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인터뷰] 탄핵정국, 그 향방은? - 이광호 인천시국회의 공동집행위원ㆍ퇴진행동 상임운영위원

박근혜 정부가 이렇게 몰락할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드물지만, ‘권불십년’이라고 했다. 부패한 권력은 더 일찍 무너지기 마련이다. 국정농단 사태의 장본인인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비선실세, 이에 부역한 고위 공직자들이 줄줄이 구속됐거나 특검 소환을 앞두고 있다. 국정농단 세력의 헌정유린에 맞서 민주주의 회복을 바라는 민심은 긴박하고 역동적으로 전개됐다.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에도 민심은 대통령 즉각 퇴진과 부역자 처벌, 박근혜 정부 적폐 청산을 촉구하고 있다.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국회 국정조사와 특검 수사가 본격화됐고, 새누리당은 분당했다. 정치개혁과 사회개혁에 대한 국민 열망이 높은 가운데, 조기 대선이 현실로 다가왔다. <인천투데이>은 정국을 진단하고 전망하기 위해 여야 정당 인천시당 위원장과 ‘박근혜 퇴진 비상국민행동’ 관계자 인터뷰를 진행했다. 새누리당 인터뷰는 분당되면서 미뤄졌다. <편집자 주>

인터뷰 약속을 잡는 데만 30분이 넘게 걸렸다. 소속 단체의 일상 활동에 ‘박근혜 퇴진’을 위한 비상 활동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를 지난 12월 24일 오전 동암역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그는 ‘박근혜 퇴진 인천비상시국회의(이하 인천시국회의)’ 공동집행위원이자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하 퇴진행동)’ 상임운영위원인 이광호 인천평화복지연대 사무처장이다.

공통분모 존중하는 수평적 논의구조

▲ 이광호 인천시국회의 공동집행위원ㆍ퇴진행동 상임운영위원.
근황을 묻자,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시국 관련 캠페인과 촛불집회에 참가한다고 했다. 행사를 준비하기 위한 회의까지 포함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박근혜 퇴진’을 위한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10월 말부터 매주 목요일 인천에서 촛불문화제를 열고 있고, 토요일에는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가한다. 그밖에 인천시민들을 상대로 캠페인이나 서명운동도 진행한다. ‘퇴진행동’ 상임운영위원회 회의가 매주 화요일 열리는데 보통 4시간, 길면 6시간 정도 회의한다. 다양한 단체들이 참여해 회의시간이 길긴 하지만, 이런 토론이 직접민주주의를 구현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5시부터 (9차 촛불집회) 본대회인데, 김제동씨가 시민들과 토론하는 마당행사가 2시부터 열린다. 우리(=인천시국회의)는 집회만 했지 시민들과 얘기하는 프로그램이 별로 없었는데 그걸 보고 인천에서 어떻게 할 것인지 벤치마킹해보려고 한다. 토론하면서 시민들이 공통된 결론을 내리기도 하고 제안하는 등, 직접 참여해보는 경험을 하는 거다. 문화예술인들이 하는 ‘물러나 쇼(SHOW)’도 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표현방식으로 참여하고 있다. 잘 배워서 인천에도 적용해보려고 한다”

지난 11월 2일, 인천평화복지연대ㆍ인천여성회ㆍ노동자교육기관 등, 인천지역 시민사회단체 20여개가 ‘박근혜 하야 인천시민 비상행동(인천행동)’을 발족하고 하야 운동에 본격 돌입했다. 며칠 후인 9일에는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 등 70여개 노동ㆍ시민사회단체와 야당들이 함께 하는 ‘인천시국회의’가 발족했다.

“(인천행동과 인천시국회의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다. ‘인천시국회의’가 논의되는 과정을 알고 있었지만, 현안이 급해 먼저 행동할 수 있는 단체들과 ‘인천행동’을 만들었다. ‘인천시국회의’나 ‘퇴진행동’의 논의구조는 수평적이다. 그 전에는 사안별 연대회의나 대책위원회를 만들면 상징적으로 공동대표를 세웠다. 그러나 지금은 대표 몇 명이 주도하기보다 집단적으로 토론하고 합의된 것을 집행하기 위해 노력한다”

‘인천시국회의’ 경우, 참가 단체 70여개의 대표가 모두 공동대표다. 단체별로 집행위원이 한 명씩 있다. 활동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하겠다고 결의한 단체는 공동집행위원을 내기도 하는데, 공동집행위원 10여명이 있다. 이들은 집회 준비 등, 실무적인 역할을 나눠 진행한다.

