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신문>은 국제문제에 관한 세계적 진보권위지로 자리잡은 프랑스의 국제문제 전문 월간지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의 한국판 기사 가운데 일부를 선택해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는 세계의 신자유주의 문제뿐 아니라, 노동·외교통상·문화예술·기업과 금융·과학과 환경·정보통신과 미디어 등 깊이 있는 기사로 국제문제에 대해 균형적인 시각을 제공하고 있으며, 현재 전 세계 56개국에서 150만부가 발행되고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이라크의 군사개입을 강화시키고 이란을 공격할 계획을 꾸미고 있다. 미군에게 닥친 역경, 미국 유권자들의 비난, 대다수 국가의 반대 등에도 불구하고 부시는 노선을 바꾸지 않았다. 시아파의 위협이란 구실로 백악관은 호의적인 아랍 지도자들을 규합시키려 하지만 그들마저 미국 지도부를 신뢰하지 않는 듯하다.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2월호에 실린 히참 벤 압달라 엘 알라위(Hicham Ben Abdallah El Alaoui)의 글을 지난 호에 이어 싣는다.

아프카니스탄 전쟁에 참가한 나토군. <사진출처 http://cafe.naver.com/choi7401/1096>


위험한 도박

네오콘은 종파 간의 갈등을 이용하려는 미국의 전략을 건설적인 불안, 혹은 창조적 파괴라 미화시키지만, 한 냉정한 관계자는 훨씬 적절하게 ‘국가의 자살행위’, 즉 국가의 파괴라고 칭했다. 미국은 레바논과 팔레스타인에서 이런 결과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결국 인정했다. 워싱턴의 중동정책이 ‘파탄국가’를 구하기는커녕 파탄국가를 만들어낼 뿐이라고 아랍인과 무슬림이 결론짓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은 엄청난 파괴를 자행하고도 결국 실패로 끝났으며, 이스라엘은 그 지역과 세계에서 더욱 더 고립되었다. 이스라엘은 목표물에 전혀 타격을 주지 못했을 뿐 아니라 헤즈볼라를 무장해제 시키지 못했고 체포당한 군인들조차 귀환시키지 못했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경험했듯이, 레바논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에게 제기된 문제는 이런 패배를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판돈을 두 배로 올릴 것인가’였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첨단무기를 이용한 어마어마한 폭격을 과시하며 걸프전쟁(1990-1991)과 발칸 반도에서 내세웠던 ‘사망률 제로’를 지향하는 승리 모델이 효력을 상실했다는 점이다. 이제부터는 막강한 공군이 보장해줄 수 없고, 소중한 인명과 정치적 비용이 요구되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리와 국민의 호응을 끌어내는 것이 과제이다.

워싱턴은 이 작은 전쟁에서 맡은 역할 덕분에 이미 상당한 대가를 치렀다.
푸아드 시니오라 레바논 총리는 눈물을 글썽이며, 미국에게 이스라엘의 레바논 파괴 행위를 막아달라고 읍소했다. 푸아드 시니오라의 3.14그룹은 ‘백향목 혁명’ 덕분에 선거에서 승리했으며, 워싱턴은 ‘백향목 혁명’을 부시 대통령이 아랍 세계에 심어주려는 민주적 개혁의 전형으로 찬양하며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그러나 레바논에 따끔한 교훈을 주려는 이스라엘의 욕심 때문에 시니오라는 버림받고 말았다. 워싱턴은 한 달 동안의 휴전을 방해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파괴적 무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로 인해, 시니오라의 표현대로 레바논의 기반시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파괴되고 말았고, 레바논 정부의 힘이 크게 약화되었다. 덕분에 헤즈볼라가 중요한 역할을 맡겠다고 요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게다가 헤즈볼라는 대규모 반전시위를 절도 있게 주도하고 있다.

미국은 이런 내전에 끼어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레바논 군부와 보안군에 원조를 대폭 늘였으며, 보안군은 수니파와 드루즈파에서 신병 모집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 언론에서는 거의 보도되지 않지만 이런 정책은 아랍과 이스라엘 및 세계 언론에서 거센 비난을 받았다. 레바논 전쟁 이후로,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할 목적에서 동맹국을 배신하거나 정의의 원칙을 위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아랍 세계를 설득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워싱턴의 계획에 전혀 없던 이라크에서의 참담한 결과, 그리고 레바논에서 똑같은 결과가 빚어졌을 때도 불행한 우연의 일치쯤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유사한 역학관계가 팔레스타인에서도 나타나자 많은 학자가 미국 전략의 ‘모델’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예고된 혼란

 2006년 1월 선거에서 하마스가 승리한 이후로 미국과 유럽 연합은 이스라엘과 손잡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기아상태에 몰아넣어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거부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누구나 예측했듯이 이런 야만적 공격으로 사회적 질서가 붕괴되고 내분이 일어났다.

미국의 한 평론가는 고통 받는 팔레스타인 상황을 이렇게 묘사해주었다.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 군인과 거대한 전기 철조망에 둘러싸인 채 불결하고 과밀한 빈민가에 갇혀 살고 있다. 그들은 가자 지구를 떠날 수도 없고 그곳에 들어갈 수도 없다. 게다가 이스라엘군의 습격을 일상으로 겪어야 한다 … 웨스트 뱅크도 가자에 닥친 위기와 유사한 위기에 신속히 빠져들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가자와 웨스트 뱅크를 이라크의 축소판으로 만들어서 얻는 이득이 무엇일까? … 그렇게 해서 테러의 위협을 줄이고, 자살테러공격을 저지해서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일까?”

