은 정규직인 현장기술운영직과 자신들의 노동조건을 비교하는 경우가 많다. 현장에서 같이 근무하다보니 그들의 행태를 직접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장기술운영직은 사무직은 아니고 현장직이다. 현장을 관리 통제해야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실제로 하는 일이 없어 많은 조합원이 그들이 있어야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야간작업을 할 때 조합원들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일을 하지만, 그들은 사무실에서 자는 경우가 많다. 현장 안에 그들의 사무실이 있는데, 자지 않으면 인터넷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연봉은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도급계약 종료 통보, 노조탄압의 시작

▲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 비정규직지회는 지난 7일 인천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청회사를 상대로 ‘근로자 지위 확인 청구 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노조는 지난 3월 7일 인천지방법원 앞에서 원청회사를 상대로 ‘근로자 지위 확인 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실질적으로 지휘명령을 하고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지위에 있으면서도 형식적인 도급계약을 한다면 묵시적인 근로계약관계가 성립됐다고 보아 직접 고용을 하게 법으로 규정하고 있고, 그러한 판례도 있기 때문이다. 조합원들은 원청회사와 이미 묵시적 근로계약관계에 있으므로 ‘근로자 지위 확인’을 구해 원청이 ‘직접 고용한다는 의사를 하라’는 내용의 소장을 인천지법에 제출했다.

이뿐만 아니라, 노조 탈퇴 종용과 협박, 도급계약 종료, 해고 통보 등, 원청회사와 도급회사가 짜고 ‘노조 깨기 수법’을 사용한다고 판단한 노조는 고용노동부에 고소ㆍ고발장을 제출할 예정이다.

노조는 도급회사 두 곳에 단체교섭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도급회사 중 한 곳인 에이치아르티시(HRTC)는 지난 3월 2일 노조에 ‘사업을 포기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이 공문의 내용을 요약하면, ‘사업주의 일신상 사정(디스크 수술 후유증과 피로로 인한 대상포진으로 휴식과 치료를 요함)으로 도급계약 종료기간인 2017년 2월 28일자로 사업을 포기하려했으나, 원청인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주)의 요청으로 1개월 연장해 2017년 4월 2일자로 도급계약을 종료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부득이하게 근무 중인 직원들과도 4월 2일자로 근로관계를 종료하게 됐다’이다.

노조 간부들은 이를 노조 탄압의 일환으로 규정하고 합법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배 지회장은 아버지의 일을 돕고자 2008년에 인천으로 와 정착했다. 노조나 사회 현상에 별 관심이 없던 그는 이 회사에서 부당함을 경험한 뒤 지회장을 맡았다.

“원래 지회장을 할 생각은 없었다. 누군가 지회장을 안 하면 안 될 상황이었다. 나도 두려웠지만 다른 부서에서 먼저 노조 결성 준비를 해서 미안함과 책임감도 있었다. 지회장이라는 자리가 책임을 져야하는 위치다. 부담과 스트레스가 많다. 그러나 나를 추천해주고 믿어준 사람들의 눈빛을 기억하려한다. 조합원들과 함께 단단한 노조를 만들어 우리의 잃어버린 권리를 되찾는 게 목표다. 그걸 하기 위해 지회장의 역할을 열심히 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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