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추워야 제 맛이라지만, 나는 추운 게 정말 싫다. 나이를 먹을수록 추위를 더 많이 타는 것 같다. 아마 내복을 일찍 꺼내 입고 늦게 벗기로는 내가 선두그룹 중에서도 최상위에 속할 것이다. 나름 혹한에 대처하는 방법도 터득했다. 무조건 옷을 여러 겹 껴입으면 된다. 최소 상의는 네 겹, 하의는 세 겹, 장갑과 목도리는 필수, 모자와 마스크는 선택이다. 이렇다보니 옷 입는 시간도 만만찮게 걸리고 움직임도 둔하다. 이래저래 불편하고 귀찮다.

그러고 보면 동물들은 참 대단하다. 잔뜩 껴입어도 밖에 몇 시간 있으면 몸이 꽁꽁 얼 지경인데, 동물들은 두꺼운 옷도, 난방기구도 없이 긴 겨울을 보내니 말이다.

 
동물들에겐 저마다 겨울을 나는 비법이 있다. 우선 마치 우리 인간들처럼 두꺼운 옷으로 갈아입는 동물들이 있다. 털갈이를 하는 것이다. 가을이 되면 얇은 털이 빠지고 두껍고 긴 털이 자라기 시작한다. 새로 나는 털은 양도 많고 간격도 촘촘하다. 동시에 피부 아래엔 지방을 쌓아둔다. 지방은 체온을 유지하기도 하지만 식량이 없을 때 에너지원으로 쓰이는 몸 속 비상식량이다. 개나 소, 토끼, 말 등 많은 포유류가 이 방법으로 겨울을 난다. 오리나 수달처럼 물에서 생활하는 동물들은 기름샘에서 나오는 기름을 털에 바르기도 한다. 물이 피부에 닿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어떤 동물은 겨우내 긴 잠에 빠져 지내기도 한다. 주위 온도에 따라 체온이 변하는 변온동물과 체온이 일정한 항온동물의 겨울잠은 조금 다르다. 개구리나 뱀과 같은 변온동물은 온도변화가 적어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땅속이나 바위틈에서 겨울잠을 잔다. 반면, 곰이나 박쥐, 고슴도치는 굳이 땅속까지 내려가지 않고 동굴이나 움푹 파인 흙속, 눈 속 굴에서 겨울잠을 잔다. 체온은 평소보다 1~2도밖에 떨어지지 않는다. 대신 심장박동수와 호흡수를 줄여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한다. 다람쥐는 평소 분당 150회 뛰던 심장박동이 겨울잠을 자는 동안엔 분당 5회로, 호흡수는 200회에서 분당 5회로 줄어든다.

아예 따뜻한 곳을 찾아 나서는 이들도 있다. 철새들이 그렇다. 여름철새인 제비, 뻐꾸기, 꾀꼬리에게 우리나라 겨울은 너무 추워서 견디기 힘들다. 가을이 오면 이들은 더 따뜻한 남쪽나라로 날아간다. 하지만 청둥오리나 기러기에게 우리나라 겨울은 그야말로 ‘따뜻한 남쪽나라’다. 따뜻한 곳을 찾아 떠나는 이들의 긴 여정은 위험천만하고 눈물겹다. 삶은 사람에게만 혹독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들의 겨울나기가 내겐 가장 큰 감동을 준다. 지구에서 가장 추운 곳, 남극의 겨울은 영하 40도를 육박한다. 극한의 추위를 견디기 위해 황제펭귄은 수천마리가 한 데 모여 서로서로 몸을 밀착한다. 체온을 나누려는 것이다. 이것을 허들링(huddling)이라 부른다. 단지 서로 체온을 나누는 것이라면 그리 독특할 것이 없다.

허들링이 특별한 것은, 바로 한 가운데 가장 따뜻한 곳을 차지했던 펭귄이 얼마 후엔 칼바람이 부는 맨 가장자리 쪽으로 걸어 나온다는 것이다. 펭귄들이 정지한 채 서 있는 것 같이 보여도 이들은 마치 달팽이집 모양처럼, 천천히 끊임없이 움직이며 서로 위치를 바꾼다. 펭귄들이 저마다 자신만을 생각한다면, 그래서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한다면, 이 질서의 흐름은 끝내 흐트러져 살아남는 펭귄은 얼마 없을 것이다. 동료를 위해 추운 바깥으로 한 발 나서는 것이 결국은 내가 사는 길임을 펭귄들은 아는 걸까.

새해 첫 달은 늘 일 년 중 가장 춥다. 우리 인간들의 겨울나기는 어떤 모습일까. 나 역시 누군가의 한 발 덕분에 지금껏 살아온 건 아닐까. 나는 과연 누군가를 위해 한 발 내딛은 적이 있을까. 고맙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새로운 다짐도 서는, 새해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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