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유럽 여행기 1. 영국편

지인의 초청으로 지난 추석연휴에 다녀온 유럽의 세 나라 영국ㆍ아일랜드ㆍ프랑스. 생애 첫 유럽여행의 여정과 기억을 남기고자 하는 욕심으로 여행기를 써본다. 글이 다소 투박해 걱정이지만 대신 통통 튀는 생동감을 전할 수도 있지 않을까, 스스로 위안해본다. 제목 그대로 여행이나 여행기의 ‘좌충우돌’이 부족한 점인 동시에 매력이 되길 바란다. 이 글을 시작으로 나라별로 세 번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 영국 템즈강을 기준으로 왼쪽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관람차인 ‘런던 아이’가 있고, 오른쪽에는 시계탑 빅벤과 국회의사당이 있다.
지난 1월, 아일랜드에 사는 아는 동생이 한국에 며칠 다녀갔다. 동생은 이러저러한 얘기를 나누다가 ‘아일랜드에 놀러오라’는 말을 던졌다. 몇 차례 꺼낸 얘기지만 설마 갈 수 있을까, 했는데 이 날은 어쩐 일인지 귀에 쏙 들어와 몇 사람과 얘기하다가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구체적 얘기가 오갔다. 휴가를 오래 내긴 어려우니 추석연휴로 정하고 이왕 아일랜드에 가는 김에 영국과 프랑스에도 들르자고 결정했다. 왕복 비행기 표와 영국의 한인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도 예약을 마쳤다. 그때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저렴하게 예약했지만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의 영향으로 파운드 가치가 하락해 아쉬웠다.

9월 11일 오전 8시 55분 비행기 편이라 일행을 오전 6시에 인천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다. 인천 부평에 사는 나도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아 전날 인천공항 근처에 사는 오빠네서 신세를 지기로 했다. 경기도 일산과 강원도 원주에 사는 일행도 합류했다.

오빠네 식구들과 저녁을 먹는데 올케언니가 같이 가는 사람들과 무슨 관계인지를 물었다. 사실 궁금해할만했다. 여행길에 오른 사람이 다섯 명인데 나이가 30대 초반에서 40대 후반까지 다양하고, 하는 일도 청소년 지도사ㆍIT 프로그래머ㆍ서울메트로에서 일하는 사람ㆍ펜션 사장 등 다양했다. 또한 사는 곳도 전라도 담양ㆍ서울 강서구 등, 전국 각지에서 모였으니 말이다. 오빠네 부부는 ‘혹시 자살사이트에서 만난 사이가 아닐까?’라는 속내를 보여, 웃음을 유발하기도 했다.

우리는 2013년 5월,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 마음수련 프로그램에 참가해 만난 사이다. 아일랜드에 사는 동생도 그때 함께했다. 당시 4박 5일간 깊은 고민을 나누다보니 수련이 끝난 후에도 안부를 묻거나 경조사를 챙길 정도로 친하다.

출발 26시간 만에 도착한 런던의 한인 게스트하우스

▲ 대영박물관에 있는 남미 이스터섬의 모아이 석상. 여러개를 가져왔다가 하나만 남기고 돌려줬다고 한다.
9일간의 여행 첫 번째 나라는 영국(United Kingdom)이다. 저렴하게 가기 위해 직행이 아닌 중국 상하이를 경유하는 저가항공을 이용했다. 인천공항에서 조금 늦게 출발해 상하이 푸동공항에도 연착했고 환승 절차를 밟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중국에서 환승을 몇 차례 해본 경험이 있는 일행 중 한 명은 예년에 비해 절차가 많이 복잡해졌다고 했다. 혹시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방어 체계) 때문이 아닌지, 우리끼리 얘기를 주고받았다.

푸동공항은 유럽이나 동남아, 아메리카로 가기 위해 환승하는 여행객이 많이 들르는 곳이다. 밴쿠버ㆍ방콕ㆍ나고야ㆍ마카오 등의 도시로 가기 위해 기다리는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 히드로공항으로 가기 위해 중국동방항공 비행기에 올랐다. 이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내식이 나왔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 전에 라면과 김밥을 든든히 먹었는데 상하이로 오는 비행기에서 기내식이 나왔다. 배가 불렀지만 따뜻한 기내식에 손길이 가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그런데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또 식사를 한 것이다. 두 시간마다 한 끼를 먹은 꼴이다. 여행 기간 내내 그렇게 우리의 식탐여행은 계속됐다.

