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희 인천여성회 회장
2015년 마지막 날, 한 일간지의 만평을 보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소녀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여학생에게 “힘내, 포기하면 잊히는 거야” 하고 말을 건네는 그림이었다. 도대체 이 나라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생각했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하는 국가, 피해자들의 요구를 철저히 무시한 채 가해국인 일본과의 합의에 ‘최종적, 불가역적’이라고 쐐기를 박은 정부의 행태는 그야말로 ‘헬조선’을 떠오르게 했다.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전 일본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시작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진상규명과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요구해온 수요시위는 지난 6일 24주년을 맞이했다.

초기 요구사항은 ‘위안부’ 강제연행 사실 인정을 비롯해 6개였는데, 그동안 조금 변했다. 수요시위로 일본 정부에 요구하는 것은 전쟁범죄 인정, 진상규명, 공식사죄, 법적배상, 전범자 처벌, 역사교과서에 기록, 추모비와 사료관 건립이다.

이 중에 한·일 당국의 이번 합의에 반영된 것이 무엇인지 피해당사자는 물론 국민은 모른다. 그럼에도 정부는 ‘최종적, 불가역적’이라고 표현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무얼 하는 정부인지 모르겠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려는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국민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셈이다.

올해 첫 번째 수요일, 1212차 수요시위가 전국 각지와 세계 곳곳에서 열렸다. 2011년 12월 14일, 1000차 수요시위가 열렸을 때도 세계여성공동행동이 전개됐다. 인천여성회도 함께했는데 동암역과 주안역에서 일본군에게 끌려가는 어린 소녀들의 상황을 재현하며 행진했다. 시위 참여자들과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이 함께 아파하며 눈물을 흘렸다.

시간은 흘러 ‘미래’로 왔건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다시 과거로 가버렸다. 강제로 끌려가던 조선의 소녀들은 어떤 일을 하러 가는지 알지 못했다. 군복을 입고 총을 찬 이들이 무서웠을 것이다. 내가 가면 오빠는 잡혀가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들은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환영받지 못했다. 결국 60대 할머니가 되어 진실을 밝히고자 거리로 나왔다.

소녀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갈 때, 소녀들을 지켜줄 나라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나라가 있는데, 할머니들을 지켜주지 않는다. 국민들이 스스로 자신의 생명과 존엄을 지켜야한다. 우리는 여전히 나라 잃은 백성인가?

국민을 무시하던 정치인들이 국민에게 고개를 숙이는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정치혐오가 적지 않다. 그렇다고 선거를 외면해선 안 된다. 현재로선 선거가 국민의 뜻을 정치에 반영하는 어쩌면 유일한 방편이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악을 피하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전쟁 시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 전후에도 여성에게 자행되는 2차 가해, 그리고 일상에서 벌어지는 여성 폭력에 대한 정당과 후보들의 입장을 똑똑히 지켜보고 선택하자.

그리고 1919년 3월 1일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것처럼 2016년 3월 1일 국민독립만세를 외쳐보면 어떨까. 국민이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것임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국민이 움직이면 정치와 나라가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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