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석 부평역사박물관 학술조사위원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고속도로나 동해안을 옆에 끼고 뻗어 있는 7번 국도를 달리다 보면 ‘아시안 하이웨이(Asian Highway)’라고 써놓은 표지판과 마주친다. 뜬금없는 이정표다. 중국ㆍ인도ㆍ터키 등의 나라 이름이 적혀 있어서 내친 김에 차를 몰아 계속 달리면 아시아 대륙을 가로질러 유럽까지 갈수 있을 것 같은 환상에 잠시 빠져든다. 태평양 끄트머리에서 차를 타고 출발해 대서양에 발을 담글 수도 있다는 착각, 나쁘진 않다.

아시안 하이웨이는 ‘현대판 실크로드’라는 이명을 갖는다. UN 산하에 있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ESCAP)가 주관해 만든 도로망이다. 여객과 화물 운송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을 터인데 문화 교류의 연결망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도 담겨 있다. 국가 30여개를 관통하는 도로를 언제 이용할 수 있을지, 그건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는 한때 ‘아폴로 하이웨이’도 있었다. 경인고속도로를 부르는 다른 이름이다. 1969년 7월 21일, 미국의 우주선 아폴로 11호가 달 위에 사람을 내려놓자, 건설부가 이를 기념해 경인고속도로를 개명한다고 밝힌 명칭이다. 이날은 가좌와 인천을 연결하는 마지막 구간을 개통한 날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보름 후인 8월 5일, 미국에서 만든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선 이글(독수리)호의 모형이 인천항을 거쳐 아폴로 하이웨이를 통해 서울로 옮겨졌다. 짧은 고속도로지만 사람들은 여기서 끝없는 우주를 바라봤다.

우리나라 최초의 고속도로이면서 우주선의 이름까지 부여받은 경인고속도로는 분명 국민들에게 희망을 안겨줬을 것이다. 우리도 달에 사람을 실어 보낼 날이 있을 거라는 희망, 우리도 이제 잘 살아볼 수 있을 거라는 믿음,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앞만 보고 달렸던 그 시절 그 사람들의 바람을 상상하면 가슴이 아리다.

경인고속도로가 바뀐다. 이미 일부는 직선화 구간이 됐고, 일부는 일반화 구간으로 변경된다. 경인고속도로는 1969년, 산업화시기에 건설됐지만 황무지에 만든 도로는 아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는 이곳 주변에 대륙침략전쟁 수행을 위한 국방도로를 깔았다. 아시안 하이웨이와 마찬가지로 아시아로 향한다는 목적이긴 했어도 의미는 사뭇 다르다. 그 전에는 신작로도 깔렸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시대의 길이 있다. 그 이전에도 길은 계속 있었을 것이다. 8월 31일에 열린 ‘인천지속가능발전 정책포럼’ 자료집에 실린 얘기다.

이날 포럼에서는 경인고속도로 일반화 구간에 대한 다양한 구상도 함께 발표됐다. 녹색 공간 확충을 위한 전면 녹지화, 인천가치의 집중 조명과 산업 발전을 전제로 한 재생 중심의 도로 조성 등, 많은 의견이 나왔다. 노면전차(트램)를 건설한다는 얘기도 다른 곳에서 얼핏 등장한다.

40여 년을 훌쩍 넘긴 경인고속도로의 변화는 또 다른 희망을 품게 해준다. 도로 북쪽 지역과 남쪽 지역의 온전한 소통과 통합도 기대할만한 미래다. 본디 한 공간이었을 양쪽 지역이 도로로 인해 서로 남의 마을이 됐다. 길과 함께 수백 년을 함께 했을 공간의 복원도 점쳐 본다. 원래 길이었던 도로를 다시 길로 만들어 사람에게 돌려줘야하는 것이 기로에 선 경인고속도로의 기본목표가 돼야할 것이다. 업적을 쌓기 위한 조급한 판단이 앞서지 않길 바랄 뿐이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