먹고 자고를 반복하며 12시간 비행 후 영국 현지 시각으로 오후 6시 30분에 히드로공항에 도착했다. 우리나라보다 8시간 늦으니 비행시간이 총14시간 정도인데도 그동안 해가 계속 떠 있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를 재밌게 본 터라 은근히 히드로공항에 대한 선망이 있었는데 잠이 덜 깼는지 큰 감흥은 없었다. 그래도 일행은 ‘히드로(Heathrow)’라는 글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킹스 크로스(King’s Cross)역에서 5분 거리인 숙소를 가기 위해 공항에서 피카딜리 라인의 지하철을 탔다. 우리나라는 지하철 노선이 숫자로 돼있는데 런던 지하철 노선은 고유의 이름이 있었다. 킹스 크로스역은 영화 ‘해피포터’에서 호그와트 마법학교로 가기 위한 9와 3/4 승강장이 있는 역이다. 우리도 런던 여행 마지막 날 그곳을 방문했는데 기념촬영을 하기 위한 관광객이 넘쳐났다.

이틀간 런던시내 관광을 위해 오이스터 카드(oyster card)를 구입했다. 보증금을 내고 카드를 구입해 충전하면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런던의 지하철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됐다.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역사(驛舍)와 차량이 낡았고 차량 내부는 좁았다. 일행 중 한 명이 서울메트로에서 근무하다보니 이것저것을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지하철 내 풍경은 세계 공통인가보다. 핸드폰으로 웹서핑 또는 게임을 하거나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내 옆에 앉은 승객의 핸드폰이 삼성이었다. 문득 수하물 부치는 곳에서 삼성 갤럭시노트 7의 배터리가 있는지 확인하던 게 떠올랐다.

영국 현지시각으로 오후 10시께 숙소에 도착했다. 오빠네서 새벽 4시에 일어나 장장 26시간 만에 한인 게스트하우스에 오니 온종일 영어를 쓰는 사람들과 신경전을 하느라(나는 거의 영어를 안 쓰고 따라 다녔지만) 쌓인 긴장이 풀렸다. 욕실에 구비된 샤워 용품은 대부분 영국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유통기업 테스코(Tesco) 상표가 붙어 있었다. 홈플러스노동조합에서 간부로 활동하고 있는 아는 동생이 떠올랐고, 드라마 ‘송곳’과 영화 ‘카트’가 생각났다.

신구의 역사가 함께 흐르고 있는 템즈강과 런던

▲ 버킹엄 궁전을 지키는 근위병 교대식 장면. 전 세계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코스라고 한다.
본격적인 여행 첫날 아침, 피곤할 만도 한데 일찍 눈이 떠졌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하는 영국식 아침을 먹으며 식탁에 모인 동포(?)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주로 20대 친구들이었는데 혼자 또는 둘이 온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 런던 구경 전후로 다른 나라도 들른다. 그 중 20대 남성이 있었는데 아르바이트를 해 모은 돈으로 레알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등의 축구경기를 보러 런던에 2주 머물 계획으로 왔다는 것이다. 게임 7개를 보는 돈만 200만원이란다. 예전의 나였으면 ‘미친 짓’이라고 퍼부었을 텐데 지금은 멋있고 자유로워 보였다.

오전 일정은 버킹엄 궁전 근위대 교대식 구경이었다. 버킹엄 궁전은 영국 여왕이 살고 있는 집이자 왕실의 사무실이며 국빈을 맞이하는 공식 장소이기에 아무나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그러나 영국 왕실 가족들이 궁전을 비우는 여름 두 달간은 일반인에게 유료로 개방한다. 우리는 오전 11시부터 진행하는 근위병 교대식을 보기에 시간이 남아 궁전 관람을 했다. 입구에 오디오 가이드가 있었는데 일어와 중국어 버전은 있지만 우리말로 된 건 없어 아쉬웠다. 궁전 관람을 마치고 교대식을 보러 나왔다. 관광객이 생각보다 무척 많았다. 영국의 상징인 빨간 옷을 입은 근위병들이 떼를 지어 가는 게 장관이었다.

