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수의 걷기여행 43. 중국 청도(상)

▲ 소어산공원에 있는 누각 ‘남조각’에서 바라본 청도의 해안 쪽 풍경.
지난 5월 5일부터 7일까지 2박 3일간 연휴를 이용해 친구들 세 가족과 함께 중국 청도(칭다오)에 다녀왔다. 대학 후배가 청도에 살고 있어서 진작부터 한번 다녀오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연휴기간에 다녀오려니 항공권 구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에어텔 상품도 모두 매진이었다. 너무 늦게 알아봤구나, 자책하며 여행을 포기하고 있었는데, 누가 취소했는지 한 여행사의 패키지상품이 있었다.

공항은 생각보다 붐비지 않았다. 하기야 경제 활성화 미명 하에 5월 6일을 공휴일로 지정한다는 결정을 거의 6일에 임박해 발표했으니, 국내 여행은 몰라도 국외 여행은 대부분 준비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국경일이 공휴일과 겹치면 뭔가 손해 본다고 느낀다. 국경일을 그런 식으로 복불복으로 쉬는 것보다는 일본처럼 ‘국경일이 공휴일과 겹칠 때에는 그 다음 월요일에 쉬기로 한다’고 법률로 정해두거나, 아니면 국경일을 금요일이나 월요일 등으로 요일을 지정하는 방법도 있다. 하기야 그것보다 더 우선해야할 일은 모든 국경일과 선거일 등을 유급휴일로 지정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공무원들이나 대기업 종사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박탈감이 큰 중소기업 노동자들에게는 국경일이나 갑작스런 공휴일 지정이 오히려 소외감을 더 크게 하고, ‘휴일의 양극화’만 부추기는 일이 될 것이다.

비행기 안에서 영화 ‘45년 후’를 봤다. 결혼 45주년을 기념하는 파티 준비에 여념이 없던 부부에게 남편 첫사랑의 시신이 알프스에서 발견됐다는 편지가 도착한다. 그날 이후부터 남편은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고, 다락방에 보관했던 첫사랑과 찍은 사진앨범을 찾아내 온종일 과거를 추억한다. 첫사랑 소식에 흔들리는 남편을 보며 불안한 아내, 무려 45년 전 첫사랑 이야기에 민감한 아내를 이해하기 어려운 남편, 그들이 함께 산 45년이란 세월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아내에게 남편은 인생을 건 운명적 사랑이었지만, 남편에게 아내는 그저 이전의 사랑이 끝나고 다시 찾아온 하나의 선택에 불과했을까?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여행을 할 때마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배우는 건 당연하지만 비행기 안에서 아직도 배울 게 남아 있는 줄은 몰랐다. 그동안 숱하게 비행기를 타고 다녔으면서도 비행기 앞과 아래를 볼 수 있는 카메라가 달려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비행기 좌석에 앉아서 비행기 앞과 밑의 풍경을 보니 신기했다.

# 1903년 독일인이 설립한 청도맥주

▲ 청도맥주 공장 생산시설.
시간을 한 시간 벌고 청도공항에 내렸다. 여행을 도와줄 가이드를 만나 인사를 나누고 맨 먼저 그 유명한 청도맥주 공장을 견학하러 갔다. 공장 마당에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조형물을 세워놓았다. 그게 벌써 13년 전인 2003년이니, 올해로 113년이 됐다. 청도맥주박물관을 지나 생산시설을 견학했다. 시진핑도 다녀갔다. 지난 겨울 가봤던 홋카이도의 아사히맥주 공장처럼 이곳도 자동화시스템이라, 일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사람이 술에 취하면 어떤 상태가 되는지 체험해보는 ‘취주소옥’이라는 곳을 만들어놨는데 밖에서도 볼 수 있게 했다. 재미있는 발상이다.

무료로 맥주 시음을 했다. 청도맥주 공장에서 만드는 청도맥주를 그 자리에서 바로 마시니 기분 때문인지는 몰라도 국내에서 마시는 청도맥주보다 훨씬 더 맛있는 것 같다. 14년 전인 2002년, 첫 번째 중국여행이자 첫 번째 청도여행 때 처음으로 청도맥주를 맛본 이후 청도맥주의 팬이 됐는데 맥주 맛을 잘 모르기는 하지만 뭔가 청량감이 더 느껴졌다.

알고 보니 맥주 맛이 다른 게 당연하다. 청도맥주 공장은 중국 성 18개에 40개가 넘게 있고, 전 세계 곳곳에도 공장이 있다. 지역마다 나라마다 물맛이 다르니 같은 청도맥주라도 모두 맛이 다를 수밖에. 청도맥주는 1903년에 독일인이 설립한 맥주회사다. 처음에는 당시 중국에 살던 독일인 선원ㆍ군인ㆍ무역 종사자들에게 맥주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었다. 현재 중국의 칭다오(=청도)맥주는 중국 맥주를 대표하는 브랜드이자 중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맥주로, 1954년부터 전 세계로 수출돼 60여개 나라에서 판매되고 있다.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청도맥주는 어느 나라에서 만든 것인지, 잘 살펴보고 마셔야겠다. 공장 밖으로 나오니 청도맥주 거리다. 값도 비싸지 않다고 한다. 맥주 공장 하나로 도시 전체가 먹고 산다.

