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지혜가 많은 선배시민입니다”
“노인은 지혜가 많은 선배시민입니다”
  • 김영숙 기자
  • 승인 2016.05.25 12: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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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투데이이 만난 사람] 정락녀 남구노인문화센터 사무국장

“남구에 살고 있어요. 나이 들면 이곳을 이용할 거예요. 그래서 미래에 제가 다닐 때 ‘남구노인문화센터가 이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거죠”

정락려(46) 남구노인문화센터(이하 센터) 사무국장의 말이다. 센터에서 벌이는 사업이나 프로그램에 애정과 정성이 없으려야 없을 수 없겠다. 지난 16일 정 사무국장을 센터에서 만났다.

직원을 존중하고 지지하는 센터장이 있기에

▲ 정락녀 남구노인문화센터 사무국장.
남구 용현동에 위치한 센터는 2007년에 설립됐다. 재단법인 인천교구천주교회유지재단이 남구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센터장은 인천교구 소속 한의열 신부다. 한 신부는 네 번째 센터장으로 개관 때 센터장이기도 했다. 정 사무국장은 센터의 장점이자 강점으로 센터장이 실무진의 경력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을 꼽았다.

“이곳에 오신 신부님들은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고 현장 경험이 있는 직원들을 존중합니다. 실무진을 믿어요. 우리가 뭔가를 하겠다고 하면, 믿고 지지해 주시죠. 그래서 우리도 일을 할 때 신부님을 믿고 의지해요. 우리가 무엇을 하더라도 든든한 배경이 돼주세요. 해보고 싶은 걸 마음껏 하라고 하시니까, 직원들이 노인복지와 관련해 마음껏 할 수 있는 분위기입니다”

센터에는 센터장과 직원 6명이 일한다. 정 사무국장은 신뢰와 지지의 관계를 바탕으로 한 수평적 소통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조직 질서는 수직적으로 가되, 소통은 수평적으로 하자’는 분위기입니다. 직원 개개인이 책임과 권한을 갖고 일을 합니다. 수평적 소통의 예로, 아이디어 회의를 할 때 선배의 의견이 후배한테 깨지기도 하는데 불편하거나 기분나빠하지 않아요. 자연스럽게 아이디어 회의를 할 수 있는 구조예요”

‘희망의 인문학’이 계기 돼

정 사무국장은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대학에 다닐 때 동기끼리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강의 내용을 토론하다보니 사회복지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 그게 지금 사회복지분야에서 일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졸업하자마자 사회복지분야에 뛰어든 건 아니다. 졸업 후 다른 일을 준비하다가 우연찮게 친구의 소개로 부천에 있는 사회복지단체에서 일을 시작했다.

“라디오 방송작가를 준비하고 있을 때였어요. 비가 많이 오던 어느 날 친구가 갑자기 면접한번 보라고 해서,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이력서 한 장 달랑 써서 반바지를 입고 갔죠. 면접관이 다섯 명이었는데 세 시간 동안 면접을 봤어요. 그런데 인상적이었던 건 ‘우리(=면접관들)만 마음에 들어선 안 된다. 너도 우리가 마음에 들어야하지 않나?’라고 하면서 역으로 질문을 하라고 한 거였어요. 제가 받은 질문을 조금 바꿔 질문했는데, 사회복지와 관련한 근본적 이야기를 나눴던 거 같아요”

1999년 부천에 있는 춘의종합복지사회관에서 사회복지사로서 첫 근무를 시작한 정 사무국장은 건강상의 이유로 몇 년간 일했던 곳을 정리해야했다. 그리고 한 신부님의 제안으로 이곳에서 다시 일을 시작했다.

“기존의 노인복지 패러다임과 다른 단체를 만들고 싶다는 제안에 동의했어요. 예를 들면 ‘희망의 인문학’ 같은 거죠. 어르신들이 보호의 대상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거죠. 젊은이들과 차이가 있다면 노동시장에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인데, 그곳에 없으면서 사회적으로 무기력한 이미지가 생긴 거예요. 정년을 앞뒀을 때와 정년퇴직했을 때의 이미지는 서로 확연하게 차이가 납니다”

정 사무국장은 센터에서 일을 시작하고 나서 2008년에는 사회복지 관련 교수들과 연구 사업을 했고, 이듬해에는 인하대 평생교육원과 함께 노인들에게 인문학을 교육했다. 그 과정에서 노인들이 변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강의 두 시간에 토론 한 시간씩을 진행했는데 참가한 강사들도 대학 수업보다 재미있다고 하더라고요. 어르신은 대학에서 교육받는 걸 신기해하며 좋아하시더라고요”

한번은 기업형 슈퍼마켓(SSM: Super Super Market)이 지역 상권을 어떻게 죽이는지를 강의했는데, 강의를 들은 할아버지 한 명이 다음날 지역에서 열린 ‘SSM 반대 집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예전에 전통시장에서 장사를 했던 분이었단다.

