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장렬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 언론학 박사과정
국민들의 반대에도 정부가 밀어붙이는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난항을 겪고 있다. 집필진 47명을 간신히 구성했으나, 교과서 서술 기준과 원칙에 이견이 엿보인다. 국사편찬위원회는 11월 30일로 예정했던 편찬 기준 발표를 연기했다. 신중히 검토해야할 쟁점이 많다는 이유이다.

어떤 쟁점을 신중히 검토해야할까? 실무진이 생각해도 문제가 있나 보다. 아마도 그 문제란 집필에 가장 중요한 기준과 원칙의 부재를 말하는 것 같다. 무엇을 어떻게 서술해도 국민들의 저항이 우려되는 상황임을 의식하고 있기에 조심스러운 것이다.

정부와 여당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태에는 두 가지 논리가 상정된다.

첫째, 올바른 국가관이나 역사관의 정립을 위해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통한 역사교육이 중요하다.

둘째, 올바른 역사교과서는 국가가 주도적으로 만들어야한다. 아쉽게도 이 논리들은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전달ㆍ의식돼 상호 간의 싸움에서 문제의 핵심을 흐리고 있다.

독일 중등교육과정의 역사교과서는 여러 종류가 제작ㆍ사용된다. 독일의 연방공화국 체제가 지닌 특성이 교육 분야에서도 나타나는데, 중앙정부가 교과서 집필에 큰 윤곽을 권고하고 각 주정부가 교수 지침과 편찬 기준을 결정ㆍ고시한다. 그 후 다양한 출판사에서 집필자를 선발해 역사교과서를 제작하고 학교와 지도교사의 결정으로 선정ㆍ사용한다.

독일 역사교과서 집필자들은 자국의 현대사를 어떻게 서술할까? 지난 70년의 역사만을 보더라도 너무나 크고 다양한 사실들을 논의해야한다.

예를 들어, 나치의 전쟁과 유대인 학살 그리고 냉전과 분단에서 재통일, 심지어 오늘날 유럽통합과 난민사(史)까지 다뤄야한다. 회피하고 은폐ㆍ축소하고자 하는 나치의 전쟁 역사에서부터 사상적 대립과 충돌의 지배, 그리고 다시 화해와 연대를 이뤄야할 공동체적 운명의 독일 현대사는 누가 봐도 복잡하고 난해하다.

그러나 필자가 접한 이들의 역사교육은 자국의 역사적 사실을 동시대인들의 사회적 합의로서 계속 변화하고 있다.

중등교육과정의 역사교과서를 살펴보면, 1950년대 제작ㆍ사용한 역사교과서에서는 나치 정권에 대한 서술을 소극적으로 하고 전쟁사 위주로 서술했다. 인본주의와 기독교적 가치를 강조하며 유럽의 공통적 정신을 강조하는 특징이 나타났다.

1960년대에는 1968년 학생운동과 더불어 사회과학 분야에서 자국의 역사교육과 역사학에 대한 전반적인 비판이 진행됐다. 이를 계기로 다원적인 연구와 교육이 요구됐다. 1970년대 교과서에는 나치 역사를 본격적으로 거론하며 유대인 학살 문제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과거 역사에 대한 회피문제가 본격적으로 공론화됐고 비판받기 시작했으며, 동시에 분단 독일의 체제적 비교가 냉철하게 논의됐다. 그리고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적대 국가 간의 사상적 충돌을 해소하고 하나 된 독일과 유럽연합 건설을 위한 공존과 연대를 강조하는 내용들로 구성됐다.

독일 사회가 경험했던 정치적 혼란들이 중등 역사교과서에 반영됐음을 알 수 있다. 회피하거나 은폐 또는 왜곡의 서술보다, 동시대인들이 자신의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인식ㆍ평가하고 있는가를 서술하고 있다. 전체 사회구성원이 합의한 역사의식 즉, 때로는 논의되지 않은 상태 그대로 서술하고, 때로는 미래 지향적인 내용들을 강조하는 것이다.

다시 한국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의 핵심을 짚어본다. 역사교과서 집필의 주체 문제, 즉 검ㆍ인정이냐, 국정화이냐의 공방은 사실 불필요한 논리다. 왜냐하면 검ㆍ인정도 국정화도 모두 국가가 관여하는 제도이다. 그리고 ‘올바른’ 역사교육이란 몇몇 역사학자 또는 헌법 학자에 의해 규정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특히 현대사를 논의할 때 아직 밝혀지지 않은, 끝나지 않은 정치ㆍ사회적 그리고 역사적 논쟁이 화두에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시대에 살고 있는 오늘날, 누구나 한 번쯤 왜곡된 역사 즉, 중ㆍ고등학교에서 배운 내용과 전혀 다른 사실을 접하고 놀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승만ㆍ박정희ㆍ전두환 등, 역대 대통령에 대한 왜곡된 역사에서 일본 침략과 강제 점령 그리고 한국전쟁까지, 아마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국 사회에는 아버지 세대와 자녀 세대가 서로 다른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다. 교과서에 서술된 왜곡된 역사들은 오히려 인터넷 공간에서 사실적 사건과 과학적 분석들로 전달되고 있다. 이 같은 현상들은 독일 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며 유독 한국 사회에서 확산되고 있다.

역사는 과거를 통해 미래를 준비하는 사실적 관계이다. 회피와 은폐 또는 축소와 왜곡이 있다면 다가올 미래 또한 불분명할 것이다.

나치의 역사를 가진 독일이 선조들의 과오를 어떻게 정리ㆍ서술했는지, 그리고 분단된 독일에서 통일국가를 만들기까지 서로 어떻게 묘사했는지, 우리가 주목해야할 부분이다. 무엇보다 독일의 역사교과서는 역사적 사실관계를 독일 국민들이 사회적으로 논의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올바른 역사교육이란 동시대의 구성원들이 합의한 역사를 교육하는 것이다. 역사교과서를 누가 쓰는가의 문제는, 전체 국민이 자신들의 사회ㆍ정치ㆍ문화적 사실을 합의하는 게 선행해야하며, 이들을 반영해 교과서를 편찬해야한다. 그리고 그 서술은 다음 세대에게 평가받고 수정ㆍ보안돼야한다.

왜냐하면, 역사는 민주주의의 변천사이기 때문이다. 지금 왜곡되고 있는 우리 역사는 민주주의의 후퇴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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