▲ 청도맥주박물관 내 전시물.

# 소어산공원에서 만난 몽환적 풍경

▲ 청도의 퇴근시간대 도로 풍경.
소어산공원으로 갔다. ‘어산(魚山)’은 원래 어민들이 그물과 생선을 말리던 작은 언덕이었는데, 1984년에 공원으로 조성했다. 안개 때문에 잘 안 보이지만, 안개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풍경이 있다. 청도를 ‘홍와(紅瓦)ㆍ녹수(綠樹)ㆍ청해(靑海)’의 도시라고 하는데, 그 말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소어산공원이다. 남조각은 높이 18m의 8각 3층 누각이다. 남조각에 오르니 안개에 쌓인 고풍스런 붉은 기와와 푸른 나무와 푸른 바다가 만들어내는 풍경이 가히 몽환적이다.

공원을 걸어 내려오는데, 벽에 포스터를 붙여 놓았다. 다가가 자세히 읽어 보니 ‘중국(中國) 소년(少年) 인심(仁心) 대(大)’라고 써놓았다. 중국 소년들은 어진 마음이 크다? 해석이 맞나? 중국 소년들을 어진 사람들로 키우겠다는 교육당국의 생각인가? 우리가 탄 버스 옆으로 버스 한 대가 지나가는데 버스 뒤 쪽 유리에 전광판 글씨로 ‘학생전차(學生專車)’라고 써놓았다. 학생들만 타는 학생 전용 시내버스가 다 있네? 좋은 아이디어인 듯하다.

▲ 여행ㆍ오락ㆍ식사와 휴식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실내 복합 상업거리.
버스 창밖으로 저 멀리 잔교가 보인다. 청도맥주의 라벨 모양이 바로 이 잔교다. 5.4광장과 더불어 청도의 상징이다.

퇴근시간이라 그런지 도로가 자동차로 꽉 찼다. 교통정체가 심하다. 하기야 전 세계 모든 도시가 마찬가지인데, 청도라고 예외일까?

천막성은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한 호텔을 흉내 낸 듯하다. 2007년 새로 건설된 거리로 여행ㆍ오락ㆍ식사와 휴식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산동성 유일의 실내 복합 상업거리다. 그곳에서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청도맥주와 두 번째로 잘 어울린다는 바지락을 안주로(첫 번째는 양꼬치) 청도맥주를 또 마셨는데, 바지락이 너무 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거리인 타이둥 상업 보행가로 갔다. 서울 명동시장 비슷한 곳이다. 쇼핑몰ㆍ영화관ㆍ브랜드숍 등, 1980년에 세워진 시장이다. 이제 중국 어디를 가나 한글 간판이 간간히 눈에 띈다. 약간 놀란 건 시장이 아니라 육교에 에스컬레이터가 있다는 사실.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한 육교를 처음 본 것은 마카오에서였다. 그때 조금 놀란 기억이 있는데 타이둥에서 보니 더 놀랍다. 중국 경제 수준이 벌써 이 정도인가? 숙소로 돌아와 청도맥주 공장 선물코너에서 산 청도맥주를 마셨다. 청도에 왔으니 청도맥주는 실컷 먹어야하는 것 아닌가?

# 산둥반도 남쪽 해안에 자리 잡은 해양도시

▲ 청도 해안변의 빌딩들.
청도는 중국 산둥반도 남쪽 해안에 자리 잡은 해양도시다. 원래는 작은 어촌이었으나 1897년 독일군이 점령한 후 중요한 군항이 됐다. 이 지역에 눈독을 들여온 독일 정부는 자국 선교사 피살 사건을 구실로 군대를 급파해 칭다오를 점령했다. 상하이ㆍ톈진과 더불어 섬유공업의 3대 중심지다. 지명은 이 지역에 있는 작은 섬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

청도는 중국에서 네 번째로 큰 항구도시다. 유럽식 건물들이 남아있어, 작은 유럽에 온 것 같이 이국적 풍경을 자아낸다. 이런 이유로 ‘중국 속의 유럽’이라는 애칭도 갖고 있다.

청도에는 다양한 축제가 벌어지는데 그중에서도 ‘세계가 건배하는 무대’로 불리는 칭다오국제맥주축제가 가장 유명하다.

청도를 일컫는 명칭은 많다.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국에서 살기 좋은 10대 도시, 중국의 젊은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관광도시, 중국에서 가장 생동감 넘치는 레저도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도시 등. 인천은 어떤 도시라고 부를까?(다음호에 계속)

글ㆍ사진/ 신현수 사단법인 인천사람과문화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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