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 스포트라이트

토마스 매카시 감독|2016년 개봉

미국 일간지 <보스턴글로브>에 새 국장이 부임한다. 신임 국장 마티는, 보스턴 내 교구에서 아이 80여명이 사제에게 성추행을 당했고, 추기경이 이 사실을 알고도 묵인한 정황이 있다는 내용의 칼럼을 주목한다. 국장은 심층취재(spotlight)를 전문으로 하는 스포트라이트팀에 이 사건의 취재를 요청하고, 스포트라이트팀은 팀 이름에 걸맞게 사제 성추행 사건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보스턴글로브>의 탐사보도팀 스포트라이트가 2002년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파헤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한국사회에서는 찾아보기조차 힘든 기자정신에 관한 영화이자, 거대한 권력이 만든 침묵의 카르텔에 관한 영화다. 얼마 전 열린 88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 작품상과 각본상을 수상했다.

 
스포트라이트팀을 보면서, 우선 신선했다. 아동 성폭력 사건, 더구나 가톨릭 사제가 가해자인 성폭력 사건이라면 그 사실 근거만 찾아내 보도해도 특종감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단독’이란 머리말을 달고 가해행위를 선정적으로 묘사한 헤드라인으로 바로 보도했을 것이다.

그리고 불과 5분도 안 돼 다른 언론들도 베끼기에 나섰을 것이고, 그 와중에 피해자들의 신상은 다 드러나고, 2차 가해로 피해자들은 더욱 깊은 절망에 빠졌을 것이다. 그렇게 사건은 대중의 말초적인 분노를 불러일으키다 어느 순간 ‘개인의 일탈’ 정도로 흐지부지됐을 것이다. 그래놓고 습관처럼 대중의 ‘냄비근성’을 비난하는 것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스포트라이트는 달랐다. 처음 문제가 된 신부 한 명을 고발하기에 충분한 취재를 했지만, 보도를 미룬다. 더 많은 신부를 추적해야하기 때문이다. 보스톤 교구 내 수많은 신부의 성추행 사실을 드러낼 취재까지 마쳤는데도, 역시 보도를 미룬다. 그 사실을 묵인한 시스템을 드러내야하기 때문이다.

마티 국장은 스포트라이트팀에 “신부 말고 교회!”를 주문한다. 경쟁 언론이 먼저 기사를 쓸까봐 발을 동동 구르는 동료 기자에게 팀장은 “한 놈이 아니라 체계를 고발해야한다”고 주문한다. 국장과 팀장의 강단은 눈앞의 사실을 드러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숱한 사실 뒤의 ‘진실’, 즉 시스템을 고발하는 것이 언론의 사명임을 분명히 드러낸다.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 일탈이 아니라 권력구조에 주목하는 것. 단발성 보도가 아니라 끝까지 추적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보도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심층취재팀의 존재이유인 것이다.

자기 내부의 잘못을 드러내 고치기보다 침묵하고 묵인함으로써 권위를 유지하려는 종교권력과, 거대한 종교의 권위 앞에 지레 겁먹은 법원과 경찰, 학교 등 지역사회는 피해자들의 입을 막고, 진실을 밝히려는 스포트라이트팀을 방해한다. 그러나 그들은 종교와 지역사회가 만든 침묵의 카르텔이야말로 자신들이 밝혀내야할 진실임을 알기에, 그것을 드러내지 않고는 사건의 해결이 불가능함을 알기에, 취재를 멈추지 않는다.

스포트라이트팀이 보여준 기자정신은 영화 ‘스포트라이트’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지금까지 성폭력 사건을 소재로 한 많은 영화가 사건의 선정적 재현, 자극적 연출에 머물렀다. 자극적 연출은 가해자에 대한 관객의 분노를 증폭시키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이때 발생하는 분노는 그 사건이 발생하게 된 구조적인 원인을 가리고 일탈한 개인에 대한 혐오의 배설로 그치기 쉽다.

그러나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사건 바깥 스포트라이트팀 기자들의 시선에서 성폭력 사건이 계속해서 대규모로 발생하고 은폐되는 권력구조에 집중하게 만든다. 이 영화를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성폭력이야말로 우발적이거나 개인의 일탈에 의한 폭력이 아니라, 권력의 위계로부터 비롯한 가장 ‘정치적인 폭력’이란 것을.

개인이 아닌 시스템, 비정상적인 일탈이 아닌 권력구조에 주목하지 않고는, 즉자적인 분노와 혐오를 배설하는 것으로는, 폭력을 양산하고 방조하는 침묵의 카르텔을 벗어날 수 없다. 그 누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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