주인이 돼 선배시민으로 살아가기

▲ 센터 입구에는 정기후원금을 내고 있는 이용자들의 이름과 사진이 걸려 있다.
“최근에는 노후설계프로그램을 했어요. 노년기를 어떻게 보낼 건지 계획을 짜는 거죠. 얼마 전 1기를 끝냈습니다. 1기 수강생 중 비누를 만드는 재능이 있는 어르신이 계신데, 동기들과 비누를 만들어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나눠주려고 해요. 상담하러온 친구들이 돌아갈 때 이 비누를 주면서 ‘같은 지역에 너희를 끊임없이 사랑하고 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주려고요. 불쌍해서 도와주는 게 아니라 지역에서 윗세대와 아랫세대가 만나는 거야 말로 자연스런 사회적 연대인 거죠. 이런 일이 많아지면 지역사회가 풍요로워지지 않겠어요?”

센터는 이 일을 계기로 프로그램을 확장할 계획이다.

센터의 또 다른 특이점은 노인들이 행사의 주체가 되는 거다. 행사를 할 때마다 직원들과 함께 노인 대표들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아이디어 회의부터 평가 회의까지를 진행한다. 행사 진행도 노인들이 맡아하고 직원들은 스텝으로 도와주는 정도다.

“센터 개관식 때가 생각납니다. 전 직원이 무대에 올라가서 고해성사를 했어요. ‘우리는 노인 시절을 살아보지 않았다. 살아보지 않은 젊은이들이 노인복지를 하겠다고 하는 게 보기 좋지 않냐? 예쁘게 봐 주시라. 일을 하다보면 시행착오가 많을 텐데 질타하기보다 격려해줬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래서 그런지 우리의 본심을 이해해주시더라고요. 가끔씩 행동이 거친 어르신이 계시는데, ‘자녀나 손자뻘인 직원들을 보시면서 어르신의 자식들이 존중받고 일했으면 좋겠는지’ 직접 물어봐요. 그렇게 하면 반말하거나 큰소리를 내던 어르신이 조용해져요. 지금은 우리 직원들이 어르신들한테 존중받는 느낌이 많습니다”

양쪽에 쌓인 신뢰는 견고하다. 직원들은 ‘저 어르신처럼 늙어야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남구 주민인 정 사무국장은 노년에 센터를 이용할 계획으로 자신을 위한 프로그램을 시도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원탁토론회’라는 프로그램을 처음 시도했다. ‘남구의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또는 ‘내가 구의원이라면’이라는 주제로 10명씩 한 모둠으로 해 10개 모둠이 토론했는데 예상외로 활발하고 재밌었다. 퍼실레이터(의사소통가)로 참여한 젊은이들이 감동을 받기도 했다. 올해 6월에도 ‘살기 좋은 남구 만들기’라는 주제로 원탁토론회를 열 예정이다.

어르신들의 지혜와 지식을 나누고 싶어

▲ 지난해 10월 5일 남구노인문화센터 3층 강당에서 열린 ‘선배시민축제 100인 원탁토론회’.<사진제공·남구노인문화센터>
센터는 남구에 사는 60세 이상 주민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현재까지 등록한 회원은 2200여명이고, 실제 이용하는 사람은 500~600여명이다.

“이용자 중 140여명이 정기적으로 센터에 후원금을 내는 후원회원입니다. 후원 문화를 만드는 데 3년 걸렸어요. 센터 재정이 열악해 후원이 절실하다는 걸 안 어르신들이 어떻게 후원하는지를 물으시더라고요. 센터 입구에 후원회원들의 사진을 붙였는데, 자신의 사진을 보시면서 좋아하십니다”

끊임없이 뭔가를 시도하고 있는 정 사무국장에게 또 다른 계획을 물으니, ‘U3A(the University of the Third Age)’를 설명한다.

“유럽에는 노인복지가 별로 없어서 노인 스스로 자신의 재능을 나눕니다. 유럽의 모델을 서울이나 일산에서 시도하고 있는데, 삼삼오오 모여 자신들의 재능을 나누는 거죠. 서울에서 있었던 사례인데, 바느질을 배우러 모인 노인들이 그게 끝나고선 또 다른 누군가의 재능으로 다른 취미를 배워요. 모임 안에서 교사와 제자의 관계가 수시로 바뀝니다. 그게 꼭 강의일 필요는 없어요. 생선가게를 했던 분은 생선을 잘 고르는 법을 가르치면 되는 거죠. 삶의 지혜가 사장되고 있잖아요. 어르신들의 지식을 공유하고 공감했으면 좋겠어요”

노인들은 결코 게으르지도 고집스럽지도 않다고 강조하는 정 사무국장은 “고집이 아니라 그분들의 삶이 축적된 노하우가 아닐까요?”라고 한 뒤 “이제는 노인들의 이미지를 ‘지혜가 많은 선배시민’이라는 사회적 이미지로 바꿔야합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