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 나쁜나라

영화 관련 일을 하는지라,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나쁜나라’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개봉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도 일찌감치 들었다. 그러나 12월 3일 개봉 이후 한참이 지나도록 극장을 찾지 못했다. 아니, 일부러 찾지 않았다는 게 맞는 말이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이 나라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그 일들이 유가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의 가슴을 얼마나 짓뭉갰는지, 나를 비롯한 국민들을 얼마나 깊은 절망의 나락으로 밀어 넣었는지, 굳이 영화로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다 아는 이야기인 걸. 알면 알수록 미칠 것 같은 노릇인 걸. 그걸 끄집어내 커다란 스크린에서 다시 봐야 하나?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쁜나라’로부터 도망 아닌 도망을 치는 와중에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가 시작됐다. 그런데 이상했다. 여야가 그렇게 난리법석을 피우며 제정한 특별법으로 만든 특별조사위원회인데, <팩트TV>나 <오마이뉴스> 같은 ‘재야’ 방송만 생중계를 하고 지상파를 비롯해 내로라하는 언론들은 하나같이 모르쇠로 침묵하고 있었다. 텔레비전이나 지면 신문만 보는 사람들은 청문회가 있는 줄도 모를 정도였다.

 
여전히 이 나라는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었다.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이 ‘이상한 나라’의 적나라한 모습을 직면해야했다.

영화는 2014년 4월 16일 참사가 일어난 직후부터 국회에서 세월호특별법이 제정되던 순간까지, 참사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 희생자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오로지 자식이 왜 죽었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알고 싶어서 진도 팽목항으로, 안산으로, 국회로, 청와대 앞으로, 광화문으로…, 하늘을 지붕 삼고 아스팔트를 이불 삼아 거리로 나선 가족들의 걸음을 그대로 좇으며 부모들의 절규와 한숨, 눈물을 담아낸다.

오프닝 타이틀이 나오자마자 흐르기 시작한 눈물은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극장에 들어가기 전부터 각오했던 바지만, 2시간 동안 참사의 비극과 그보다 더 큰 절망이었던 ‘참사 이후’를 오롯이 대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가족들이 지나온 600일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영화 ‘나쁜나라’가 가족들의 고통과 더불어 주목한 것은 영화의 제목 그대로 이 나라가 정말, 얼마나 ‘나쁜’ 나라인가 하는 것이다. 국가는 온 국민이 생중계로 지켜보는 가운데 300여명의 생명이 수장되는데도 아무런 구조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책임을 통감한다던 대통령은 살려달라고 외치는 유가족들을 외면했다. 정치인들은 여야의 정치적 이해관계 앞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며 유가족들을 농락했다. 유가족들이 믿을 수 있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나라, 그것이 ‘나쁜’ 나라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영화를 보는 2시간 내내 눈물을 흘리며 생각했다. 이 나라 정말 나쁘다. 몸서리치게 나쁘다.

그러나 ‘나쁜’ 나라를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나쁜’ 국민, 바로 나. 고작 2시간의 고통도 감당하기 싫어서 이 영화를 피했던 사람이 바로 나였다. 다 아는 일이라며 현실의 고통을 직면하지 않는 냉소와 도피가 결국 도달한 곳이, 바로 지금 내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놈의 나라, ‘나쁜’ 나라가 아니던가.

‘나쁜’ 나라의 ‘나쁜’ 국민이 되지 않기 위해, 600일을 무너지지 않고 살아내 준 유가족들의 손을 다시 잡아야겠다. 너무 오래 되어 낡아버린 가방의 노란리본부터 새로 달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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