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일 인하대 명예교수
20대 총선이 박근혜 정권에 대한 엄중한 심판으로 끝났다. 박근혜-새누리당 정권의 퇴행을 생각하면, 사필귀정이다. 정치권력은 몰염치ㆍ몰상식ㆍ부도덕으로 치달았고, 헌법정신은 유린됐다. 국민의 일상은 불안에 짓눌리고, 역사의식은 왜곡됐다.

민주주의와 인권, 서민들의 삶, 복지와 교육ㆍ보육, 남북관계와 외교ㆍ안보 등, 어느 것 하나 정상이 아니었다. 이런 총체적 난국의 근원에는 대통령이 있다. 그릇된 자신감에 빠져 불통과 오만으로 일관하면서 실정을 남 탓으로 돌렸다. 국민의 비판이 끊이지 않았지만 ‘쇠귀에 경 읽기’였으며, 곁에는 육사(六邪)들만 들끓었다.

여하튼 역사적으로 정치의 주변에만 방치돼왔던 비주류 세력이 국회 다수를 차지하고 정치판을 민주적으로 바로잡을 기회를 맞았다. 2004년에도 이런 기회가 있었지만, 당시 열린우리당이 준비된 정책도 없이 우왕좌왕하다가 기회를 놓치고 통한의 8년 세월을 겪게 됐다.

그래서 야권은 명심해야한다. 이번에도 야권의 자력에 의한 승리가 아니다. 현 정권에 대한 국민의 거센 민심이반의 산물이라는 점을 겸허하게 인식해야한다. 더불어민주당은 당선자 수에서는 제1당이 됐지만, 정당별 득표율에서 국민의당에 뒤졌다. 게다가 당의 텃밭인 호남에서 참담하게 패했다.

국민의당 역시 양당구도를 타파하는데 성공했지만, 환호할 수만은 없다. 공천ㆍ선거과정을 보면 새 정치와는 거리가 멀었고, 현 정부의 횡포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한 민주당에 대한 호남인들의 분노 덕택이었다. 호남지역에만 머물러서는 희망이 없다.

야권은 각자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상대 당의 장점을 평가하면서 힘을 합쳐 기울어진 정치판을 바로잡아야한다. 그래야 비주류 일반대중이 중심이 되는 역동적인 정권교체를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야권은 먼저 국회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한다. 선거 때 공약한 지역개발 사업은 기본적으로 지방정부가 할 일이지, 국정을 논할 국회의원의 몫이 아니다. 두 당이 지역개발을 둘러싸고 경쟁할수록 노회한 수구기득권층의 꾐에 빠지기 쉽다.

국회는 입법 못지않게 행정부의 감시ㆍ감독기능을 갖는다. 겁먹지 말고 제대로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게 국무총리를 비롯해 헌법기관의 장에 대한 임명동의권ㆍ해임건의권 등의 권한을 빈틈없이 행사해야한다. 국정원을 비롯해 검찰ㆍ경찰 등, 권력기관의 불법ㆍ탈법 행위도 엄중하게 문책해야한다. 경제민주화도 추진하고 비민주적인 악법도 폐기해야한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남북관계를 복원해야한다.

무엇보다도 스스로 수구기득권이 돼 안보불안, 정치혐오와 무관심을 부추기고 편파보도를 일삼는 왜곡된 불공정 언론을 제도적으로 바로잡아야한다. 공정한 여론 창출과 전달 없이는 대의민주주의는 존립할 수 없다. 또한 민심과 선거 결과를 일치시키기 위한 방안, 즉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도 진지하게 검토해야한다.

정권교체는 사회 전반의 세력교체를 의미한다. 야권은 모처럼 선거로 낡고 부패한 기존 사회질서를 근본적으로 혁파할 수 있는 기회를 살려야한다. 바로 정치판을 바로 잡는 법, 제도ㆍ관행의 정비와 확립으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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