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에 지쳐가던 8월 초, 경기도 가평으로 휴가를 다녀왔다. 언제부턴가 내게 여름휴가란 1년에 딱 한 번, 질리게 수영을 할 수 있는 날이다. 올해도 3박 4일간 오로지 캠핑장에서 먹고 자면서 아침부터 해가 지기 전까지 강에서 수영을 했다.

작년에 머물렀던 강가 어디쯤에 그늘막을 치고 누울 수 있는 의자를 폈다. 수영은 온몸으로 하는 운동이라 체력 소모가 많아 먹고 돌아서면 배가 고프다. 삼계탕을 끓여 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다시 라면 물을 끓였다. 물 밖에 나오면 슬슬 피로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라면이 익기를 기다리며 노곤한 몸을 의자에 기댄 채 물끄러미 먼 산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말벌이 날아와 그늘막 근처 강가의 돌 위에 앉았다.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어린 조카와 함께 놀던 터라 혹시 쏘이면 어쩌나 걱정했다. 다행히 벌은 몇 초 후 멀리 날아갔다. 편한 마음으로 라면을 두 젓가락 정도 먹었을 때였다. 다시 말벌이 날아왔다. 그리고 아까 앉았던 그 돌을 용케 찾아 앉았다. 나는 “이 근처에 말벌 집이 있나보다”라고 중얼거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벌은 다시 아까 날아간 방향으로 날아갔다. 라면을 다 먹을 무렵에도, 낮잠을 한숨 자고 일어났을 때도, 벌은 계속 강가의 그 돌 위에 잠시 머물렀다 날아가기를 반복했다.

나는 저 벌이 대체 무엇 때문에 강가를 오가는 건지 궁금했다. 벌이 떠난 바위 근처에서 벌을 기다렸다. 몇 분 후 벌은 다시 돌 위에 앉았다. 그러더니 아주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물 쪽으로 몸을 구부렸다. 몇 초 동안 그 자세로 있다가 다시 날아올랐다. 벌이 물을 마신 것 같았다. 벌이 물 마시는 모습을 보다니! 신기했다. 왜냐하면 벌은 꿀에서 수분을 섭취할 뿐 따로 물을 마시지 않는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저 벌은 물을 마신 게 아니라 어딘가로 물을 나르는 중일 것이다!

휴가에서 돌아온 뒤, 내 추측이 맞는지, 맞다면 그 물이 어떻게 쓰이는지 확인해보기로 했다. 도서관에서 벌에 관한 책을 찾아 읽었다. 역시 책에는 답이 있다. ‘경이로운 꿀벌의 세계’(위르겐 타우츠 지음, 이치사이언스 펴냄)는 정말 경이로울 정도로 벌의 사생활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더운 날이면 특화된 일벌들이 습기 있는 지하나 야외의 물가에서 냉방을 위해 물을 모은다. 그리고 물을 벌집 안으로 운반해 방 가장자리나 방 뚜껑 위에 얇게 바른다. 그러고 나면 부채질하는 벌들이 날개로 부채질을 시작한다. 이런 ‘제자리 비행’은 공기의 흐름을 만들어내어 물을 증발시키고 벌집의 온도를 낮춘다’(위 책 261~263쪽)

이렇게 벌집의 온도를 낮춰야하는 이유는 바로 벌집에서 자라고 있는 유충들이 더위를 먹어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8월 초 가평의 낮 기온은 섭씨 38~39도에 이를 만큼 폭염의 연속이었다. 뜨거운 공기를 뚫고 물이 찰랑이는 강가에서(벌에게는 거센 파도로 느껴졌을) 물 한 모금을 입에 담는 것. 얼마나 위험하고 고된 노동이었을까. 벌에게 애틋한 마음이 생겼다. 꿀벌의 목을 싹둑싹둑 자르는 사나운 이미지 때문에 단 한 번도 말벌을 좋아한 적이 없던 나는, 이날 이후로 말벌의 팬이 됐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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