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노동인권 신장 위해 이제는 학교 밖에서 활동”
“청소년 노동인권 신장 위해 이제는 학교 밖에서 활동”
  • 김영숙 기자
  • 승인 2016.09.05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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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투데이이 만난 사람] 정년퇴임한 하인호 교사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활동가)

지난 8월 19일 오후 7시, 남동구 간석동에 있는 시민문화공동체 ‘문화바람’에서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행사가 열렸다. 연수구 ‘늘푸른교실’ 공부방 아이들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했고, 비보잉을 하는 아이도 있었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에서 만난 활동가들은 청소년 노동인권을 주제로 한 상황극을 준비했다.

인천평화복지연대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인천지부 활동가들은 영상을 만들었다. 모두 이날의 주인공인 하인호(사진) 교사를 위해서였다. 하 교사의 아들은 첼로를, 딸은 바이올린을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팀과 함께 연주했다.

이 행사의 제목은 ‘노동자 하인호 정년(精連. 정을 잇다)하다’였다. 문화바람 2층 행사장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인천비즈니스고 교사인 하씨의 정년퇴임을 축하하러 모인 사람이 예상보다 많아, 주인공은 계속 미안해했다. 그의 교사인생 36년을 정리하는 자리를 축하하러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보니 그의 삶이 보였다.

정년퇴임을 하루 앞둔 8월 30일, 남동구의 한 커피숍에서 하 교사를 만났다.

정년퇴임 후 할 일들을 준비 중

▲ 지난 8월 19일 남동구 간석동 ‘문화바람’에서 교사 노동자 하인호의 정년퇴임식이 열렸다. 그와 관계를 맺은 여러 단체 회원들이 참여해 행사장에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퇴임식이 형식적으로 되는 것 같아 안 하려고 했다. 전에 다녔던 문학정보고 동료 교사들도 그렇고, 주변에서도 언제 하냐고 자꾸 물었다. 내가 관여했던 단체 사람들이 서로 만나는 자리가 된다면 의미가 있겠다 싶어 추진했다”

하씨의 말을 들으니, ‘정년(精連. 정을 잇다)’이라는 행사 제목이 쉽게 다가왔다. 하씨가 관여한 단체는 전교조,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인천평화복지연대, 지역아동센터 ‘늘푸른교실’, 노동자교육기관 등, 적지 않다. 그의 바람대로 퇴임식 3개월 전에 관련 단체 회원들은 준비위원회를 꾸렸고, 퇴임식을 준비하면서 서로 알아 좋은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퇴임식을 하고 난 기분이 어떠냐는 물음에, 하 교사는 “퇴임하고 낙향하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인천에서 지금까지 해온 활동을 계속할 생각이다. 단지 기반을 학교에서 학교 밖이라는 곳으로 옮긴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한 뒤 “오히려 언제 나오느냐고 밖에서 같이 일할 생각만 하는 사람이 많다”며 웃었다. 퇴임식을 전후로 노동인권 관련 강의를 하러 전국을 다니느라 퇴임식 날짜가 다가오는지도 몰랐을 정도였단다.

하 교사가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네트워크)에서의 직책을 물으니, ‘활동가’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잘못 들은 것 같아 재차 물어도 같은 답이었다.

“개인 활동가들이 중심이 된 네트워크라 집행체계를 두지 않는 채 10년 동안 지냈다. 공동집행위원장 체계를 갖춘 지역도 있는데, 장단점이 있다. 상시적 연대와는 달리, 네트워크는 사업이 필요할 때마다 역할을 맡으면 된다”

많은 단체 활동을 경험한 그에게 네트워크의 강점을 물었다.

“많은 조직을 경험했지만 조직의 대표에 따라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한 사람한테 집중되면서 그 사람에게 문제가 생기면 와해되는 것을 경험했다. 네트워크는 각자의 본업이 있으면서, 다양한 시각으로 청소년 노동인권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인다. 최종 결정을 누가 하는 게 아니라, 함께 결정하고 집행한다. 처음 오는 사람은 당황한다. 사업이 될까 싶은데, 되더라”

청소년+노동+인권

▲ 하인호 교사.
1981년 인천보건고(옛 경인여상)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한 하씨는 본인 말로는 지극히 평범한 교사였다.

“사립 상업학교이다 보니 상업ㆍ체육ㆍ교련ㆍ컴퓨터 등, 인문학 전공과는 거리가 있는 교사들이 대부분이었고, 대학 때 학생운동 경험이 있는 사람도 없었다. 학교 안에서 교사들끼리 모여 불평불만도 하고 인문학 책도 읽고 교사협의회 신문도 보는 모임을 진행했다. 그때가 전교조 출범할 즈음이었고, 조합에 가입한 것만으로도 해직 대상에 올랐다. 어찌해야할지 모르고 겁이 났는데, 부모님까지 동원해 조합 탈퇴서를 쓰게 했다”

1992년 ‘교육대개혁과 해직교사 원상복직을 위한 추진위원회’가 꾸려졌다. 하씨는 인천 추진위원장을 맡았고, 해직됐다. 그 때 정말 시원했단다. 빚을 조금 갚은 기분이었을까? 이듬해 전교조 인천지부장을 맡았고, 같은 해 인천여상으로 복직했다.

