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간] 송암미술관 특별전 ‘우리 미술 속 소나무와 바위 이야기 2’

▲ 송암미술관 특별전 ‘우리 미술 속 소나무와 바위 이야기 2’.
남구 학익1동에 위치한 송암미술관에 갔다. 인천항이 가까운 이곳은 택지개발 예정지구 주변으로 허허벌판이기도 하면서 여기 저기 공사를 하고 있어 먼지가 날렸다. 송암미술관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니 ‘시원하게 뚫린 해안도로 옆으로 프랑스풍의 향기가 느껴지는 곳’이라고 설명한 글이 있어, 기대를 한 터라 실망스런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정문 안으로 들어가니 멋있게 자란 소나무와 정원 곳곳에 문인석과 장승ㆍ불두ㆍ석탑 등, 갖가지 석조물이 있었다. 잔디밭에는 중국 지린성 현지의 광개토대왕비를 원형 그대로 재현한 비석도 있었다. 찾아간 13일은 휴관일이었는데, 광개토대왕비의 훼손을 방지하고자 지붕 공사를 하고 있었다.

김동근 학예사로부터 지난 8일부터 8월 21일까지 열고 있는 특별전 ‘우리 미술 속 소나무와 바위 이야기 2’의 의미와 송암미술관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소나무, 지조와 절개의 세계를 만나다

▲ 송암미술관을 대표하는 정선의 ‘노송영지도’.
송암미술관은 2011년 재개관 기념 특별전으로 ‘우리 미술 속 송암(松巖)이야기 1’을 개최했다. 이번 전시는 그 특별전을 이어 올해 재개관 5주년을 맞아 여는 것이다. 5년 전 특별전이 조선 후기 문인화(文人畵)에 표현된 소나무와 바위에 관한 것이었다면, 이번 특별전은 문인화뿐만 아니라 생활과 밀접한 미술품에 표현된 소나무와 바위에 관한 것이다. 소나무와 바위의 변치 않는 모습에서 문인들은 절개와 탈속을 읽었고, 불로장생을 꿈꾸는 사람들은 장수를 투영했다.

“이번 전시는 소나무와 바위, 두 섹션으로 나눴습니다. 우리나라의 소나무 문양은 삼국시대에 최초로 등장합니다. 고구려 진파리 고분벽화에 그려져 있어요. 백제시대 산수 무늬 벽돌에도 소나무가 있습니다. 작품만 보고는 소나무인지 헷갈릴 수도 있지만 도교가 전파됐던 삼국시대의 분위기로 봐서 소나무로 추정됩니다. 통일신라 때 솔거는 황룡사에 노송도를 그렸고, 진짜 소나무인줄 알고 날아온 새들이 부딪혀 죽은 일화가 전해지잖아요. 조선시대 성리학자들도 사시사철 변하지 않는 절개를 상징하는 소나무를 많이 활용했습니다”

소나무 섹션은 주제 세 가지로 구성했다. 첫 번째가 ‘선비의 이상’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소나무를 대나무ㆍ매화와 함께 추위를 견디는 세 벗, 즉 세한삼우(歲寒三友)라 부르며 지조와 절개의 상징으로 삼았다. 소나무를 그림으로 그렸고, 소나무로 장식한 생활용품의 사용을 즐겼다.

“전시된 ‘청자상감수목문매병’은 세 방향에 나무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소나무입니다. 조선 말기 장승업과 어깨를 나란히 한 문인화가 유숙의 ‘송도(松圖)’도 전시돼 있습니다. 선비들이 꿈꾸는 안빈낙도의 세계가 담겨있는 그림들에는 여유가 느껴지고 선비들의 기상과 절개가 드러납니다”

두 번째 주제인 ‘구복(求福)과 벽사(辟邪)의 상징’ 코너에는 소나무와 함께 호랑이가 표현돼 있다.

“벽사는 사악한 것을 물리친다는 뜻인데 대표적인 게 ‘호작도(虎鵲圖)’에요. 호랑이와 까치, 소나무가 있는 게 일반적입니다. 까치는 좋은 소식을 가져오고, 호랑이는 나쁜 소식을 막아주죠. 소나무는 정월을 뜻해 ‘새해에 좋은 소식만 가져오고 나쁜 소식은 물리쳐라’는 의미로 호작도를 그렸습니다. 조선시대 후기의 민화나 문인화는 특정한 의미를 담고 있어요. 그걸 그림으로 표현한 거죠”

호작도 류의 그림은 도자기에도 새겨져있고 조선시대 관복의 가슴과 등에 장식한 표장인 흉배(胸背)에도 남아 있다.

마지막 주제인 ‘장수(長壽)의 기원’에는 장생불사를 표상하는 십장생을 그린 민화나 도자기 등이 전시돼있다. 십장생인 소나무와 바위, 학과 거북이뿐만 아니라 천도복숭아도 그린 작품이 있다.

