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 마카담스토리

마카담스토리|사무엘 벤쉬트리 감독|2015년 개봉

 
마카담이란 ‘아스팔트’ 발명가의 이름이자 공법을 가리키는 용어이자, 프랑스 피카소 단지에 있는 한 낡은 아파트의 애칭이다. ‘마카담 스토리’는 사무엘 벤쉬트리 감독이 어릴 적 변두리 아파트에서 살았던 경험을 토대로 쓴 ‘아스팔트 연대기’의 두 단편을 이어 각색한 작품이라고 한다.

도색이 다 벗겨지고 엘리베이터도 수시로 고장 나는 낡은 아파트 2층에 사는 중년의 독신남 스테른코비츠(구스타브 드 케리베른)는 다리를 다쳐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됐는데 엘리베이터 수리비를 내지 않아 엘리베이터도 탈 수 없다. 이웃들 눈을 피해 새벽에만 외출하던 그는 자판기 감자칩을 사먹으러 찾았던 집 근처 병원에서 야간근무를 하는 간호사(발레리아 브루니 테데스키)를 만나고, 감자칩을 위한 새벽 외출은 그녀를 만나기 위한 외출로 변한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소년 샬리(쥘 벤쉬트리)는 맞은편 집에 새로 이사 온 중년여자(이자벨 위페르)를 돕게 되면서 그녀에게 호기심이 생긴다. 그녀는 한때 잘 나갔던 ‘옛날 여배우’였고, 소년은 그녀와 함께 젊었던 그녀가 출연한 옛날 영화를 본다.

역시나 같은 아파트 옥상에 불시착한 미국 나사(NASA)의 우주비행사 존(마이클 피트)은 알제리에서 온 이주민 하미다(타사딧 만디)의 집에 머물게 된다. 영어밖에 할 줄 모르는 존과 불어밖에 할 줄 모르는 하미다지만 몸짓과 표정으로 소통하고, 하미다는 아들벌인 존을 위해 특별히 고향의 전통음식인 쿠스쿠스를 만든다.

‘마카담 스토리’는 이야기 세 개가 각기 따로따로 움직이는 옴니버스영화처럼 보이지만, 같은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전혀 어색하지 않게 하나로 어우러지는 매우 독특한 영화다. 그러나 공간의 공통점보다 늙은 독신남과 야근하는 간호사, 소년과 옛날 여배우, 불시착한 우주비행사와 노파의 독립된 세 이야기를 매끄러운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내는 것은, 도시에서 살아가는 어쩌면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군상들의 외로움이다.

엘리베이터 수리비를 내지 않아 이웃들 눈치를 봐야하는 독신남과 환자들이 모두 깊은 잠에 빠진 새벽에 담배를 피우는 간호사, 잠잘 때 점심값만 식탁에 두고 나가는 엄마와는 제대로 얼굴도 못 보고 하루 종일 홀로 지내는 소년과 왕년의 인기는 사그라지고 연극 조연마저 버거워할 정도로 자신감을 잃은 여배우, 어딘지도 모르는 낯선 땅에 불시착했지만 그저 기다리라는 지시밖에는 받지 못한 우주비행사와 감옥에 아들을 보내고 홀로 지내는 이주민 노파, 이들은 모두 외롭고 쓸쓸한 사람이다.

이들은 낡은 아파트에서 아주 우연히 마주치고, 우연한 마주침은 호기심으로 변한다. 있어 보이고 싶어서 카메라를 들고 간 중년 독신남에게 간호사가 “당신이 찍은 사진을 보고 싶다”고 말했을 때, 한때는 꽤 유명했다고 말하는 늙은 여배우에게 소년이 “당신의 영화를 함께 보자”고 말했을 때, 미국 나사 본부와 연락이 잘 되지 않아 좌불안석인 우주비행사에게 노파가 “저녁으로 쿠스쿠스를 해주겠다”고 말했을 때, 이들은 호기심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새로운 인연을 맺는다.

영화는 바로 그 인연의 시작을 포착한다. 우주비행사 존뿐 아니라 구질구질한 사연 때문에 새벽에만 나올 수밖에 없었던 스테른코비츠도, 인기도 명성도 잃고 낡은 아파트로 이사 온 늙은 여배우 잔 역시, 어쩌면 마카담에 ‘불시착’한 사람들이다. 불시착은 사고이고 그러하기에 공포와 불안을 동반하지만, 그들이 마주한 것은 상상하지도 못했던 따뜻함과 설렘이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착하다. 영화 포스터에 있는 “모든 시작은 불시착”이란 카피는 우리가 마주할 낯선 순간, 낯선 사람들이 그저 공포와 불안의 대상이 아니라 따뜻함과 설렘의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설득한다. 새해, 새롭게 마주치게 될 인연과 사건을 설렘으로 기다리게 만드는 ‘마카담 스토리’. 모든 (인연의) 시작은 불시착이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