‘퇴진행동’에는 전국에서 단체 1500여개가 참여하고 있다. 지역별로 한 명씩 파견해 상임운영위를 30여명으로 구성했고, ‘인천시국회의’에선 이광호 사무처장을 파견했다. 운영위원은 누구나 될 수 있다.

“‘퇴진행동’도 마찬가지(=수평적 논의구조)다. 그럴 수밖에 없다. 다양한 단체에서 모여 활동하다보니 내 의견이 옳다고 주장하기보다 공통분모를 갖고 함께 얘기한다. 최대한 많은 사람이 공통된 인식으로 촛불을 모아낸다. 물론 장단점이 있다. 단점은 상징적 대표가 없어 정치권과 협상하는 데 불편하다. 그래서 대변인실이나 대외협력실을 만들어 그 역할을 위임해준다. 의사결정구조가 많고 여러 단체의 얘기를 수렴하려다 보니 복잡하거나 느리다. 그 대신 결정한 것에 대한 힘은 크게 발휘된다”

‘퇴진행동’은 매주 토요일 전국 또는 서울 광화문에서 촛불집회를 열기 위해 월요일 실무회의를 하고, 화요일에는 상임운영위, 수요일에는 운영위를 연다. 수요일 저녁에 토요일 집회에 대해 최종 결정을 하는 것이다. 결정 사항을 집행하거나 운영하는 시간이 목요일과 금요일 이틀이지만 큰 무리 없이 진행된다. 이를 두고 이 처장은 “심사숙고해 결정한 사항을 논의구조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책임지고 집행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촛불집회에서 한 선배를 만났는데 1987년 민주항쟁과 분위기가 다르다고 하더라. 그때는 대표하는 인물이 전체 행사를 끌어가고 거리행진도 앞장섰는데, 이번에는 광장을 대표한다고 말하는 사람이나 단체가 없다. ‘퇴진행동’의 역할은 시민들이 발언하고 참여하는 장을 마련하는 조력자라고 생각한다. ‘퇴진행동’이 촛불 민심을 대변하고 있다고 자임하지 않고, 또 그런 권한도 없다”

대의민주주의 한계 넘어 직접민주주의로

87년 민주항쟁과 운동방식이 다른 이유에 대해 이 처장은 시민들이 온라인으로 사실에 접근할 수 있는 정보취득능력이 빠른 것을 첫 번째로 꼽았다.

“자각하는 속도가 빠르다. 행동양식도, 그 전에는 거리에서 투쟁하는 게 대부분이었는데 지금은 온라인 행동으로 서로 보완하면서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정치권은 시민들의 이런 행동방식을 수용하지 못하거나 거부 또는 충돌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시민들은 정치인에게 항의하는 방식으로 ‘문자 폭탄’을 보내거나 ‘인터넷 댓글 달기’, ‘정치후원금 18원 내기’ 등을 하고 있다. 시민들은 직접 행동하는 방식으로 의견을 전달하는데, 정치인은 문을 닫고 있다. 정치를 하다보면 항의를 받을 수 있다. 그걸 시민들의 소통방식으로 받아들여야하는데 거부하거나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시민단체도 광장의 촛불을 담아내긴 부족하지만 시민들과 소통해야한다는 생각은 한다”

이어서 이 처장은 시민들이 지금은 창의적인 방법으로 직접 행동하고 있지만 매번 그럴 수는 없기에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 국민들이 직접 행동할 수 있는 방식을 제도화하는 길을 찾아야한다고 강조했다.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퇴진행동’은 두 가지를 고민하고 있다. 하나는 박근혜 퇴진과 그들의 정책 폐기다. 또 하나는 국민들의 요구를 수용해 사회ㆍ정치적 제도로 어떻게 반영할 것이냐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토론회를 고민하고 있다”

‘퇴진행동’은 1월에 각 시ㆍ도에서 대규모 국민대토론회를 개최함과 동시에 서너 명이나 열 명 정도가 하는 풀뿌리토론 방식도 모색하고 있다. 한국의 정치제도나 개혁과제 등을 공통의 주제로 해 국민들의 의견을 모아나가겠다는 취지다.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경험한 시민들이 직접민주주의 제도에 대해 토론하겠다는 것이다.

