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락기 강화고려역사재단 연구위원
인천 인구가 30만명을 넘은 해는 공교롭게 1956년이다. 이 해의 인구는 30만 3760명이었데, 공교롭다고 한 의미는 그로부터 꼭 60년, 한 갑자를 지난 올해 그 열 배에 해당하는 300만명을 눈앞에 뒀기 때문이다.

100세 시대를 운운하는 요즘과는 달리 과거에 한 사람의 일생에서 매우 중요하게 기념해야 할 날이 태어난 날부터 한 갑자가 돌아온다는 의미의 환갑 또는 환력이었다. 꼭 그만한 시간에 열 배의 인구증가를 이뤘다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인천시 통계연보’를 보면, 1926년 인천 인구는 남자 2만 8577명, 여자 2만 5164명으로 합쳐서 5만 3741명이었다. 일제강점기이었기에 적지 않은 일본인이 포함돼있고, 또 당시 인천부의 인구이기에 현재 인천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던 부천군의 인구가 빠져있다는 점은 고려해야한다. 하지만 어느 지역, 어느 사회든지 인구증가는 한 울타리 안에서 자연적으로 증가하는 것만을 계산하지는 않는다. 울타리가 커져 이웃을 포함한 것도 자연스러운 인구증가요, 다른 울타리의 사람들이 우리 울타리로 들어온 것 또한 인구증가다.

인천 인구가 10만 303명으로 10만명을 넘어선 해도 공교롭게 1936년이다. 이 해에 부천군에 속해 있던 현재의 남구ㆍ연수구 일부 지역이 인천부로 편입됐는데, 그 영향이 있는 듯하다. 1956년에는 30만명, 1966년에는 52만 9579명으로 50만명을 넘어섰으며, 1979년 104만 3744명으로 드디어 100만명을 넘은 대도회지가 됐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부평도호부 954명, 강화도호부 3283명, 인천군 1412명, 교동현 562명 등, 현재 인천광역시에 포함되는 지역의 인구인 6211명은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요즘 지역 언론의 보도를 보면, 인천시정부에서 인구 300만 도시에 걸맞은 체제를 부쩍 강조하는 듯하다. 단순히 인구가 많다는 걸 내세우는 데 그치지 않고, 규모에 맞는 각종 시설과 프로그램으로 시민이 행복한 도시를 지향하는 것은, 분명 가야할 길이다. 각론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총론에는 이견이 없으리라.

이런 생각은 300만 도시 인천을 상징하는 무언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이어진다. 높은 분들이 발의해 시 예산으로 만들어 하늘로 높이 솟은 화려한 기념물을 떠올리는 것은 아니다. 그런 기념물은 시민들에게 그저 관람의 대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중국 대련의 성해광장에는 대련시의 100년을 기념해 시민 1000명의 발자국이 바다를 향해 가는 상징물이 있다. 발자국의 끝에는 소년과 소녀가 바다를 바라보는 조각상이 있어, 이 곳을 찾은 이들이 기념사진을 찍는 단골장소가 됐다.

대련의 사례처럼 연령과 직업, 성별, 출신국가, 사는 군ㆍ구가 다른 평범한 인천시민 3000명의 손자국이나 발자국 등을 소재로 인천이 지향하는 미래상을 보여주는 상징물을 만들면 어떨까? 인천 지도를 형상화할 수도 있고, 10개 군ㆍ구를 상징하는 서로 다른 줄이 하나로 모이는 형상 등, 머리를 맞대면 얼마든지 좋은 아이디어를 모아낼 수 있을 것이다. 단 한 명이 쓰는 언어라도 인천시민의 모어(母語) 전체를 설명문으로 남긴다면 바다와 하늘로 열린 인천의 도시 정체성과도 잘 맞을 것이다.

시 예산에 기대기보다 손자국이나 발자국을 남길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기획ㆍ진행하고, 시정부가 장소 등을 적극 지원한다면 외지 손님에게 자신의 흔적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안내하는 인천시민의 꿈과 흔적이 담겨 있는 기념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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