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구보의 ‘구술로 보는 인천 민간소극장사’ <4>
“제가 군대 갔다 와서 2년 쉬는 동안 저녁이면 거길(=까페 깐느) 가곤했지요. 여자 관객이 많았거든요. 여인들의 향기를 맡으러 갔던 기억이 나네요. ‘돌체’는 유용호가 맨 처음 시작했어요. 경동예술극장은 정진, 미추홀은 김종원, 배다리는 이원석(이정환)이 있었지요. 90년대는 모르겠어요”(김윤식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이병복 극단 ‘자유극장’ 대표의 권유로 이유용씨가 그의 부모 설득해 개관
1974년, 인천에 처음으로 연극을 공연하는 민간소극장 까페 깐느가 개관했다. 경동사거리에서 5m정도 올라가면 오른쪽에 있는 신축 건물(중구 용동) 3층에 둥지를 틀었다. 이우용씨가 몸담고 있던 극단 ‘자유극장’의 대표 이병복씨의 권유로 이유용씨가 그의 부모님을 설득해 문을 연 것이다. 이우용씨는 인천토박이로 서라벌예술대학교(나중에 중앙대 연극영화과로 흡수ㆍ통합됨)에서 연극을 전공했다. 연극배우 추송웅ㆍ민욱ㆍ황범식씨가 동기다.
그는 졸업 후 극단 자유극장의 단원으로 최불암ㆍ김혜자ㆍ함현진ㆍ추송웅ㆍ이성웅씨 등과 함께 활동했다. 중앙대 교수를 한 김정옥씨가 자유극장의 고정 연출가였다.
이병복씨는 극단 자유극장의 대표이자 무대 미술가였다. 프랑스에서 연극을 공부했고, 남편 권옥연(화가이자 홍익대 교수)씨와 함께 1969년 서울 명동에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소극장인 ‘까페 떼아뜨르’를 개관했다.
까페 깐느는 원형의 무대와 계단식 객석(약 50석)으로 구분됐으며, 당시 공연 관람료가 1000원으로 비교적 비쌌지만 관람객에게 차를 제공하기도 했다고 하니, 비교적 고급스러운 공연문화를 엿볼 수 있다. 공연 홍보는 전단을 직접 붙이거나 별도의 비용 없이 신문 광고로 했다고 한다.
인천에 희한한 곳 생겼다고 관객들 찾아와
지역예술 서울에 흡수됐던 터라 경영 어려워
제가 외아들인데, 결국 부모가 자식한테 지더라고요. 그렇게 소극장을 만들었어요. 서울에 있는 ‘까페 떼아뜨르’에서 공연을 끝내면 그 공연을 여기 와서 했어요. 체인 비슷하게. 극단 ‘민예극장’의 손진책(연출가)씨 하고 공연을 같이 했는데, 연출료는 못주고 식사나 차비만 주면서 했지요. 관객이 호기심에 오기도 했어요. 그때 1000원을 받았어요. 커피 값이 200~300원 할 땐데, 차 한 잔씩 주고 연극을 보여줬으니까요”
까페 떼아뜨르는 극단 자유극장이나 민예극장 등과 교류했고,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는 전무송(연극배우)ㆍ조일도(연출, 신춘문예 한국일보 희곡부문 당선)씨 등과 작업해 유명 극단의 작품을 재공연하거나 자체 제작해 공연하기도 했다.
당시 ‘인천에 희한한 게 생겼다’고 대학생들이 까페 깐느를 찾기는 했으나, 경영이 어려워 1년여 하다가 문을 닫았다. 당시 대학생들의 생활권이 서울이었고, 지역의 예술분야가 서울에 흡수됐던 터라, 경영이 어려웠고 이우용 대표의 가족도 반대했다.
※ 장구보 구보댄스컴퍼니 대표의 ‘구술로 보는 인천 민간소극장사’를 격주 간격으로 연재합니다. 이 연재는 지난 2월 ‘구술로 보는 인천 민간소극장사(출판 보고사)’를 바탕으로 장구보 대표가 일부 수정해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