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 이웃집에 신이 산다

이웃집에 신이 산다|자코 반 도마엘 감독|2015년 개봉

 
자코 반 도마엘 감독의 <이웃집에 신이 산다>는 작년 크리스마스 즈음에 개봉한, ‘좀 된’ 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를 만날 수 있는 상영관이 절대적으로 적었다. 그나마 상영하는 몇 안 되는 극장도 하루에 한번만 상영했고, 게다가 상영시간은 도저히 내가 극장에 갈 수 없는 시간. 그렇게 놓쳐버리나 싶었다. 하지만 적은 개봉관 수에도 불구하고 선전을 했던 모양이다. 다행히도 2월을 훌쩍 넘긴 시간까지 극장에 걸려 있었고, 한가로운 시간을 틈타 간신히 만날 수 있었다.

안 봤으면 두고두고 엄청나게 후회할 영화였다. 이토록 기발하고 이토록 통쾌한 영화라니!

<이웃집에 신이 산다>는 제목에 드러나는 그대로 ‘신’에 관한 영화다. 신이 누구인가. 세계와 인간을 창조한 절대자다. 신 앞에서 인간은 절대복종하며 구원을 갈구하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인류역사를 통해 인간들은 다양한 창작물을 통해 신의 절대적 권위를 아름답게 혹은 웅장하게 그려왔다.

<이웃집에 신이 산다>는 전혀 다르다. 신(브누아 푈부르드)은 술과 담배에 찌들어 사는 폭군, 전형적인 가부장적 가장이다. 함께 사는 아내(욜랑드 모로)는 남편의 호통에 찍 소리도 못 내고 사는 가사노동자다. 그녀에게 유일한 낙이 있다면 텔레비전 야구중계를 보며 야구선수 카드를 모으는 것뿐. 아들 예수는 인간 세상에 가서 12사도를 모아 아버지(신)가 만든 세상을 바꿔보려 했지만 십자가에 매달려 굳어 버렸다. 그리고 이 영화의 주인공 딸 에아(필리 그로인)가 있다.

우리가 알던 신 이야기는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였다. 신약성서로 한발 더 나아가봤자 ‘아들’인 예수 이야기가 전부였다.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신의 딸 이야기가 바로 이 영화에 있었다.

10살 소녀인 에아는 아버지의 세상을 바꾸겠다고 결심하고, 새로운 신약성서를 쓰기로 한다. 오빠 예수의 도움으로 인간 세상에 나간 에아는 6명의 제자를 만나고, 에아가 새로운 신약성서를 완성할 즈음, 세상은 아버지 신이 창조하고 이끌어 온 가부장질서가 아닌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다.

인간 세상에 나가기 전 에아가 한 일은, 아버지의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인간들의 사망일을 문자메시지로 각각의 인간들에게 전송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생사를 관장하는 신의 권위를 추락시키는 일대 사건이 돼 버린다.

자신이 죽을 날을 알게 된 인간들은 지금껏 시급하고 중요한 일들에 밀렸던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먹고사느라, 타인의 시선 때문에, 전통과 관습 때문에 미뤄뒀던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직면한다. 신의 딸 에아가 아버지의 질서를 무너뜨리자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언제 다다를지 모르는 약속, 유토피아가 아니라 ‘지금, 여기’가 된다. 어쩌면 구원은 그때부터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인간 세상으로 간 에아는 아버지 신과는 확실히 달랐다. 어마어마한 기적을 보여 인간을 두려움과 경외감에 떨게 하는 절대자의 모습이 아니라, 아무도 들어주지 않던 인간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존재일 뿐이었다. 신의 딸 에아가 보여주는 능력이라면 인간의 심장소리를 듣고 그것에 맞는 음악을 찾아주는 정도였고, 에아가 소중히 모으는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눈물’이었다.

에아가 새로운 신약성서를 만들기 위해 인간 세계에서 만난 여섯 명의 사도는 지금까지 아버지의 세계에서는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던, 어쩌면 존재조차 드러나지 않았던 ‘소수자’들이었다. 심지어 신약성서의 기록자마저 문자를 제대로 습득하지 못한 노숙인이었다.

구약성서든 신약성서든 지금까지의 성경이 위대한 신의 행적이나 잠언을 (아버지 신이 보기에) 빼어난 인간이 기록한 것이었다면, 에아의 새로운 신약성서는 신이 아니라 뭔가 비어 보이는 부족한 인간의 사사로운 경험과 고백으로 채워진다.

신의 딸 에아가 여섯 사도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눈물을 담는 과정을 통해 아버지 신의 세계, 즉 가부장적 질서는 도태되고, 그 자리엔 ‘정상/비정상’ ‘우/열’ ‘남/녀’의 경계가 허물어진 신세계가 펼쳐진다.

지금껏 들어본 적 없던 신의 딸 이야기는 비록 영화적 상상이지만 통쾌하다. 아버지(가부장제)의 율법으로는 아버지가 만든 엿 같은 세계를 바꿀 수 없다. 그렇다면 성경을 새로 쓰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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