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형 한국이주인권센터 상담팀장
내 지인에게 생긴 일이다. 그가 다니는 회사는 그의 집에서 거리가 멀었다. 회사는 인력난 때문에 멀리서 사는 노동자들도 고용해야했다. 그래서 장거리의 노동자들에게 사택을 제공했다. 그는 다른 노동자와 함께 회사가 제공한 작은 아파트에서 거주하며 일했다. 사택에 같이 거주하던 노동자가 퇴사한 후로는 혼자서 그 아파트를 사용했다.

그런데 어느 날, 고용주는 그 아파트에서 그만 지내고 공장 안에 있는 컨테이너박스에서 지내라고 했다. 샤워시설도 화장실도 외부에 있었다. 그는 컨테이너박스에서는 절대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많은 독자는 그가 이주노동자라는 것을 짐작했으리라. 컨테이너박스에서 살고 싶지 않으면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일자리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주노동자가 자의로 일자리를 그만 두는 것은 본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에서 일자리를 얻기 위해 투자한 돈과 시간이라는 기회비용을 생각하면 본국으로 돌아가는 건 어려운 일이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용센터를 찾았다. 하지만 고용센터에서는 ‘기숙사’ 때문에 사업장을 변경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주노동자 대부분이 다 이런 데(컨테이너박스)에서 사는데 뭘 그러느냐”고. 나 역시 한마디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선생님이라면 아파트에서 살다가 컨테이너박스에서 살 수 있나요?”

고용센터 공무원은 이주노동자들의 이러한 처지를 잘 알고 있다. 이주노동자 대부분은 이런 컨테이너박스 같은 곳에서 산다. 어디 컨테이너박스 뿐이랴. 농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들 중에는 비닐하우스에서 거주하는 경우도 많다. 어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선박에서 거주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주노동자가 아파트에 거주했다는 위의 사례는 대단한 ‘특혜’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회사가 공장 컨테이너박스로 숙소를 옮길 것을 요구하는 것은 ‘평균적인’ 위치로 돌아가는 것일 뿐일 것이다.

회사는 이 이주노동자에게 왜 숙소를 옮기라고 한 것일까? 회사 관계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기숙사에 친구들을 데려와 재우고, 기숙사를 잘 관리하지 않아 바퀴벌레가 생기고 그래서 주변에서 민원이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론 고용주도 나름의 고충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위의 이유 때문이라면 기숙사 생활규칙을 만들어 준수하게 하는 게 상식 아닌가. 또한 부득이 숙소를 옮겨야한다면 서로 대화하고 합의해 대안을 찾는 것이 옳다.

더 원론적인 얘기를 하자면, 근로기준법은 기숙사를 사용하는 노동자들의 사생활을 보장하게 돼있다. 기숙사 이용 규칙을 작성해 게시하게 돼있다. 기숙사는 고용주가 노동자에게 제공하고 사용과 관련해 협의해야하는 공간이지, 그 곳에서 생활을 임의로 관여할 공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사업장의 관리자가 이주노동자들의 기숙사를 마음대로 드나들고 이용 규칙 등을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있다.

기숙사는 이주노동자라는 ‘사람’이 거주하고 생활하는 ‘집’이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이주노동자의 주거환경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한다. 기숙사 환경의 하향평준화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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