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람] 영화 ‘션사인 러브’의 조은성 감독

지난해 12월 30일 오후 7시, 인천 동구에 있는 추억극장 미림(이하 미림)에서 영화 ‘러브레터’가 상영됐다. 미림이 운영하는 ‘8090영화제’ 12월 상영작이었다. 영화를 본 후 느낌을 나누고 싶은 사람들은 극장 2층 로비에 모여 감명 깊거나 이해가 부족한 장면을 서로 이야기하고 마지막으로 감상평을 10자로 정리하기도 했다. 이 자리엔 지난해 9월 개봉한 영화 ‘션샤인 러브’의 조은성(45) 감독이 함께했다. 조 감독과 인사를 하고 조만간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지난 2월 22일 남동구의 한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추억극장 미림의 ‘8090영화제’에 함께해

▲ 지난해 12월 추억극장 미림에서 열린 8090영화제 영화 관람 후 관객들과 감상을 나누고 있는 조은성 감독.
조은성 감독과 미림은 어떤 인연으로 ‘8090영화제’에 함께한 걸까?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예술인 파견 지원 사업을 하는데, 미림이 집과 가까워 신청했어요. 배우와 미술작가, 저 포함 세 명이 선정돼 미림에서 함께 활동했습니다”

‘예술인 파견 지원 사업’이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예술인의 역량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수입 창출에 도움을 주고자 2014년부터 시작했다. 또한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은 예술적 역량을 필요로 하는 기업이나 기관, 지역과 예술인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데, 활동기간인 6개월간 예술인에게 활동비를 지원한다.

“한 달에 40시간 근무하는 조건이라 열흘 정도 출근하면 됩니다. 지난해 6월부터 11월까지가 프로젝트 기간이었는데 그 기간이 끝나고도 좋은 취지로 하는 프로그램이라 함께하고 있습니다”

조 감독은 6월부터 가칭 ‘영화봤수다’라는 이름의 ‘영화감상&나눔 동아리’를 운영했다. 매달 둘째ㆍ넷째 주에 모여 영화를 보고 감동을 나누며 다양한 해석과 분석으로 영화를 보는 시각을 넓히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그밖에도 미림에서 상영할 영화를 선정하는 데 조언했으며,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씨네마 키드’ 영화관 운영 프로젝트 사업에도 힘을 실어줬다.

늦게 뛰어든 영화판, 동료들이 먼저 데뷔

▲ 조은성 감독.
남구 숭의동에서 태어나 숭의초ㆍ송도중ㆍ대건고등학교를 졸업한 조 감독은 제물포역 일대에서 20여년을 살았다. 조 감독이 고등학생일 때 본 영화잡지 ‘로드쇼’와 ‘스크린’이 그의 인생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줬다.

“좋은 기사와 편집이 많았어요. 그걸 보고 ‘영화(=영화 관련 일)가 재밌겠다’고 생각했죠. 연극영화과에 진학하고 싶었는데 인천에는 관련 학원이 없었어요. 마침 고등학교 3학년 때 남구 주안에 학원이 생겨, 그곳을 다녔습니다”

그때 학원을 같이 다녔던 친구들 중 조 감독보다 먼저 감독으로 데뷔한 이도 있고, 방송국에서 일하는 사람, 영화 프로듀서도 있다. 지금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영화판에 남아 있는 사람이 많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극과 영화가 아닌 음악에 도전했던 그는 이도 여의치 않아 입대했다. 제대 후 부산에 있는 경성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졸업 무렵인 1998년, 영화를 찍으려 했는데 외환위기가 터져 경제적 사정이 어려워졌다.

“당시 영화진흥위원회에서 공모한 독립단편영화 제작 지원 부문에 선정돼 일부 지원을 받았어요. 그런데 (영화를) 찍을 돈이 부족해 등록금을 대출해 찍었고, 학교는 졸업을 못했죠. 부모님은 제가 졸업한지 알아요.(웃음)”

그렇게 찍은 영화 ‘우주꽃사슴’은 빚 1000만원을 남겼다. ‘빚을 떠안고 충무로로 들어오라’는 선배들의 조언에도, 조 감독은 빚을 갚아야한다고 생각해 영화 제작을 그만두고 광고홍보영상 관련 일을 했고, 그 일로 중국에 가 1년간 살기도 했다.

그 후 부산에서 10여년을 산 조 감독은 충남과 서울을 거쳐 8년 전 다시 인천에서 터를 잡았다. 현재 동암역 근처에 사는데, 그의 말로는 동암역 근처에 영화 쪽에서 일하는 예술가가 많이 살고 있단다.

