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람] 영화 ‘뚜르, 내 생에 최고의 49일’ 임정하 감독

▲ 지난 12일 남동구 구월동 롯데시네마 4관에서 인하대학교 학생, 교직원이 함께한 영화 시사회가 열렸다.
지난 12일 오후, 남동구 구월동에 있는 롯데시네마 4관에서 영화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 시사회가 열렸다. 인하대학교가 학교발전기금 기부자와 학생, 교직원을 초청해 영화를 상영한 것이다. 최순자 총장을 비롯해 학생, 교직원, 동문 등 150여명이 참석했다.

영화의 주인공 고(故) 이윤혁씨는 인하대 체육교육과 02학번이다. 지난 2010년 27세로 이 세상을 떴지만 그를 기억하는 선후배와 지인들은 그를 마음에 품고 산다.

이윤혁씨를 잘 아는 인하대 체육교육과 조교가 학교 홈페이지에 이씨의 실화가 다큐 영화로 개봉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고, 학교본부는 시사회를 열어 학교 구성원들을 초대했다. 이날 시사회에는 이윤혁씨의 어머니가 함께해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2월 1일 극장 개봉을 앞두고 한창 바쁜 임정하 감독을 서울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살기 위해 죽을 각오로 간 프랑스

▲ 뚜르, 내 생에 최고의 49일’ 스틸컷.
초등학교 때부터 장래희망이 운동선수나 체육교사였던 이윤혁은 대학을 졸업하고 2006년 학사장교로 군에 입대해 소위로 임관했다. 임관 직후 ‘결체조직 작은 원형 세포암’이라는 희귀암 4기 판정을 받았다. 전 세계에 환자가 200여명뿐인 생소한 암이다. 3개월밖에 못 산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2006년부터 2009년까지 10시간이 넘는 개복수술을 두 차례 받았고 항암치료도 25회나 받으며 누구보다 살기를 희망했다.

그는 암 관련 자료를 찾다가 2007년에 암을 이겨내고 자신의 경험담을 책으로 쓴 랜스 암스트롱의 ‘1%의 희망’을 읽었다. 랜스는 세계 최대 사이클 대회인 ‘뚜르드프랑스’에서 7연패를 한 인물이다. 랜스의 책을 읽은 이윤혁은 그때부터 뚜르드프랑스 완주를 결심하고 후원자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차례 좌절을 경험했다.

2009년 암이 재발하자, 모든 치료를 중단하고 대회 참가를 결심했다. 그 즈음 기적처럼 후원자가 나타났고, 이윤혁은 2009년 6월 30일 프랑스로 떠나 7월 4일 모나코에서 시작해 8월 20일 파리의 개선문까지 49일간 3500km 코스를 완주했다. 한국인 최초다. 무사귀환 했지만 2010년 7월 15일 세상을 떠났다.

이윤혁과 49일을 함께한 사람들이 있다. 자칭 ‘드림팀’이란 이름을 단 이들의 직업은 영화감독과 의사, 라이딩 파트너, 현지 코디네이터들이다. 이윤혁이 ‘뚜르원정대’라고 부른 드림팀의 총괄자는 전일우 영화감독이다. 전 감독은 이윤혁이 스폰서를 구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 즈음 전 감독도 자전거 관련 다큐를 기획하고 있을 때였다. 전 감독은 이윤혁을 만나 그의 사연을 다큐 영화로 만들기로 결심하고 후원자와 드림팀에 합류할 사람을 물색했다.

“윤혁이의 마음을 알겠더라고요”

▲ 임정하 감독.
“윤혁이가 친구들 사이에 인기가 많았더라고요. 지난해 9월 가족시사회를 했어요. 식구들과 어릴 때 친구, 대학 선후배, 군대 친구들 등 다양한 지인들이 왔는데 윤혁이에 대한 애정이 많았습니다. 리더십도 있었대요. 학창시절 사진을 보니 떼샷(단체샷)이 많았어요. 친구들 사이에서 잘 지냈다는 거지요”

그를 한 번도 직접 만난 적이 없지만 49일간의 행적이 담긴 1000시간 분량의 촬영본 필름을 보고 또 보면서 임정하 감독은 누구보다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이해하기 위해 고시 공부하듯 이윤혁을 공부했다. 그의 일기를 읽었고, 인터뷰 관련 모든 자료를 섭렵하고, 그를 느끼기 위해 그가 남긴 글을 필사하기까지 했다.

