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은 꿀과 꽃가루를 모으는 곤충이다. 인간의 시선으로 봤을 때 그렇다. 식물의 입장에서 꿀벌은 어떤 존재일까?

꽃은 식물의 생식기관이다. 수술의 꽃가루가 암술에 달라붙는 것을 수분이라 한다. 수분으로 수정이 이뤄지면 암술 속 씨방에서 밑씨가 만들어진다. 한 꽃 안에서 수분이 이뤄지기도 하지만 다른 꽃의 꽃가루가 암술에 붙어야 수정이 되는 꽃도 있다.

 
약 1억 3000만 년 전 지구상에 최초의 꽃이 탄생했을 때, 꽃가루를 암술에 전달하는 중매쟁이 역할을 한 것은 바로 바람이다. 그런데 바람이 늘 식물이 원하는 방향과 세기로 불지는 않았다. 꽃은 최대한 많은 양의 꽃가루를 생산할 수밖에 없었다. 만일 꽃이 핀 시기에 바람이 불지 않는다면 그 또한 수분이 성사되기 어렵다. 식물은 꽃을 피울 시기도 신중하게 결정해야했다.

언제부턴가 곤충들이 꽃가루 맛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사방을 옮겨 다니며 꽃가루를 먹어치우는 동안 곤충의 몸엔 꽃가루가 달라붙었고, 이것은 자연스럽게 암술로 옮겨졌다. 곤충도 모르는 사이, 꽃에겐 바람보다 훨씬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중매쟁이가 생긴 것이다. 꽃은 꽃가루를 예전만큼 많이 만들 필요가 없어졌다.

그런데 중매쟁이라고 실력이 다 같은 건 아니다. 어떤 곤충은 꽃을 마구 헤집고 다녀 암술과 수술에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 식물은 행동이 거친 곤충으로부터 받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생식세포가 있는 중요한 부분을 더 깊숙한 곳으로 옮겨놓았다. 꽃은 점잖고 ‘기술적’으로 꽃가루를 날라다 줄 중매쟁이를 원했다. 이 역할을 가장 잘 수행하는 곤충은 꿀벌이었다. 꿀벌과 꽃은 서로 맞춰 함께 진화해나갔다.

오늘날 지구상에서 ‘꽃이 피는 식물(현화식물)’의 80퍼센트가 곤충을 통해 수분을 하고, 이들 중 85퍼센트가 꿀벌의 도움을 받는다. 과일나무의 경우 약 90퍼센트의 꽃이 꿀벌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 오로지 꿀벌에게만 의존하는 현화식물도 4만 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꿀벌은 현화식물에게 포기할 수 없는 존재다.(‘경이로운 꿀벌의 세계’ 55쪽, 위르겐 타우츠 지음)

그런데 이 꿀벌이 멸종위기에 몰렸다. 10월 3일 미국 어류ㆍ야생동물관리국(USFWS)은 머리 부분에 노란빛을 띠는 하와이 토종 꿀벌 일곱 개 종을 ‘멸종위기종 보호법’에 따라 보호해야할 종으로 결정했다. 꿀벌이 죽어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왔지만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꿀벌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2006년에 처음 발견됐다.

씨엔엔(CNN)의 보도에 따르면, 2007년 이후 겨울마다 미국의 꿀벌 떼가 평균 30%씩 폐사하고 있다. 아이오와에선 2013년 겨울을 지나면서 꿀벌 개체수가 70% 가까이 사라졌다. 캐나다에선 2012~2013년 겨울을 거치며 꿀벌 떼가 29% 줄었고, 유럽에서는 같은 기간 꿀벌의 20%가 사라졌다.(<경향신문> 2016.10.4.일자)

원인은 살충제, 외래종 유입, 질병과 균, 기후변화 등, 다양하다. 하지만 이 모든 원인은 ‘인간’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다. 그나마 꿀벌의 집단죽음은 식량문제와 연결돼 관심이라도 끌지만, 이외의 다른 종들은 오늘도 소리 없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멸종을 맞이하고 있다. 인간으로 태어난 것도,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도, 썩 맘에 들지 않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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