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 트윈스터즈

사만다 푸터먼, 라이언 미야모토 감독|2016년 개봉

페이스북을 시작한 지 7~8년 됐다. 대부분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그렇지만 페이스북은 특히나 시간과 국경을 뛰어넘어 잊고 지내던 인연을 찾아주는 데 능하다. 페이스북에서 가물가물한 기억 속의 누군가를 만났을 때의 놀라움과 반가움이란!

그런 놀라움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닌, 진짜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사만다는 어느 날, 낯선 이로부터 페이스북 친구 신청을 받는다. 그녀의 이름은 아나이스. 프랑스에 사는 동갑내기 아나이스는 우연히 유튜브에서 자신을 쏙 빼닮은 사만다를 발견한 뒤 인터넷을 뒤져 사만다에게 페이스북 친구 신청을 한 것이다. 아나이스의 프로필을 본 사만다 역시 자신과 똑같이 생긴 그녀에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외모뿐 아니라 생년월일과 한국이라는 출생지까지 똑같은 걸 확인한 두 사람. 사만다와 아나이스는 서로 존재조차 모른 채 미국과 프랑스에서 25년간 따로 자란 쌍둥이 자매였던 것이다.

 
스카이프 화상채팅과 아이폰 메신저로 미국과 프랑스를 오가는 대화를 나누며 두 사람은 마치 이전부터 같이 자란 쌍둥이 자매인 양 친해진다. 상대방에 대한 궁금함과 그리움이 커진 둘은 직접 만나기로 하고, 사만다는 아나이스가 사는 프랑스로 날아간다.

만나자마자 서로를 꾹, 찔러보며 거울이 아니라 자신과 꼭 닮은 쌍둥이 자매임을 확인하는 사만다와 아나이스. 직접 만나보니 두 사람은 닮아도 너무 닮았다. 놀라거나 당황할 때, 즐거울 때 짓는 미세한 표정까지도 똑같다. ‘입양아’라는 사실에 개의치 않는 사만다의 적극적이고 즉흥적인 성격과 ‘입양아’라는 자신의 위치에 대해 언제나 불편한 자각이 있었던 아나이스의 섬세하고 예민한 성격만이,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의 차이를 드러낼 뿐이다.

마치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다. 하지만 픽션이 아니라 다큐멘터리다. 영화배우였던 사만다는 아나이스로부터 친구 신청을 받고 그녀가 자신의 쌍둥이 자매라는 걸 깨달은 뒤 이 모든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기록하기로 결심했고, 그렇게 ‘트윈스터즈’는 탄생했다.

드라마로나 나올 법한, 그것도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었다는 놀랍고도 환상적인 상황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흥미롭다. 더구나 스물다섯 두 자매가 만난 SNS라는 공간의 가벼움은 영화 전반부를 가득 채운 귀여운 이모티콘 만큼이나 경쾌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게다가 ‘입양아’라면 지레 측은한 눈길로 연민부터 갖는 세간의 선입견이 무색할 만큼, 사만다와 아나이스는 솔직하고 발랄하고 긍정적이다. 스크린으로 보고만 있는데도 절로 웃음을 짓게 된다.

상큼하고 발랄한 자매가 영화의 마지막에 머무른 곳은 그녀들이 태어난 곳, 바로 한국이다. 자매는 한국에서 입양된 사람들이 모이는 컨퍼런스에 참여하고, 자신들을 미국과 프랑스로 보낸 입양기관을 찾아가 입양 전까지 돌봐줬던 위탁모를 만난다.

자신들을 ‘버린’ 부모가 있는 나라에 왔는데도, ‘입양아’가 나오는 기존의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보게 되는 원망과 신파 따윈 없다. 처음 서로 존재를 알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자매는 여전히 긍정적으로 자신들이 태어나고 입양됐던 과정, 자신들의 뿌리를 반갑게 받아들인다. 자신이 ‘입양아’였다는 사실을 콤플렉스로 여겼던 아나이스 역시 한국에서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으로 혈연을 뛰어넘는 더 넓은 가족을 만난 것을 긍정하게 된다. 생모, 미국과 프랑스의 길러준 엄마, 사만다와 아나이스의 위탁모까지, 엄마가 다섯이라고 활짝 웃는 쌍둥이 자매. 긍정의 끝판왕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한국 관객은 이 영화를 흐뭇하게만 바라볼 수 없을 것이다. 사만다와 아나이스의 사랑스러운 모습에 자꾸 웃음이 피어오르면서도, 쌍둥이 자매의 기적 같은 만남이 가능케 한 ‘영아 수출’ 최고라는 한국의 현실이 겹쳐질 수밖에 없으니. 이 씁쓸한 뒷맛이야말로 ‘트윈스터즈’가 한국 관객에게 건네는 메시지일 것이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