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결혼한 언니가 요크셔테리어 강아지(사진)를 입양했다. 나는 사람 손에 길들여져 살아야 하는 강아지의 종속적인 팔자가 썩 내키지 않았다.

언니의 신혼집에 자주 드나들면서 어쩔 수 없이 강아지와 만나는 일도 잦았다. 집안에 개가 돌아다니는 것이 마냥 낯선 내게, 강아지는 먼저 달려와 반기며 요란하게 뛰어올랐다. 함께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강아지의 행동과 우는 소리, 눈빛, 표정이 무엇을 뜻하는지 조금씩 알 것 같았다. (대체로 먹을 것을 달라는 때가 많았다.) 언제부턴가 나는 날마다 강아지가 보고 싶었다.

생각할수록 신비롭다. 동물과 인간이 교감하고 소통한다는 것이. 인간과 어울려 사는 동물을 국어사전에서는 ‘가축’이라 일컫는다. 반려동물이나 애완동물이라는 말도 있지만, 가축과는 의미가 다르다. 애완동물은 인간의 즐거움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과 교감이 가능한 고양이나 개뿐만 아니라 대체로 소통이 어려운 거미나 벌레, 심지어 뱀까지 애완동물의 범주에 들어간다.

이에 비해 가축은 아무 동물이나 될 수 없다. 지구에는 몸무게 45킬로그램 이상의 초식성 포유류가 148종이나 살고 있지만, 이 가운데 단 14종만이 가축화돼 인간과 어울려 살아간다.

세계적인 문화인류학자인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그의 책 ‘총, 균, 쇠’에서 가축이 될 수 있는 동물의 특징을 여섯 가지로 꼽았다.

우선 먹이를 구하기 쉬워야한다. 사람도 드물게 맛보는 고기를 가축한테 주기는 어렵다. 가축 가운데 육식동물이 단 한 종도 없는 이유다. 성장속도는 인간보다 훨씬 빨라야한다. 고릴라는 지능이 높고 힘도 세지만 다 자라는 데 6년에서 15년이 걸린다. 사람 한 명 키우는 것과 맞먹는다.

번식도 중요하다. 감금상태에서 번식할 수 있어야한다. 인류는 가장 빠른 동물인 치타를 가축으로 만들기 위해 무척 애썼다. 하지만 치타 암컷은 며칠 동안 드넓은 초원을 뛰어다니며 수컷의 구애를 받은 후에야 배란을 한다. 치타의 가축화는 오늘도 실패다.

예민한 겁쟁이도 함께 살기 힘들다. 가젤은 갇혔다는 느낌이 들면 겁을 집어 먹고 벽이나 울타리를 마구 들이받다가 머리가 깨져 죽는다. 성격이 난폭해서도 안 된다. 인간에게 가장 많은 러브콜을 받은 동물은 아마도 얼룩말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에게 한없이 까칠하게 구는 데다 맘에 안 들면 꽉 물고 절대 놓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위계질서 속에 무리지어 사는 습성이 있어야한다. 이런 동물은 우두머리를 따르는 습성이 있어 인간을 따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다로운 가축의 조건을 만족하는 동물 가운데 가장 먼저 인간의 곁으로 온 동물이 바로 개다. 개는 선사시대 수렵인들이 길들인 늑대의 후손이라 본다. 최소 1만 2000년 전부터 인간과 함께 살며 오늘날과 같은 유대관계를 맺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까마득한 시간이 그냥 흐른 건 아닌 모양이다.

사람들은 개의 표현과 감정을 다른 동물의 그것보다 더 쉽게 읽어내고 받아들인다. 또 개만큼 사람과 함께 있기를 원하는 동물이 있을까? 길들여진다는 것, 결코 아무 사이에서나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나 역시 언니네 강아지와 함께 지내는 동안 개와 인간 사이에 이뤄지는 교감을 기적이라 믿게 됐다.

15년 동안 우리 곁에 있어주었던 강아지가 지난주 홀연 생을 마감했다. 아직도 꿈인 듯 믿기지 않는다. 내가 준 사랑을 오로지 사랑과 믿음으로 되갚은 내 강아지 리치. 나와 단둘이 산 4년 동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외롭지 않았을까, 가슴이 아프다. 리치야, 너를 만난 건 기적이었어. 너와 함께한 소중한 기억들 하나하나 새기고 있단다. 너의 마지막 순간도 잊지 않을게. 우리 다음에 꼭 다시 만나자. 행복했어, 고마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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