중국에서 귀국했을 때 친구들의 감독 입봉에 자극을 받기도 했다. 30대 중반, 지인들의 소개로 영화 ‘색즉시공 시즌2’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연출부에서 일했으며 자신의 얘기를 시나리오로 쓰기 시작했다. 직접 쓴 시나리오로 만든 영화가 입봉 작품이 됐다.

‘션샤인 러브’는 내 이야기

▲ 선샤인 러브의 포스터.
영화 ‘션샤인 러브’의 장르는 판타지ㆍ로맨스 코미디다. ‘만화책과 무협지에 빠져 사는 남자 주인공은 공무원 꿈을 버리지 못한 채 노량진 고시촌에 산다. 우연히 대학 후배를 만나 사랑을 시작하지만 여자는 시험도, 취직도 실패하는 남자의 모습에 화가 났다. 여자는 어머니의 반대로 헤어지기로 결심한다.’ 현실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지질한 청춘 남녀의 이야기다.

“보신 분들이 자신들의 얘기라고 많이 공감하죠. 사실 제 얘기가 많이 담겼어요. 영화처럼 보여주기 위해 판타지를 가미했지만 이런 사랑의 경험은 많을 거예요”

노량진에서 9년간 시험을 준비했던 친구의 연애 경험도 이 영화에 담겨있다. ‘너무 급하게 만들어 미학적으로 허술한 부분이 많아 부끄럽기도 하다’는 조 감독은 ‘그러나 내용의 진정성만은 자부’한단다. 2009년 시나리오 공모전에 당선돼 곧바로 영화를 찍으려했지만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으로 2013년에야 찍을 수 있었다.

“제가 살았던 20대와 지금의 20대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 현실에 관객들도 공감하고요. 시나리오를 보고 주연인 조은지ㆍ오정세씨가 개런티를 받지 않고 출연하기로 결정했어요. 충무로에서 활동하는 전문 스텝들도 돈을 받지 않아 영화 찍는데 5000만원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2013년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됐다. 같은 해 오사카 아시안 필름 페스티벌, 이탈리아에서 열린 레지오에밀리에 아시안 필름 페스티벌에 초청됐다. 조 감독은 곧 극장에서 관객을 만날 것이라는 꿈에 부풀었으나, 배급사와 여러 가지 문제로 상영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갑자기 배급사가 나타나 전국 개봉관 30곳에서 상영하게 됐어요. 개봉하면 반응이 좋을 줄 알았는데 개봉이 지연되기도 했고 홍보도 부족해 흥행에는 실패했죠.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가 정말 자연스러웠고 해외 영화제에 초청받은 것은 작품성을 인정받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고생해서 만들었어도 개봉하지 못한 영화가 많은 현실에서 그나마 개봉한 걸 다행으로 여기는 조 감독은 차기작으로 ‘코믹잔혹극’을 준비하고 있다.

저예산 영화 제작 계속, 지역 주민들과 교감도 계속

“현재 시나리오를 수정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가제가 ‘66번가’인데 킬러들이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 휘말려 코믹하게 전개되는 줄거리예요. 제작 계약은 마쳤고 4월 즈음 배우 캐스팅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두 번째 영화의 제작비는 10억~15억원 정도로 입봉작의 20배가 넘지만, 조 감독은 저예산 독립영화에도 관심이 많다.

“오사카 영화제에 가서 보니 일본과 우리나라를 제외하곤 아시아에서 5억원 이하의 저예산 영화가 많은데 수준이 상당했어요. 우리나라의 김기덕ㆍ홍상수 감독도 몇 억으로 영화를 만들어 해외 영화제에 출품합니다. 지금은 경제적으로 어려워 광고 홍보영상이나 전시영상 제작을 겸하고 있는데 영화만 찍고 영화만 고민하는 게 제일 좋습니다”

미림과 6개월 계약이 끝난 지금도 재능기부로 영화감상 토론을 계속하고 있는 조 감독은 좋은 취지로 운영하고 있는 미림의 활성화를 위해 어떤 일이든 돕고 싶단다.

“2월 8090영화제 상영 영화는 ‘매디슨카운티의 다리’예요. 율목도서관 사서가 원작을 해설하고, 영화 상영 후 저와 감상을 나누는 시간도 있습니다. 3월의 영화는 1994년 작 ‘중경삼림’입니다. 물론 입장료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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