교대식 구경을 마치고 그린파크 공원을 가로질러 템즈강변의 빅벤과 국회의사당을 보러 갔다. 오후 1시 무렵이라 점심식사를 저렴하게 때우자는 생각에 테스코 익스프레스에서 샐러드와 샌드위치 등을 구입해 빅벤이 보이는 잔디밭에서 식사를 했다. 차가 다니는 길거리였지만 잔디밭이나 벤치에서 삼삼오오 식사하는 사람들이 많아 따라했는데, 술은 마시면 안 된다고 한다.

이틀째 영국 거리를 다니며 느낀 건 영국인들은 횡단보도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거다. 횡단보도에 빨간 불이 켜져 있어도 도로에 차가 없거나 교통흐름에 방해가 안 되면 도로를 횡단한다. 말 그대로 무단횡단이다. 길가에 차가 없어도 꿋꿋하게 서 있는 우리가 바보 같았다. ‘질서’ 교육을 너무 잘 받은 우리의 정신 상태를 서로 점검하기도 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회전관람차인 ‘런던 아이(London Eye)’를 타고 템즈강변의 유서 깊은 도시 건축물들을 감상했다. 런던의 외곽에는 높은 현대식 빌딩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런던 아이는 템즈강과 함께 런던의 신구 역사를 함께 바라보고 있었다.

코벤트 가든에서 그 유명한 쉑쉑(shake shack)버거를 맥주와 함께 먹었다. 주변 상점에서 라이브로 현악 4중주가 들렸는데 환상이었다. 분위기에 취해 대낮에 큰 컵에 맥주를 두 잔이나 마시고 예약한 ‘오페라의 유령’을 보러 갔다.

공연을 하는 동안 알코올의 지대한 영향으로 잠과 사투를 벌였다. 공교롭게 주인공들이 키스하는 장면에서만 두어 번 깨다 졸도하듯이 자고 말았다. 너무 자 말하기 민망하지만 무대가 정말 대단했다. 무대의 높이와 깊이가 상당했으며 신속 정확한 무대 세팅으로 입체적인 장면을 연출하는데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뮤지컬 관람 후 영국의 이층버스를 타고 야경 구경에 나섰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1000년 역사의 런던타워와 런던의 랜드마크로 꼽히는 타워 브리지를 봤다.

대영박물관이 입장료를 받지 않는 이유

영국 여행 셋째 날이자 마지막 날, 전 날 무리했기에 이날은 대영박물관만 들렀다가 아일랜드로 가는 오후 8시 30분 비행기를 타러 스탠스테드(Stansted) 공항으로 가기로 했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느긋하게 아침식사를 했다. 게스트하우스에는 새로운 동포(?)들의 얼굴이 보였다. 우리는 하루 먼저 경험한 것을 런던 관광 신참들에게 풀어냈다. 팁이라도 얻으려고 눈을 반짝이는 모습이 재밌어 과장도 일부 섞어가며.

유물 1300만여점이 보관된,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인 대영박물관은 입장료가 없다. 자국문화재의 비율에 따라 입장료를 책정할 수 있는데, 대부분 약탈한 전리품이라 입장료가 없는 대신 기부금을 받고 있다. 대영박물관은 규모와 보존상태, 방문객 접근성이 좋아 인기가 있지만 더불어 소장품의 원주인인 국가들의 비난을 동시에 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유물이다. 영국 시인 바이런은 그의 시에서 ‘어리석어라/ 허물어진 신전은 앗아져버렸다/ 유적을 보호해야 할 영국인들 손에/ 다시는 회복될 수 없으리라/ 그 시간은 저주 받으라’라고 울부짖었다. 지금도 영국 지성인들의 비판은 이어진다.

‘이집트관’에서 미라를 관람하고 난 일행 중 한 명이 “다른 나라 시체까지 훔쳐 와서 전시한 대영박물관은 침략의 역사박물관이다”라고 일갈했다. 오히려 영국의 이미지를 훼손하거나 침략자의 인상을 각인시켰다. 우리만 그랬나?(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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