“그때 전교조 안에 실업교육위원회가 만들어졌다. 당시 여상을 졸업한 학생들이 은행에 취직하려면 ‘키 163m 이상, 몸무게 53kg’라는 조건을 통과해야했다. 여성민우회와 함께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으로 대기업 세 곳을 고발했다. 이 사건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그 후 전교조에 ‘노동실업분과’가 생겼고, 하씨가 분과장을 맡았다. 2005년에는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의 이름으로 ‘똑똑 노동인권교육 하실래요’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2006년 무렵 ‘노동인권 교육’이라는 이름이 정착되게 민주노동당 국회의원들과 ‘노동인권 일일교사 되다’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전국의 학교 일곱 곳을 선정해 학생들에게 노동인권을 교육했다. 그때만 해도 청소년ㆍ노동ㆍ인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급진적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 용어 세 개를 다 썼으니,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에서도 주시했다”

2008년, 인천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가 활동을 시작했다. 그 후 학생이나 교사 대상의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을 줄기차게 진행했다. 최근에는 학부모를 대상으로 교육하기도 했다.

“인천세무고 학부모회 회장이 자리를 마련했다. 학생들의 아르바이트 현실이나 현장실습 실태와 피해사례를 얘기하고 토론했다. 가장 중요한 건 어떤 시선으로, 누구의 입장으로 볼 건가이다. 청소년 노동에 방점이 찍혔지만, 노동인권이 청소년만 필요한 건 아니다. 노동자입장에서 어떻게 볼 건지 생각해보게 했다”

현장실습 문제, 민주노총이 나서야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열아홉 살 노동자가 지난 5월 허망하게 죽었다. 세상은 분노했고 비정규직과 청년의 열악한 처지를 공감했다. 사망한 김군이 다니던 회사는 그가 특성화고를 다닐 때 현장실습을 나간 회사였다.

현장실습제도의 문제점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2011년 12월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현장실습생이 주 72시간에 이르는 노동을 하다 뇌출혈로 쓰러졌고, 2012년 12월 울산 신항만 공사현장에서 작업선이 전복되는 사고로 현장실습 학생이 사망했다. 2014년 1월에는 CJ제일제당 충북 진천공장에서 일하던 현장실습생이 사내 괴롭힘과 폭행을 견디다 못해 자살했고, 같은 해 2월 울산 금영ETS 공장 붕괴사고 현장에서 현장실습 학생의 시신이 발견됐다.

“현장에서 직업교육훈련을 받는 것이 필요하긴 하다. 그러나 제도를 악용해 조기취업을 보낸다. 서류상 실습생인데 실제 취업해서 노동을 하는 거다. 실습생이라는, 어리다는 이유로 회사에서는 막 대한다. 노동법 적용도 안 받았다. 2011년 기아차 사건 이후 그나마 노동자로 인정해줘 노동법 적용 대상이 되긴 했지만, 현장에서 바뀐 건 별로 없다. 남학생은 사고가 나면 언론에라도 드러나는데, 여학생 성희롱 문제는 잘 알려지지도 않는다”

하씨는 스웨덴이나 핀란드, 독일 등은 실습을 실습답게 한다고 말했다. 실습생들의 권리가 법적으로 철저하게 보장되는데, 노사정 합의로 노조가 견제역할을 제대로 하기 때문이란다.

“기아차 현장실습생 문제가 드러난 건, 노조가 결합해 대책위를 꾸려서 가능했다. 하지만 기아차부터 양심선언을 해야 한다. 명절에 정규직이 휴가 갈 때 실습생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노조가 실습생 문제에 개입해야한다.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도 원론적으로는 같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동의하지만, 진전이 안 된다”

청소년 노동자는 우리의 ‘동지’ 

▲ 하인호 교사.

과연 대안이 뭘까?

“현장실습 시기를 늦추자는 거다. 11월 정규교육과정을 마치고 입사에 합격한 친구들은 연수과정을 거쳐 졸업한 후에 정식으로 취업하는 거다. 현 정권은 1학기 종료 후 8월에 취업하게 하거나, 사업주 책임을 강화하고 현장실습 표준협약서를 사업주가 작성하지 않으면 범칙금을 부과하는 등의 안을 제시하지만, 그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하씨는 민주노총을 향해서도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민주노총에 계속 현장실습생 실태조사를 요구하는데, 잘 안 된다. 구의역 사고로 사망한 김군이 다니는 회사도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이다. 민주노총이 개입해 청년 조직화 사업을 해야 한다. 교육부 등의 정부부처에서도 지금의 현장실습제도가 정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의식은 같지만 해결방법이 조금씩 다르다”

올해 5월 경기도 분당의 한 외식업체에서 일하다 자살한 한 청년의 아버지가 구의역 사고를 보고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로 연락했다. 기자회견을 하고 추모공간을 만들었는데 지방 정부에서 철거했고, 시민들의 항의로 원상 복구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다.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에 대한 공감대를 넓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정규직 문제도 현장실습과 연결된다. 청소년 노동자를 아르바이트생으로 보거나, 활동가들은 보호하고 지켜줄 대상으로만 본다. 동료 노동자로 보는 것이 노동운동의 출발이다. 그들은 ‘동지’다. 대상화하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