바위, 의연함과 굳건함을 배우다

▲ ‘사랑방에 들인 바위산’이라는 테마로 전시한 청화백자산형연적 등의 연적과 필세.
바위는 부피가 큰 돌로 중국 고대에는 돌을 흙의 정기가 뭉친 덩어리로 파악했다. 옛 사람들은 어떤 환경에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는 바위의 모습에서 문인이 배울 태도를 발견했고 변함없는 모습에서 불로장생을 읽었다. 문화와 미술에 나오는 바위는 주로 괴석(怪石)이다. 괴석은 평범하지 않고 괴이하게 생긴 돌을 뜻하며, 중국 고대 서경(書經)의 ‘우공’편에서 이 용어가 사용됐다고 알려졌다.

바위 섹션도 주제 셋으로 구성했는데 ‘문인의 완상 취미, 괴석’과 ‘사랑방에 들인 바위산’, ‘복록(福祿)의 기원’이 그것이다.

“수석 중 괴석이 가장 비쌉니다. 벼루에 먹을 갈 때 쓰는 물을 담아 두는 그릇인 연적 중 ‘매화대나무무늬연적’이라는 조선 후기 작품이 전시돼있어요. 사군자와 함께 괴석을 그려 넣었는데 개구리의 하얗고 섬세한 발가락까지 다 보입니다. 선배들의 취향을 잘 반영한 아주 고급 작품입니다”

▲ 호작도.
‘사랑방에 들인 바위산’ 코너에는 ‘청화백자산형연적’이 있다. 이 연적은 흙을 쌓아 올린 방식이 석가산(돌을 쌓아 산세를 형상화한 것)의 축성 방식과 비슷하다. 이는 전통 산수화론 중 와유(누워서 유람)와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이며 연적을 마치 산처럼 여겨 사랑방에서도 편히 산수를 감상하고자했던 문인들의 욕구를 반영한 듯하다.

마지막 ‘복록의 기원’ 코너에는 복록(福祿: 복되고 영화로운 삶)을 기원하는 민화(民畫: 무명인의 그림)에 상징적인 소재와 결합된 바위를 볼 수 있다. 바위가 모란과 함께 그려지면 장수와 부귀를 의미하며, 나비와 함께 그려지면 장수와 부부의 해로를 기원한다. 특별전에는 모란화 밑에 괴석을 그려 넣은 궁중화가 전시돼있다.

전시작품을 다 보고 나가는 출구 앞에는 돌로 동물을 그린 그림 두 점이 있다.

“이 그림들만 보고가도 전시회 전체를 본 것처럼 값진 그림입니다. 상상으로 돌을 동물처럼 표현했어요. 이런 류의 그림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디에도 없어요. 민화이다 보니 정확한 시기나 작자를 알 순 없지만 독특한 화풍입니다. 작가적 창의성으로 그렸지만 원하는 바를 담고 있어요. ‘암호도’ 두 점 중 하나는 호랑이 엉덩이 부분에 영지를 그려 넣어 장수를 상징했는데 재밌는 장면입니다”

인천 유일의 고미술관인 송암미술관

▲ 암호도.(조선 후기, 경기대학교 박물관)
송암미술관은, 고(故) 이회림 OCI(전 동양제철화학) 명예회장이 1989년 서울시 종로구 수송동에 개인미술관으로 개관했고, 1992년 OCI 인천공장이 있는 남구 학익동으로 이전했다. 2005년에 이 명예회장의 뜻에 따라 문화재 8400여점을 포함한 미술관 일체를 인천시에 기증했다. 2007년 인천시립박물관 분관으로 편입됐으며, 미술관 관리 동과 본관 동 리모델링 공사를 완료한 후인 2011년 재개관했다.

“미술관 이름이 고(故) 이회림 명예회장의 호입니다. 미술관이 개발 예정구역에 있고 버스 등, 대중교통이 다니지 않는 외진 곳이라 인천 사람들이 잘 모릅니다. 이번 특별전도 미술관을 알리자는 취지로 기획했습니다. 이곳은 인천의 유일한 고미술관입니다. 고미술품은 개항 이전이나 일제강점기 이전의 모든 미술품을 통칭합니다. 근대가 시작되는 시점까지의 미술이라고 보면 되죠”

송암미술관에는 도자기ㆍ불상ㆍ생활공예품ㆍ회화ㆍ서예ㆍ인장 등, 고미술품 1만점이 넘게 있다. 특히 2층 전시실에는 겸재 정선의 ‘노송영지도’가 전시돼있다. 송암미술관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 김동근 학예사.
“겸재가 80세에 그린 작품이에요. 많은 작품이 예술가 사후에 유명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겸재는 85세까지 살아서 살아있을 때 유명해졌죠. 우리 미술관이 보유하고 있는 작품 중 가장 고가의 작품입니다”

이 그림은 2001년 이 명예회장이 경매에서 7억원에 낙찰 받았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인천시에서 국가문화재로 지정받기 위해 문화재청에 심의를 신청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장승업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작품 두 점도 보유하고 있다.

‘노송영지도’는 이번 전시 작품에서 제외했다. 1년여 전에 수장고에서 상설전시장에 올라와 다음 달 다시 수장고에 들어갈 예정이기 때문이다.

“우리 미술관은 접근성이 떨어져 많은 시민이 오기에는 좋은 조건은 아닙니다. 그러나 수준 높은 전시와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마련해놓고 학생들이나 시민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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