이 영화의 감독은 임정하ㆍ전일우ㆍ박형준ㆍ김양래, 네 명이다. 임정하 감독은 처음엔 제작자로 함께했다. 전일우 총감독이 49일간의 여정을 1000시간 분량의 필름으로 담았는데, 이윤혁이 세상을 떠난 후 개인사정으로 영화를 완성하지 못했다. 2011년 2월 임 감독에게 만들어달라는 부탁과 함께 자료가 건네졌다. 임 감독은 다른 감독에게도 부탁해 작업을 진행했지만 감독 두 명이 1년씩 작업하다 여러 사정으로 끝내지 못했다. 영화가 사라질 판이었다. 영화 기획과 제작만 해봤던 임 감독이 ‘맨 땅에 헤딩’하듯 감독을 자임했다.

“영화를 못 만들 지경에 이르렀을 때, 한 선배와 술을 마셨어요. 그 선배가 저보고 직접 하라고 하더라고요. 영화 편집을 해본 적이 없는 나한테 무슨 소리냐고 따졌더니, ‘네가 가장 많이 알잖아’라고 하면서요. 처음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다가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시작한 게 2013년 5월입니다”

임 감독은 촬영된 필름을 많이 봐서 흐름을 알고 있었고, 후배한테 배워서 필름을 자르고 붙이고 임팩트를 쓰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무슨 얘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구성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이 깊어졌다. 그렇게 완성한 편집본을 없애기를 반복한 게 비공식적으로 100여 차례다.

“작업을 시작한 지 3년이 넘으니까 주변에서 반대했어요. 스텝들도 떠나고 친구들에게 모니터를 부탁하면 다들 바쁘다고 거절하면서 오히려 저한테 ‘할 만큼 했다. 그만해라’고 했으니까요. 물론 가족들도 반대했죠. 그러다 ‘내가 포기하면 이 아이도, 나도 잊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윤혁이가 죽을 듯 달렸던 49일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걱정이 돼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하자 결심하고 영화를 완성했어요”

윤혁의 마음을 따라가며 영화를 구성했다. 원인과 결과가 중요한 상업영화의 틀을 깨고 관객들의 예상되는 비판을 감수하면서도 ‘진정성’을 선택했다. 윤혁이가 왜 자전거를 탔는지, 왜 프랑스로 가려했는지, 랜스 암스트롱을 만났을 때 어땠는지 등, 자료가 없으면 암전 화면에 자막 처리로 편집을 했다.

윤혁이를 오래 기억할 수 있는 영화였으면

▲ 이윤혁이 ‘뚜르원정대’라고 부른 자칭 ‘드림팀’ 성원들.
촬영한 지 햇수로 8년 만에, 임 감독이 편집을 시작한 지 햇수로 4년 만에 영화는 관객과 만날 수 있었다. 지난해 말 첫 시사회를 열었는데 이색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영화가 끝나고 영화관을 나오는 관객들의 반응을 살피려 기다리던 주최 측은, 사람들이 하도 안 나오자 영화관으로 들어갔다. 엔딩 크레딧이 끝났는데도 울고 있는 남성관객이 많았다.

“시사회는 무료로 오는 분들이 많아 영화관을 빨리 나오거든요. 그런데 남성들 중에 특히 중장년 분들이 좌석에서 많이 울고 계시더라고요. 40~50대 분들이 본인의 이야기나 자신의 아들 이야기처럼 느끼신 것 같아요. 젊은 남성의 경우 친구나 형의 이야기처럼 공감을 많이 했습니다. 그게 독특한 영화인 거 같아요”

인터뷰에 동행한 영화 배급 관계자의 말이다.

