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 빅쇼트

빅쇼트|아담 맥케이 감독|2016년 개봉

 
벌써 8년 전 이야기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불러왔을 때 나는 도대체 알 수 없는 암호가 잔뜩 얽혀 있는 미로 앞에 서있는 기분이었다. ‘서브프라임’은 뭐고 ‘모기지론’은 뭔가? 도대체 모르겠어서, 그때까지는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겠고 재미도 없어서 읽지 않고 넘기던 신문 경제면을 읽었다. 하아…… 첩첩산중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를 설명한다고 쓴 기사에는 더 어려운 용어들이 난무했다. 파생상품은 뭐고 헤지펀드는 뭐고 스와프는 무엇이더냐? 아무리 읽고 들어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경제학 용어, 딴 세상 이야기였던 주식 용어들과 씨름하며 세계 경제 위기의 원인과 향후 경제 전망을 분석해보겠다고 씨름했던 시절이었다.

아, 그때 이 영화가 있었더라면! 올해 개봉한 아담 멕케이 감독의 ‘빅쇼트’는 바로 그 사태의 원인과 본질을 낱낱이 까발리는 영화다. 영화의 제목 ‘빅쇼트’는 가격이 하락하는 쪽에 베팅하는 것을 의미하는 주식 용어로, 모두 안전하다고 믿었고 전문가들과 정부도 안전하다 호언장담했던 미국 부동산 시장의 파산에 베팅한 금융인 네 명이 주인공이다.

캐피털회사 대표 마이클 버리(크리스천 베일)는 세계 금융 시장의 붕괴를 가장 먼저 예측한 인물이다. 골드만삭스를 찾아가 “미국 부동산 시장 폭락에 돈을 걸겠다”고 말하지만, 사람들의 비웃음을 살 뿐이다. 도이치뱅크의 트레이더(trader, 증권 매매업자) 자레드 베넷(라이언 고슬링)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에 기반을 둔 부채담보부증권의 부실을 파악하고 투자자들을 설득하지만, 역시나 비웃음거리가 된다.

펀드매니저 마크 바움(스티브 카렐)은 자레드의 정보를 받아 부채담보부증권 파산에 투자한다. 은퇴 후 금융권과는 거리를 둔 채 은둔생활을 하던 전직 트레이더 벤 리커트(브래드 피트)는 젊은 펀드매니저들이 부채담보부증권 파산에 투자하는 것을 돕는다.

주인공 네 명은 미국 정부와 대형 은행들, 월가의 투자전문가들, 신용평가사들과 정반대의 노선을 걸었다. 미국 부동산 시장의 거품과 부실을 파악해 그것에 투자했다. 영화는 나같이 주식이나 금융에 문외한인 사람에게는 어려울 수도 있는 경제 용어들 사이를 가벼운 유머와 경쾌한 편집으로 유유히 빠져나가며 미국 금융 위기를 알기 쉽게 한눈에 보여준다.

모두 실제 있었던 사건과 인물을 바탕으로 구성한 작품이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수익도 없고 안정적 직장도 없는 이들에게, 즉 갚을 능력이 없는 이들에게 마구잡이 대출을 줘 무작정 집을 사게 하는 일을 꾸민 은행은 대체 무슨 생각인 건가. 이렇게 부실하기 짝이 없는 금융상품에 AAA등급을 주는 신용평가사들의 머리에는 뇌가 들어 있긴 한 건가.

파국적 결말이 뻔히 보이는 사기극에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고 오히려 미국 부동산 시장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고 호언장담하는 미국 정부는 정말 국가 부도 사태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단 말인가. 스크린에 펼쳐지는 모든 일은 정말 말도 안 되는 것들이었다. 문제는 그 말도 안 되는 일들이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미국에서 실제 벌어졌던 사실이란 것이다.

결과적으로 주인공들은 월가를 이겼다. 주인공들이 승리했으면 쾌감을 느낄 법도 하건만, 그 뒷맛은 씁쓸하기 짝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인공들이 예측한 것은 미국 부동산 시장의 파산, 금융 시장의 파산이고, 그것은 세계 경제 위기로 번졌다. 욕심에 눈이 멀어 말도 안 되는 투자 상품을 만든 대형 은행이나, 그런 상품에 AAA등급을 준 신용평가사나, 월가의 사기행각을 눈감아주고 심지어 부추기기까지 한 미국 정부나, 패배한 이들은 잠깐 휘청했을 뿐 여전히 건재하다.

2008년 폭풍에 휩쓸려 쓰러진 이들은 정부와 은행만 믿고 덜컥 대출을 받았던 이들, 화려한 포장에 가려진 부실한 금융상품에 투자했던 자들이었다. 그리고 파산을 메우느라 들이부어야 했던 국가세금의 납세자들, 즉 국민들이었다.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고 집을 잃은 채 거리로 내몰려야했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했다.

“곤경에 빠지는 건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다.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 영화의 맨 처음 자막으로 나오는 마크 트웨인의 이 명언은 영화 ‘빅쇼트’가 전하고자 하는 전부이다. 자본주의, 금융 시장에 대한 맹신이 다다를 곳은 결국 파산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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