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 연애담(Our Love Story)

이현주 감독|2016년 개봉

개봉일 첫 상영으로 극장에 가는 길은 설레기 마련. 평일 조조라 더 없이 여유로웠지만, 은근히 긴장됐다.

개봉 전 유료 시사회 때 전주와 서울의 상영관에서 한 사람이 몇 십장씩 예매했다가 상영 직전에 예매를 취소해 정작 영화를 보려던 관객들은 보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했고, 상영관은 텅텅 비게 됐다는 뉴스를 보았기 때문이다.

확실한 물증은 없으나, 이전에도 성소수자가 주인공인 한국영화 개봉 때 이런 사건이 있었기에, 의도적으로 퀴어(queer: 동성애자나 양성애자, 성전환자 등 성적 소수자를 통틀어 이르는 말)영화 상영을 방해하려는 누군가의 공작이 시작됐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혹시나 개봉 후에도 이런 몹쓸 짓을 하는 놈이 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평소 같으면 상영시간에 딱 맞춰 극장에 가던 습관을 버리고 여유 있게 극장에 갔다. 다행히 그런 몹쓸 짓은 일어나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연애담’은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상영 방해 공작을 벌일 정도로 엄청나게 특이한 영화가 아니다.

 
졸업전시를 준비 중인 늦깎이 미대생 윤주(이상희)는 전시 재료를 구하러 고물상에 갔다가 우연히 지수(류선영)와 마주친다. ‘우연’이 쌓이면 ‘인연’이 되는 걸까. 편의점에서 다시 마주친 윤주와 지수. 그들은 강한 끌림을 느끼고 결국 사랑에 빠진다. 조심성 많고 소극적인 윤주와 자신이 원하는 바에 솔직한 지수, 나이는 많지만 연애는 처음인 윤주와 이전에 많은 여자를 만났던 지수. 그렇게 서로 다른 이들의 끌림이 만든 연애는 세상의 여느 연애와 별반 다르지 않은 여정을 거친다.

‘연애담’은 젊은이들이 우연히 만나 호감을 느끼고 설레고 그렇게 연애를 시작하고, 누구나 그렇듯이 연애는 지리멸렬해지고 서운해 하고 냉정해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살아지는, 누구나 한번쯤 겪었을 보통의 연애담을 담담히 그려낸 작품이다. 막장드라마에 익숙해진 이들에게는 오히려 심심하고 건조하게 느껴질 법한, 매우 사실적인 영화이기도 하다.

물론 상영을 방해하고 싶었을 그들은, 그 젊은이들의 성별이 이성이 아닌 여ㆍ여 동성 커플이라는 것을 문제 삼고 싶었겠지만, 그것은 한 커플이 겪는 보통의 연애를 관객들이 공감하는 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에게 끌리는 데 성별이 무슨 문제이랴.

취직이 됐든 결혼이 됐든 무언가 결과를 내놓아야하는 나이, 하지만 먹고사는 문제도 쉽지 않은 나이의 청년들이 겪는, 윤주와 지수의 연애담에는 영화라면 흔히 있을 법한 이렇다 할 사건도 없고, 레즈비언 로맨스 영화가 가질 법한 판타지도 없다. 그저 한 사람이 한 사람을 만나 호감을 느끼고 상대방에게 깊이 스며들고, 그러다가 현실적인 문제로 다투고 헤어지는 과정이 아주 담백하게 담겨 있을 뿐이다. ‘연애담’을 두고 많은 이들이 ‘한국의 캐롤*’이라고 비유했지만, 1950년대 미국 상류층 여자와 노동계급 여자의 격정적인 로맨스인 ‘캐롤’에 비하면 ‘연애담’은 소박하기 이를 데 없다.

그래서 더 깊이 공감하게 된다. 보통 사람들의 사랑이란, 연애란 이렇게 작은 설렘과 많은 구질구질함이 더해진 것 아니겠는가. 영화적이지 않은 담백함이야말로 이 영화의 매력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괜스레 마음이 촉촉해지는 건, 윤주와 지수의 연애담이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극장을 나오니 진한 커피 한 잔 홀짝이며 낙엽을 밟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러다 눈길 가는 누군가가 있으면 연애라도 하고 싶은, ‘연애담’은 늦가을의 쓸쓸한 날씨와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 없는 연애영화다.

*캐롤 : 한국에서 올해 초 개봉한 토드 헤인즈 감독의 극영화. 195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부잣집 귀부인 캐롤(케이트 블란쳇)과 백화점 직원 테레즈(루니 마라)의 격정적인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랑에 대한 섬세한 감성을 깊이 있게 담아낸 수작이라는 평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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