미국이 이스라엘의 지원을 받아, 파타당의 실력자 모하메드 다흘란과 관련된 제17부대의 전투원들에게 무기를 인도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보안부대 책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런 미국 무기의 인도로 하마스와의 군비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이스라엘이 그 지역에서 야망을 실현하는 데 걸림돌로 지목한 세 나라에서 사회질서를 붕괴시키고 내전을 촉발하려는 전략이 전개되었다. 팔레스타인인을 완전히 종속시키거나, 이스라엘이 탐내는 모든 땅에서 팔레스타인인을 쫓아내려는 우익 시오니스트 집단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런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그들은 거추장스런 이웃 국가들을 허약하게 만들려고 한다. 이런 광신도들이 이스라엘 정부에서 핵심적인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두렵기는 하지만 놀라운 일은 아니다. 워싱턴이 이스라엘의 진정한 친구가 되는 길을 착각하면서 그처럼 파괴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전략을 구사한다는 사실, 게다가 그런 전략을 입안까지 한다는 사실이 충격적일 뿐이다.
이스라엘의 한 평론가는 “2억의 아랍인에게 둘러싸인 인구 7백만의 작은 유대국가가 무슬림 세계 전체를 적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미국은 중동에서만 참담한 패배를 당한 것이 아니다. 동쪽 끝, 아프가니스탄에서도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9·11사태 이후, 오사마 빈 라덴과 알 카에다를 무력으로 추적할 권리가 워싱턴에 있다는 사실에 의혹을 제기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의 정치적 하부구조를 재편할 목적으로 나토까지 동원해서 방대한 군사 작전을 개시한 결정은 너무나 위험했다. 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무력의 결정적인 승리 이외에, 사회개혁에 필요한 장기적인 재정지원과 정책지원이 뒤따라야 했다.

그러나 미국은 신속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 북부동맹의 전쟁 지도자들에게 의지했고, 정부를 급조하려고 수입한 대통령에게 의지했다. 게다가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하느라 아프가니스탄에서 서둘러 손을 뗀 까닭에 알 카에다와 탈레반의 지도층을 제거하는 데도 실패했다. 빈 라덴과 아이만 알 자와하리는 지금도 여전히 카세트 테이트를 살포하고 있으며,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국경 양편을 지배하는 파슈툰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탈레반은 세력을 재정비해서 나토군에게 실질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다. 파키스탄의 외무장관까지 나토가 패배를 인정하고 군대를 철수시켜야 한다고 공언할 정도까지 되었다.

알 카에다와 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워싱턴은 아프가니스탄 전쟁 지도자들과 부족들의 복잡한 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또한 파키스탄의 위험하고도 복잡한 상황 때문에 방향을 잘못 잡고 실수를 저질렀다. 파키스탄은 카슈미르를 두고 국가의 사활이 걸린 전투를 벌이고 있고 이슬람 세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바마드는 나토와 아프가니스탄 정부에게 ‘온건한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주둔을 인정하라고 촉구하면서, 북(北)와지리스탄의 관할권을 탈레반에게 넘겨주기도 했다. 이렇게 근거를 마련하자, ‘온건하지 않은’ 탈레반이 나토군을 공격하기 시작하고, 이제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전례가 없던 ‘자살폭탄테러’까지 감행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위기의 궁선’은 중동에서 인도 대륙까지 확대된다. 앞으로 워싱턴이 합리적인 방향으로 전환점을 마련하려면, 알 카에다, 바트당, 헤즈볼라, 하마스, 시리아, 이란을 추상적인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악의 축’으로 똑같이 분류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시리아, 적이 아닌 적

시리아는 미국을 위협하지도 않을뿐더러 과거에 여러 차례 미국에 도움을 주었다. 또한 합법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되는 길을 선택하는 나라이다. 이스라엘의 골란 고원 점령은 미국에게 어떤 이익도 없다. 따라서 골란 고원의 철수에 관해서는 시리아와 협정을 체결해야 마땅하다.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들도 국익을 위해서 행동하는 조직들이다. 미국도 합리적으로 행동하면 상당한 문제를 해결하고, 테러 방지를 비롯해 국익을 위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 조직들이 알 카에다의 지부이거나 알 카에다를 모방한 집단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미국 정치계에서 영향력을 가진 목소리들이 정책의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베이커-해밀턴의 보고서가 가장 분명한 증거이며, 지미 카터 전 대통령도 팔레스타인에 대한 미국의 정책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장을 마련하자고 촉구했다. 이렇게 하자면, 일방적 무력 사용만이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또한 이스라엘을 무조건 지원하는 정책도 포기해야 한다.
특히, 강대국의 필요성 때문에, 이스라엘 정착민의 영토적 야심 때문에, 혹은 알 카에다라는 가공의 공동체 때문에 입맛에 따라 조작되는 하나의 이데올로기 틀에 무슬림 세계의 다양한 민족과 국민을 뭉뚱그려 넣을 수 있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히샴 벤 압달라 엘 알라위/번역·강주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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