“직접민주주의의 제도로 소환제도에 대해 토론할 수도 있다. 지방자치단체에만 주민소환제도가 있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엔 없다. 국회의원은 탄핵도 없다. 국민들이 정치권을 견제할 소환제도나 시민들이 발의하거나 제안해 의견을 제도화하는 구조가 없다. 세월호 특별법을 만들어야한다는 여론이 팽배하고 국민 1000만명이 서명해도 국회에서 법을 만들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런 제도를 보완해 국민들이 직접 참여해야한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 위해 촛불 계속돼야

▲ 이광호 인천시국회의 공동집행위원ㆍ퇴진행동 상임운영위원.
지난 12월 9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됐다. 헌법재판소는 검찰로부터 수사기록을 넘겨받아 심판에 속도를 내고 있다. ‘퇴진행동’은 촛불집회를 이어가며 ‘조기 탄핵’을 촉구하고 있다.

“(헌재에서) 탄핵이 결정 나면 시민들은 대안사회에 대한 제도적 요구를 할 것이다. 이건 촛불의 형태만으로는 안 된다는 걸 안다. 또한 모든 사람이 우려하는 것처럼 탄핵 심판이 끝나면 대선정국으로 갈 것이다. 예전에는 대통령한테 모든 권한을 위임했다면, 이번에는 국민들이 원하는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대통령 후보를 지지할 것이고, 그걸 약속하는 대통령 후보와 함께 직접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방식으로 바뀔 것이다”

이 처장은 국민들이 87년 민주항쟁 이후의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대의민주주의 한계를 정확히 자각했다고 말했다. 또한 광우병 파동 때나 4대강 반대 싸움 때에도 마찬가지였다고 덧붙였다.

“20대 총선에서 여소야대가 됐는데도 ‘세월호 특별법’이 정당들의 이해관계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국민이 직접 참여하고 결정할 수 있는 내용과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국민들이 알게 된 것은 이번 촛불과 예전 촛불의 질적 차이다”

뜨겁게 타오르고 있는 촛불정국이 개헌론과 대선이라는 블랙홀에 빠지지 않겠느냐는 전망에 대해 이 처장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개헌을 언제 할지도 국민이 토론해야한다. 1987년 개헌은 국회의원 몇 명이 주도했는데, 그런 방식은 올바르지 않다. 국민적 토론과 합의가 이뤄져야한다. 국회의원들은 국민에게 투표로만 의견을 묻는데, 그건 국민들이 바라는 방식이 아니다. 이번 대선에서 국민들은 국민의 의견을 반영하는 후보인지 아닌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것이다. 그 정도로 성숙돼 있다고 생각한다”

이 처장은 이번 촛불민심은 직접민주주의 제도 정착 여부가 아닌 평등한 사회, 상식적인 사회에 대한 국민들의 갈망이라고 이해한다고 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단순히 규탄하는 촛불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세계화 이후에 드러난 모든 모순과 문제에 저항하고 있는 촛불로 이해하고 있다. 그 무게감 때문에 ‘퇴진행동’ 회의에 참가하는 게 쉽지 않다. ‘퇴진행동’ 운영위원들은 이번 촛불로 한국 사회가 살 만한 곳이라는 희망을 국민들이 갖게 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고 있다”

12월 마지막 주, 전국에서 풀뿌리 지역자치운동을 하는 단체 30여개가 모여 ‘시민정치’를 화두로 집담회를 하기로 했다. 이 처장은 직접민주주의를 제도화하기 위해 지역별ㆍ부문별로 국민대토론회가 활발하게 열려야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우리 국민은 1960년 4.19혁명이나 80년 5.18광주항쟁, 87년 민주항쟁 등, 역사를 바꾼 저력과 경험이 있다. 그 축적된 힘이 이번에도 나온 거라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아주 상식적이고 평범하다. 불평등한 사회가 아닌, 자기가 노력한 만큼 인정받고 살 수 있는 기본적인 사회다. 이제는 국민이 직접 만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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