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간]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미추홀 전시실의 세계미술사전 ‘동양의 눈·서양의 눈’

다행히 올해는 ‘수능 한파’가 없었다. 뉴스에선 성난 민심의 촛불집회에 수능을 마친 수험생이 얼마나 참여할 것인지가 관건이라는 말도 나온다. 이미 3차까지 이어진 ‘박근혜 대통령 퇴진 범국민행동’에 고3 수험생의 참여가 핫이슈가 됐기 때문이다.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미추홀 전시실에서는 지난 12일부터 12월 7일까지 동ㆍ서양의 명화를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디지털 미술사전(展) ‘동양의 눈ㆍ서양의 눈’을 열고 있다. 인천예술회관은 이 전시가 미래사회의 주역이 될 청소년, 특히 수능시험을 마친 고3 학생들에게 대학 진학과 성인이 되는 준비과정으로 기초 소양을 쌓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전시를 기획한 류민희씨를 지난 14일 전시장에서 만났다. 월요일임에도 중학생 단체관람객들로 전시장은 붐볐다.

좋은 프로그램으로 교사와 학생의 사랑 받아

▲ 미추홀 전시실 홍보판 앞에 서있는 류민희씨.
“지난해에 ‘한 시간에 보는 명화 속 인문학전’을 했다. 그것도 ‘청소년을 위한 디지털 미술사전’이었다. 수능 날짜에 맞춰 지난해 11월 20일부터 20일간 진행했는데 예상보다 많은 관람객이 찾았다. 작년에도 고3 수험생 위주로 전시와 함께 인문학 강의도 기획하고, 사회에 진출하기 전에 그림 설명도 듣고 하고 싶은 얘기도 할 수 있게 하려고 했다. 최대 인원으로 5000명 정도를 예상했는데, 학교에서 단체관람객 예약이 계속 들어오다 보니 1만 2000여명이나 됐다”

원래는 고3 수험생 대상으로 인문학 강의도 하면서 여유 있게 관람하며 소통할 수 있는 자리로 기획했는데, 프로그램이 좋다보니 의외로 단체관람객이 많아 강의는 진행하지 못했고, 관람도 ‘밀어내기 식’으로 진행한 거 같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했다.

인천예술회관은 5년 전부터 한국미술사전, 추상미술사전 등, 미술사전을 다섯 가지 진행했고, 올해 동ㆍ서양 미술사를 비교하는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현대미술관에서 학예사로 근무하다 퇴직한 이영석 학예사가 기획한 프로그램인데, 다른 지역에서도 인기가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교사들이 학교에서 교육할 때 동ㆍ서양의 작품을 동시대를 기준으로 비교하는 게 쉽지 않은데, 이 전시는 한 눈에 볼 수 있는 게 장점인 거 같다. 특히 교사들의 관심도가 높다. ‘이렇게 편하고 쉽게 교육하는 방법이 있구나’ 하는 반응이다. 오늘 오후에 예약된 단체관람객 중 초등학교 교사 50여명이 있다. 교사들이 먼저 관람한 뒤 학생들 단체관람을 하는 경우가 많다”

류씨는 올해도 벌써 초ㆍ중ㆍ고교 70곳에서 8500여명이 관람을 예약했다고 했다. 이뿐만 아니라 체험학습이나 수행평가 등을 하러 휴일이나 방과후에 개별적으로 오는 학생도 상당수란다.

“지난해에는 수능시험이 끝나고 전시를 시작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올해는 다른 학생들의 요구도 있어서 수능 일주일 전부터 전시를 시작했다. 수능 전에는 수험생이 아닌 학생들 위주로 예약을 받고, 수능이 끝나면 고3 학생들을 우선 배려할 생각이다”

공부도 추억도 쌓는 전시관이 되길

▲ 칸딘스키 작품 앞에서 도슨트의 설명을 듣고 있는 상인천중학교 학생들.
“미술에 대한 전문지식으로 심오한 이야기를 하기보다 친구들과 같이 관람하고 어울리며 편하게 사진도 찍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한다. 전시장 가면 어렵거나 어색해 남의 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다. 하지만 이곳에는 작품을 디지털로 출력해 쉽게 접할 수 있게 했다. 작품마다 질감이 다른데, 작품을 직접 만져보게 한다. 진품과 작품 사이즈가 다른 것도 있지만, 작품 앞에서 사진도 맘대로 찍게 하면서 공부도 추억도 쌓으라고 말한다”

류씨는 전시관이 추억만 쌓는 곳은 아니라고도 했다. 작품 속에 포인트 한두 가지는 기억할 수 있게 장치를 마련했다고 덧붙였다.

