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장렬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 언론학 박사과정
1609년 1월 15일 독일 최초의 신문이 발행됐다. ‘Aviso Relation oder Zeitung’이라는 이름의 주간 신문이다. 한국어로 ‘통보, 통지, 신문’ 정도로 의미가 전달된다. 사회 지식인층을 대상으로 제작된 이 신문에는 국내외 상황과 정치적 이슈, 군사 정보가 기사화됐다. 400년의 신문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에선 현재 신문사 129개가 일간신문 351개와 주간신문 21개를 발행하고 있다. 일간신문들 가운데 독일 전역으로 배송되는 전국 신문은 7개, 지역에서 배송되는 지역 신문은 336개, 가판 전용으로 판매되는 신문은 8개다.

한국의 신문 시장과 비교할 때 눈에 띄는 점은, 첫째 지역 신문 336개에서 판매하는 부수가 총1250만부로 전국지 7개의 총113만부보다 더 많다는 점이다. 둘째는 주간신문의 수(21개)가 일간신문의 수(351개)보다 매우 적다는 점이다.

한국의 신문 시장을 보면, 신문사 1313개가 일간신문 205개와 주간신문 1336개를 발행한다. 일간지 가운데 전국 신문이 34개, 지역 신문이 114개이고, 경제와 스포츠, 그 외의 전문 일간신문이 57개다. 주간지는 다시 전국 신문 70개와 지역 신문 539개, 전문지 728개로 나타난다.(한국언론연감 2014)

독일 지역 신문의 영향력

독일의 신문 시장에서 나타나는 지역 신문의 영향력은 독일의 정치적 역사에서 알 수 있다. 오늘날 독일의 강력한 지역 분권화는 중앙 집권화를 이루지 못한 역사적 산물이다. 14~15세기 유럽의 정치 상황을 살펴보면, 영국과 프랑스는 일찍이 상업과 공업의 번성으로 전국단위 연결이 성립됐고, 이에 따라 정치적 중앙 집권화가 이뤄졌다.

하지만 이와 같은 번성이 독일에서는 지역의 중심지들을 축으로 하는 지역별 이해의 결집만 나타났다. 봉건 제국이 붕괴되고 지역 간 유대관계는 영토 소유자들인 제후들을 중심으로 형성됐고, 지역 간 정치적 분열이 잦았다. 이러한 지역 분권화는 1871년 비스마르크 재상이 민족국가를 통일한 이후에도 나타났는데, 그 형태가 바로 오늘날 연방국가의 정치적 구조다. 연방주 16개(시 3개와 주 13개)는 지역 분권이 분명한 지방자치제도로서 유지되며 지역의 다양성을 중심으로 하나의 독일 국가를 이룬다.

내 주변 이야기를 다루는 지역 신문

몇몇 대형 신문사가 독점하고 있는 한국 신문 시장의 구조는 기형적이다. 아니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한국식 자본주의적이다. 대형 신문사 11개가 전체 종이신문 시장, 즉 신문사 1541개 매출의 46%를 차지하고 있다. 이 대형 신문사들 사이에서도 그 영향력은 조(선)ㆍ중(앙)ㆍ동(아)으로 집중된다.

이들은 신문을 넘어 방송 시장까지 자본과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전국단위 신문 몇 개가 수용 가능한 지면과 보도 역량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본래 지역에서 살아가는 지역민들의 삶의 이야기는 지역 언론이 담당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는 지극히 원론적이고 사실적인 관계이다. 그리고 이 같은 단순하고 분명한 지역 신문의 역할이 이들이 존재하는 의미의 전부이다.

지역민들은 자신들의 이야기가 지역 신문 지면에서 전달되기에 그 신문을 구독한다. 지역 문화행사에서부터 주변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ㆍ사고가 지역 신문의 주요 소재이다. 특히, 지역 주간신문 540여개는 전국의 최소 행정구역까지 씨실과 날실로 뻗어 있다. 지역민들의 삶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관찰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쉽게 말해, 전국 신문에서 볼 수 없는 내 주변 이야기가 주를 이루며, 내 이웃의 소식을 전달하고 있다. 내 주변 이야기란, 내 삶과 직접적으로 이해관계가 있는 것들이다. 미군 캠프에서 유출된 기름 이야기, 강정의 해군기지 공사와 지역민들의 갈등, 시장과 군수 등 공직자들의 탐관오리와 매관매직, 태안의 기름 유출 사고 이후 피해 주민들의 실상 등, 지역 신문 속에 폭로되고 개선되는 삶의 변화가 아주 많다. 이 모두 전국 신문에서 볼 수 없는, 때로는 전 국민적 관심에서 한 지역의 문제로 축소되거나 잊혔기에 외면당하는 내 주변의 이야기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내 삶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무엇을 볼 것인가?

독일의 지역 신문들이 자신의 역할을 지속할 수 있는 이유는 지역민들의 지역에 대한 높은 관심도이다. 그래서 독일의 전국단위 신문들은 대개 국가의 총체적 문제들을 주로 기사화하거나 핵심 이슈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제까지 우리의 신문 구독 습관은 너무나 기형적이다. 그래서 ‘서울 이야기’만 관심을 갖고 있었다. 실제 내 주변 이야기에 소극적인 신문 구독 습관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부활한지 20년이 지난, 그래서 지역 신문이 시작된 지 20여 년이 지난 오늘까지 관성적이다. 이러한 습관은 지역 내 정치적 공론장 형성에 저해요인이 된다.

내 주위의 삶이 어떤 이해관계에서 작동되는지를 외면한 체, ‘서울 이야기’에만 집중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격이다. 이제 습관적으로 대하던 전국 신문은 조금 멀리하고 지역 신문에 관심을 가져 보자. 왜냐하면, 민주주의 사회의 형성은 자신이 정치적 주체임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시작되며, 그 최소의 단위는 바로 내 주변이다. 그래서 필자는 주간 전문 잡지 하나와 지역 신문을 구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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