이윤혁에게 랜스 암스트롱은 롤모델이었다. 임 감독은 그가 랜스처럼 완치해 관련 재단을 만들어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사회에 좋은 일을 하고 싶어 했다고 전했다.

“그래서 생을 포기하지 않고 지독하게 버텼어요. 어릴 때부터 태권도ㆍ유도를 하고 대학에서 보디빌딩을 했는데 병에 걸리고 격렬한 운동을 못 하니까 그때부터 집에 있던 자전거를 탔어요. 그러다 2007년에 랜스가 우리나라에 왔을 때 행사장에 갔대요. 서로 말은 안 하고 강렬하게 눈이 마주친 순간이 있었는데 랜스가 윤혁이한테 ‘Never give up(네버 기브 업: 포기하지 마세요)’이라고 말하더래요. 그때 뚜르드프랑스에 가겠다고 결심하고 밤이고 낮이고 미친 듯이 자전거를 탔다고 하더라고요. 부모님은 그 심정을 아니까 말리지도 못하고요”

내면이 강한 이윤혁이었지만 49일간 누구보다 당당하고 재밌는 분위기메이커 역할을 했다고 한다. 동행한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암 환자 같지 않게 시도 때도 없이 모든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고 다른 사람 흉내도 내고 농담도 잘 했다고 한다.

“한번은 촬영감독이 윤혁이한테 무슨 생각으로 자전거를 타냐고 물어봤대요. 그랬더니 이 녀석이 목표지점까지 가면 고기가 있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달린다고 대답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드림팀 구성원들은 처음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를 보면서 완주가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변했다고 한다. 드림팀에는 쉬고 싶어서 휴가를 내거나 고령의 모친을 홀로 둔 적이 없는 사람, 아버지나 누나가 암으로 죽은 사연들이 있는 이들이라 심리적 부담이 많은 상태에서 출발했다.

“기온이 36도가 넘는 숨 막히는 날씨에 짐이 꽉 찬 차량으로 10시간 이상 움직이니 처음에는 스트레스로 살벌한 분위기였죠. 피레네 산맥을 넘는 구간이 나왔는데 스텝 중 60% 이상이 윤혁이가 포기할 거라고 내기를 했대요. 그걸 윤혁이가 하루 만에 넘었어요. 그때 완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시사회를 본 관객들은 ‘감동적이지만 편집이 거칠다’는 말도 했다. 임 감독은 100% 동의한다고 했다.

“다른 다큐는 한정된 공간에서 촬영했는데 이 영화는 로드무비예요. 또한 연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드림팀이 싸울 때는 몰래 찍다가 목 없이 몸통만 찍기도 하고 예측할 수 없어 준비 안 된 상황에서 찍다보니 화질과 구도도 좋지 않을 때도 많았어요. 다만 현장에서 찍었던 촬영감독들은 그게 최선이었어요”

임 감독은 이 영화에서 내레이션을 사용했다면 감동을 배가할 수 있지만 그러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주인공이 자기 얘기를 하고 있는데 다른 얘기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토리가 어려울 게 없어 설명이 필요하지 않아요. 보는 사람이 윤혁이의 얘기를 듣고 공감할 준비만 된다면 상관없어요. 교훈적 대사는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관객들이 그 자리에서 다 해소하고 가는 게 아니라, 여운이 오래가는 영화였으면 해요. 윤혁이를 오래 기억하고 생각하는 영화였으면 좋겠어요”

임 감독에게 이윤혁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희망의 이름’이라고 했다. 남동생처럼 친근하고 재밌어 같이 술 한 잔 하고 싶은 사람이라고도 했다.

2월 1일 개봉하는데, 단체관람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 혼자서 보기에도 감동이지만 여러 사람과 같이 보며 이야기를 나누겠다는 것이다. 특히 자전거 동호회나 동창회에서 연락이 많이 온단다.

“지난해 힘든 일이 많았잖아요. 새해에 이 영화가 새 출발하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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