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어느 날, 집에서 지인과 전화통화를 하던 중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며 무심코 주위를 둘러보다가 선반 구석에 놓인 작은 화분에 눈길이 멎었다. 뭔가 이상해 보였다.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고는 깜짝 놀랐다. 히야신스 뿌리에서 조그맣게 싹이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작년 4월 꽃이 진 후 일곱 달 동안 눈길 한 번, 물 한 번 주지 않았다. 말라비틀어진 줄로만 알았던 알뿌리에서 새 잎이 나오다니! 돌이켜 생각해보니, 화분 살 때 ‘늦가을에 한 번 더 싹이 올라오니 뿌리를 잘 관리하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햇빛도 제대로 들지 않는 곳에 있던 알뿌리가 어떻게 때가 된 줄 알고 싹을 틔운 건지, 정말 신비롭다.

그런데 살아 있는 생물이라면 어느 것이든 이런 신비로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박테리아나 곰팡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생물학에선 생명체 내부에 시계 같은 것이 있어서 생명체가 그 시계에 따라 움직인다고 본다. 이 시계를 생체시계라 부른다. 생체시계는 일 년이나 한 달, 하루를 주기로 생명의 움직임에 직접 관여한다.

사람의 생체시계는 뇌 속에 있는 좁쌀보다도 더 작은 기관이다. 이 생체시계는 눈으로 들어오는 빛의 양에 영향을 받는다고 알려져 있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컴컴한 어둠 속에서 하루를 보낸다고 하더라도 생체시계는 여전히 바늘을 움직여 평소 일어나던 시간에 눈을 뜨게 만들고, 잠자던 시간에 하품이 나오게 한다. 생체시계의 시간은 사람마다 다른데,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생체시계는 유전적으로 타고 나며 쉽게 바뀌지 않는다. 즉,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이 이미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고, 이는 노력이나 훈련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다.

밤 10시에 잠이 들어 아침 6시에 일어나는 사람이나, 새벽 4시에 잠이 들어 낮 12시에 일어나는 사람이나 모두 하루 여덟 시간 잠을 자며, 하루를 주기로 잠이 들었다 깨기를 반복한다는 점은 같다. 다만, 아침형 인간은 오전에 집중력이 가장 좋고 오후 6시가 지나면서 급격히 산만해지는 반면, 저녁형 인간은 오후부터 집중력이 높아지기 시작해 저녁 6시에 뇌가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한다.

이 두 유형의 사람이 함께 학교를 다니고 회사생활을 한다고 상상해보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침형 인간의 두뇌가 팍팍 돌아갈 무렵 저녁형 인간은 눈은 떠 있으되 뇌는 아직 한밤중이다. 저녁형 인간이 이제 공부나 일을 좀 시작할라 치면 학교 수업은 모두 끝나고 회사원은 퇴근을 준비해야한다. 현대 사회가 아침형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3월 독일에서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독일 철강회사인 티센크루프스틸은 회사 직원들의 수면 습관을 면밀히 분석해 아침형 직원에겐 야간작업을 하지 않게 하고, 저녁형 직원은 이른 아침 근무에서 제외하는 등, 각 개인에 맞는 시간대에 일을 할 수 있게 했다. 변화는 즉각적이고도 놀라웠다.

일의 능률이 크게 오르고 직원들의 스트레스는 대폭 줄었다. 휴일 수면시간도 줄어들었다. 평소 각자의 생체시계에 따라 잠을 충분히 잘 수 있었기 때문이다. 휴일에 잠자는 대신 깨어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삶의 만족도도 올라갔고 자연스레 월요병도 사라졌다고 한다.

주인의 무관심 속에 싹을 틔운 히야신스는 두 달 사이 부쩍 자라 지금 한창 진분홍 꽃을 피워내고 있다. 향기도 아주 좋다. 문득, 내 생체시계의 바늘은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조급한 마음 없이 내 안의 시계에 순응하며 따를 때, 작은 꽃이나마 피워낼 수 있지 않을까. 꽃이 아니면 어떠랴. 그게 나인 것을. 새해 아침 두 손을 모아본다.

※ 필자의 개인사정으로 한동안 쉬었던 ‘사소한 과학이야기’ 연재를 이번 호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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