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김장할 날을 일찌감치 잡았다. 김장 날, 엄마는 고무장갑을 사람 수대로 준비하고 거실바닥에 비닐을 쫙 펼쳐놓는다. 언니와 나는 각자 집에서 칼과 도마를 챙겨 엄마네로 향한다.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도록 무채를 썰고 나면 양념을 버무려야한다. 이건 팔힘 센 형부의 몫. 나는 하루 노동의 대가로 김치 한 통을 얻어 집으로 돌아온다. 해마다 반복한 중요한 행사다.

그런데 하필 김장을 하기로 한 날, 서울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린다고 했다. 지난주에도 서울에 다녀왔지만, 그날은 다르다. 언론에서도 시민 100만명이 모이네 마네 하는 이야기가 오갔다. 역대 최대 인원이 될 거라고 했다.

이런 중차대한 때에 그야말로 중대한 김장과 집회날이 겹치다니. 이렇게 얄궂을 수가 없다. 이번만 빠진다고 할까? 아니야, 무채 써는 건 내 특기지. 그래도 집회에 안 가면 마음이 불편하지 않을까? 어차피 나는 김치도 많이 안 먹잖아. 그래도 내가 안 가면 다른 식구들이 힘들 텐데….

 
나는 언니와 엄마에게 사정을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언니도 집회 생각을 했단다. 올해는 김장 양이 많지 않으니 형부와 엄마와 셋이 하면 된다며 다녀오란다. 그때 열 살된 조카가 떠올랐다. 중대한 시기인 만큼 조카도 집회에 함께 가면 좋지 않을까? 물론 ‘엄마 껌딱지’인 조카가 엄마와 떨어져 낯선 곳에 가려할지는 모르겠지만. 언니는 좋은 생각이라며 물어보겠다고 했다.

잠시 후 전화가 왔다. 조카는 언니에게 “그게 뭔데”라고 묻더란다. 언니가 인터넷 기사와 사진을 보여주며 이러저러한 설명을 하자, “갈래”라고 했단다. 집회 전날, 조카와 나는 각자 집에서 손 피켓을 만들었다. 간식거리도 챙겼다.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 걱정 반 설렘 반이었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처음으로 조카와 둘이 전철을 탔다. 서울시청역에서 남편 일행을 만나기로 했다. 시청역에 내리자마자 엄청난 인파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 아이를 데리고 무사히 남편이 있는 곳까지 갈 수 있을까? 시청광장으로 곧장 가는 길은 차가 아닌 사람으로 꽉 막혀 다른 출구로 나가야했다. 다행히 길눈 밝은 남편이 우리를 알아봤다.

저만치 이순신 장군 동상이 보이는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누군가 깔판과 초를 건네줬다. 길가 건물 화장실에 다녀온다는 것이 30분이 걸릴 줄이야! 도무지 줄어들지 않는 긴 줄을 바라보면서도 짜증은 커녕 감격스러움에 자꾸 울컥울컥했다.

조카와 함께 간식도 먹고, 구호도 외치는 사이 두 시간이 지났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조카가 “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이제 막 개그우먼 김미화씨가 무대에 올랐는데! 곧 김제동도 나오고 가수 이승환도 나올 텐데! 아쉬웠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엄청난 함성을 뒤로한 채, 조카와 함께 아까보다 몇 배는 촘촘해진 사람들 사이를 뚫고 지하철을 탔다.

전철에서 조카와 나는 축 늘어진 파김치처럼 잠이 들었다. 집근처에 도착하니 여덟시가 다 됐다. 언니와 형부가 역으로 마중을 나왔다. 김장은 금세 끝났다고 했다. 그래도 힘들었을 테지.

늦은 저녁으로 보쌈과 생굴을 절인배추와 함께 먹었다. 꿀맛이었다. 밥을 먹으면서도 핸드폰으로 집회 생중계 방송을 계속 지켜봤다. 이승환은 정말 멋졌고, 거대한 촛불의 파도는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조카에게 오늘 힘들지는 않았는지, 살짝 물었다. “응, 좋았어”

아무렴, 김장과 맞바꾼 집회인데! 조카가 조금 더 컸을 때, 100만 인파 중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한 오늘을 자랑스럽고 뿌듯하게 기억할 수 있기를, 김장도 맛있게 익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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