“대상에 따라 도슨트의 설명이 다르다. 오늘 아침에 구월서초교에서 단체관람객 200여명이 왔다. 초등학생들에게는 관람 예절을 교육한다. 또한 화가에 따라 자신의 작품에 자화상을 그려둔 경우가 있는데, 설명한 후 숨어있는 그림을 찾게 한다. 나폴레옹은 몸집이 왜소하고 얼굴이 못 생겼다고 한다. 그런데 그림은 멋있게 그려졌다. 나폴레옹에 대한 얘기를 하면 초등학생들이 재밌어 한다. 전공자들이 오면 토론하는 경우도 있는데, 아이들한테는 흥미위주의 설명을 하기도 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학생들이 몰려오자 인천예술회관은 오픈 시간을 조정했다. 원래 오전 10시에 문을 여는데 9시 30분에 문을 연 것이다. 인천예술회관 전시관에는 미추홀전시관 이외에도 대전시실과 중앙전시실, 소전시실이 있다. 단체관람객들이 세계미술사전을 보고 나서 다른 전시실에도 들러 작품을 감상해, 다른 전시실에도 활기가 전해진다.

독자적인 생활방식을 영위해 온 동양과 서양의 차이

▲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학생들.
수천년 동안 독자적인 생활을 영위해 온 동양과 서양은 사고방식은 물론 윤리ㆍ규범ㆍ생활양식 등이 판이하게 달랐다. 그러하기에 동ㆍ서양의 미술은 각기 다른 환경에서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기억하고 기록하면서 작품을 남겼다.

이번 전시는 ▲세상의 눈은 하나였다 ▲객관적인 눈, 서정적(抒情的)인 눈 ▲측량하는 눈, 기억하는 눈 ▲사실적(寫實的)인 눈, 사의적(寫意的)인 눈 ▲시선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예술의 눈, 세상을 분석하고 표현하다 등, 동양과 서양의 미술을 섹션 6개로 구분해 비교분석했다.

먼 옛날 동ㆍ서양 미술의 목표는 눈앞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리얼하게 재현하는 것이었다. 원시인들은 사냥하기를 원하는 짐승을 그리고, 고대 이집트 조각가들은 죽은 왕이나 귀족들을 사실적으로 재현했다. 진시황은 영원한 삶을 위해 죽어서 무덤을 지키게 할 목적으로 병사와 말의 모형을 실물 크기로 만들었다.

서양에서는 객관적 재현을 위해 원근법을 이용했다. 원근법은 공간과 물체를 측량하는 수학이었다. 이 측량법의 발견은 서양미술, 나아가 서양문화의 역사를 뒤바꾼 혁명이었다. 서양과 달리 동양에서는 객관적인 재현이란 없었다. 동양의 예술은 관찰하고자 하는 대상에 적극적으로 보는 사람의 감정을 이입했다. 동양의 화가들은 대상을 철저히 관찰한 후 그리고자하는 것을 마음속에서 정리해 일필휘지로 그려낸다. 그런 이유로 동양의 화가들은 관찰할 때 시종 느낌이 가장 크고 깊으며 가장 생동하는 장면을 포착해 그렸기 때문에 관찰력과 기억력이 중요했다. 동양화의 창작 방법 중 의재선필(意在先筆)이 있는데, 그림은 붓을 쓰기에 앞서 마음에 뜻이 서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17세기 중반 서양의 사실주의 미술은 원근법과 명암법을 바탕으로 완벽에 가까운 현실 재현에 성공한다. 그러나 1839년 사진의 등장으로 서양미술에서 객관적 재현은 종점에 이른다. 동양의 미술은 현실 재현에 만족하지 않았다. 동양의 화가들은 사물의 내면에 자리 잡은 정신을 표현하는 일이 미술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는데, 내면의 정신을 표현하는 일을 사의(寫意)라고 한다.

19세기 후반, 미술은 외부세계의 재현을 포기했다. 새로운 미술을 찾아 나선 이들은 후기 인상파로 불린 폴 세잔ㆍ반 고흐ㆍ폴 고갱이었다. 자연을 묘사하는 일을 중지하고 색채와 색채ㆍ색채와 형태ㆍ형태와 형태의 조화만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미술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는 아무런 관계를 갖지 않게 됐다. 이것을 ‘비정형 미술’이라 한다. 20세기 후반,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과 기술 개발은 시각예술의 환경을 급속하게 바꿨다. 사진과 컴퓨터의 자유로운 사용은 누구나 이미지 생산자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20세기 후반, 세상의 눈은 다시 하나가 됐다. 15세기 이전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누가 시선의 질서를 구축해 세상을 새롭게 보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다음 전시는 아프리카 전통문화 체험전

류씨는 인천예술회관 전시실이 공공건물임에도 대관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것에 아쉬움이 있었다고 했다.

“좋은 공간에서 아이들이 좋은 전시를 볼 수 있는 경험을 한다면 성인이 돼서도 자연스럽게 이런 공간을 이용할 수 있을 거다. 그게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핵심이다. 성인들도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면 몰랐던 것을 새롭게 알게 돼 좋아한다”

류씨는 내년 방학시즌에는 ‘아프리카 전통문화 체험전’을 열 준비를 하고 있다. 현재 자료를 수집하고 있는 단계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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