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직장 ‘동료’들은 나와 10년에서 17년 나이차가 난다. 이제 막 사십대에 발을 들여놓은 나를 제외하곤 모두 오십대 초ㆍ중ㆍ후반에 넓게 포진해있다. 예전 직장에서는 이정도 나이 차가 나는 이들과 역할이 확실히 구분되는 업무를 맡아 마주칠 일이 많지 않거나, 직급 상하관계여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굳이 나눌 필요가 없었다. 지금 나는 그들과 같은 일을 하고, 업무상 이야기도 많이 주고받는다. 그럼에도 그들은 나를 ‘동료’로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그들에게 나는 가정사ㆍ인간사ㆍ세상사를 잘 모르는, 나이 어린 후배다.

“아이 하나쯤은 있어야해. 그래야 희로애락을 알지” “커피 맛을 모르다니, 무슨 재미로 살아?” “다 그렇게 살아. 그런 게 싫으면 결혼은 왜 했어”

결혼 후 아기 없이 잘 살고 있고, 카페인이 든 음료나 차는 마시지 않고, 명절 전 남편과 신경전을 벌이는 내게 우리 ‘동료’들이 하는 이야기다.

말수가 결코 적지 않은 내가 직장에만 가면 말을 아낀다. 나와 생각이 다른 그들의 ‘주장’에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으로도 완전히 ‘기가 빨리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문화생활을 즐기며 나름 여유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그들. 오십대가 되면 다 그런 걸까? 아니면 내가 운이 없어서 유독 이렇게 심한 꼰대들을 만난 걸까?

 
최근엔 ‘쉑쉑버거’(쉐이크쉑 버거)가 도마에 올랐다. 엄밀히 말하면, ‘미국 뉴욕의 명물 프리미엄 수제 버거’라는 긴 수식어가 붙은 햄버거 가게가 서울 강남에서 국내 1호점 간판을 달고 문을 열던 날, 그 햄버거를 맛보려고 몇 시간 동안 땡볕에 줄 서 기다리는 ‘젊은이’들이 걸려든 것이다. “햄버거 하나 때문에 더운 날씨에 그 고생을 해?” “왜 쓸 데 없는 것에 시간을 들이는지 모르겠어” “나 같으면 창피해서 줄 안 서” “내 딸이면 가만 안 뒀어” 등, 예상 가능한 이야기가 다 나왔다.

옆에서 듣고만 있자니, 괜히 속이 상했다. 바로 그때, 내 눈에 직원 중 한 분의 가방에 달려 있는, 코바늘로 뜬 코사지가 눈에 들어왔다. 젊을 때 손으로 무언가 만드는 걸 즐기셨다는 그분, 한동안 아이 키우며 바쁘게 사느라 손에서 놓았던 것을 요즘 다시 시작해 무릎담요와 수세미 뜨는 재미에 푹 빠지셨단다. 그런데 취직해 독립한 딸이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며 코바늘만 잡으면 그렇게 구박을 한다나. 딸이 집에 오는 날엔 실 숨기기 바쁘다며 ‘요즘 애들이 그런 재미를 알겠어?’ 하던 말이 생각났다.

“그게 꼭 햄버거를 먹는 게 목적이 아니라, 일종의 문화로 즐기는 것 같아요. 20대 중엔 뜨개질 하는 거 이해 못하는 친구도 많아요. 돈 주고 사면 편한데 왜 손으로 뜨느라 고생하느냔 거죠. 예전 세대엔 그냥 재미이고 문화인데 말이에요”

내가 정곡을 찔렀나? 아주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 나이가 되면 갑자기 물줄기를 바꾸는 재주도 있나보다. 이야기는 순식간에 다른 곳으로 흘렀다. ‘예전엔 별 걸 다 손으로 만들었어’ ‘애들 어릴 땐 햄버거도 만들어 먹였다니까’ ‘만들기 어렵지도 않아. 다진 고기, 두부, 양파, 빵가루 넣고 치대면 되는데’ ‘맞아, 맞아. 요즘 애들은 외식을 너무 많이 해’

나는 햄버거 만드는 방법을 더 자세히 듣고 싶었지만 버스는 이미 지나가고 말았다. 이후 따로 여쭤본 수제 버거 만드는 법은 정말 간단했다. 두부의 물기를 면보나 주방휴지로 꾹 짜 없앤다. 표고버섯과 송이버섯, 양파를 곱게 다진다. 위 재료에 다진 소고기, 계란, 빵가루, 소금, 후추를 넣고 끈기가 생길 때까지 치대면 끝. 계량 따윈 필요 없다. 반죽이 질면 빵가루를 더 넣으면 된다. 나는 소고기를 좋아하지 않아 두부와 버섯만 넣었다. 맛은? 두 말 하면 잔소리. 아주 만족스럽다.

줄 서서 ‘쉑쉑버거’ 사먹는 것과, 건강 버거를 직접 손으로 만드는 것의 차이? 글쎄다. 어쩌면 그분들도 알고 있을지 모른다. 둘 사이엔 아무런 차이도 없다는 걸. 이걸 인정해도 그들의 지나온 삶의 값어치가 없어지지 않을 텐데. 우리 꼰대들의 삶을 위로하며, 십여 년 후의 나를 떠올려볼 뿐이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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