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숙의 ‘부모와 함께 읽는 그림책’ 이야기<5> 칠기공주

글 파트리스 파발로|그림 프랑수아 말라발|옮김 윤정임|웅진주니어|2006.6.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아이들을 떠나보냈다. 왜 우리는 아이들을 구할 수 없었을까. 많이 울고 좌절하고 괴로워했다. 그때 누군가 이 노래를 만들었고, 우리는 이 노래를 듣고 부르며 깊은 좌절과 함께 희미한 희망을 붙들었다.

그러나 그 이후 우리는 희망을 품는 것이, 좌절하며 눈물 흘리는 것만큼이나 힘들 수 있다는 것을 매순간 깨달아야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드 배치, ‘일본군 위안부’ 합의,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등을 보면서 말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비선실세 최순실과 마주하고 있다.

지난 11월 12일, 광화문은 ‘좌절하고 실망하는 것은 그만 하고 우리 힘으로 민주주의를 지키고 희망을 퍼올리겠다’고 결심한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지금보다 더 평화롭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꿈꾸는 우리들. 우리들은 성숙했고 자부심 넘쳤고 아름다웠다. 그간 표현하지 못하고 억눌러왔던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갈망이 솟구쳐 오르는 모습 속에서 그림책 ‘칠기공주’에서 마침내 자유로워진 칠기공주가 떠올랐다.

‘칠기공주’는 미얀마 군사독재 정권 아래 비폭력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고 정부에 의해 무려 일곱 차례나 가택연금 조치를 받아야했던 노벨 평화상 수상자 아웅산 수지를 빗댄 이야기라고 한다.

칠기공주는 소박한 칠기장이의 딸이다. 아버지가 칠기를 빚으면 공주는 그림을 새겨 칠기를 장식했는데, 칠기공주 손길이 닿으면 그림이 살아나는 듯 아름다웠다. ‘태양보다 더 빛나는 왕’은 이 소문을 듣고 오직 자기만을 위해 칠기를 만들라 명령한다.

칠기공주는 모든 그릇에 포악한 왕에게 시달리며 고통 받고 있는 백성들의 모습을 그려 넣는다. 왕은 불같이 화가 나서 말한다. “네 그림들은 거짓말투성이야” 칠기공주는 말한다. “전하, 저는 제 눈으로 본 것들만 칠기에 그렸습니다” “그렇다면 네 눈을 뽑아버리겠다”

아버지가 제발 용서해 달라고 애원하니, “좋아, 눈은 봐주지. 하지만 다시는 빛을 보지 못하게 할 것이다”라며 마을 한복판에 감옥을 짓는다. 감옥에는 문이 없어 빛이 들어갈 틈이 없었다. 칠기공주는 캄캄한 어둠 속에 잠겼다. 그리고 어느 날, 첩자 하나가 아무데서나 볼 수 있다며 칠기공주가 그린 것과 똑같은 칠기를 가져왔다.

수없이 늘어서 있는 칠기 작업장에서는 모든 물건에 칠기공주가 그렸던 것과 똑같은 그림이 새겨져 있었고, 그토록 수많은 칠기가 나도는 것을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왕은 쇠망치로 구멍을 내어 감옥 안을 들어가 보았는데, 칠기공주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왕은 칠기 작업장으로 들어가 불같이 화를 내며 칠기들을 마구 짓밟았는데, 부서져 흩어진 칠기 조각에 칠기공주의 웃음 띤 얼굴이 나타났고, 칠기 공주 얼굴은 계속해서 늘어났다.

기나긴 세월이 흐른 뒤에도 사람들은 칠기공주가 가르쳐준 대로 계속해서 칠기를 만들었고, 칠기에는 언제나 진실한 눈으로 바라본 미얀마 백성들의 삶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이제 아무도 왕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태양보다 더 빛나는 왕’은 늘 자기를 따라다니는 칠기공주의 얼굴을 피하려다 이라와디강에 몸을 던져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감옥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고 마을 어디에서든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농사짓는 아낙의 노랫소리와 뱃사공의 외침이 들려왔다.

왕은 진실을 말하는 칠기공주를 감옥에 가두고 빛을 빼앗아 버렸다. 그러나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었다. 칠기공주는 칠기에 그릴 수 없던 것들을 목소리로 표현했고, 마을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었다. 공주는 그저 자기가 보았던 것을 쉬지 않고 이야기했고, 이제 그 어떤 벽도 자기를 가두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닫고 마침내 자유로워졌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았고, 우리는 포기 하지 않았다. 모든 권력을 가졌으나 아무도 믿을 수 없고 군사 없이는 거리를 다닐 수 없는 ‘태양보다 더 빛나는 왕’은 결국 스스로 침몰한다.

2016년 11월 12일, 100만 국민이 모여 외쳤다. “박근혜는 하야하라” 일개 말단 공무원인 초등학교 교사가 자신을 ‘태양보다 더 빛나는 왕’이라 생각하는 대통령에게 다시 한 번 외친다.

“당신은 더 이상 당신이 가진 힘과 권력으로 여기저기 넘쳐흐르는 진실과 희망을 감옥 속에 꽁꽁 가둘 수 없어요. 대한민국 국민은 그저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일하는 사람들의 노랫소리가 넘쳐나기를, 화가 나면 화났다고 큰소리로 외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에요. 더 이상 당신이 두렵지 않아요. 왜냐하면 모든 권력은 당신과 최순실로부터가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100만이 모인 날 우리는 깨달았거든요. 이제 그만 그 자리에서 스스로 내려오세요”

※ 월 1회 ‘부모와 함께 읽는 그림책 이야기’를 연재 중인 구자숙 시민기자는 대정초등학교에서 5학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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