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대학 폐지에 학내 갈등 폭발…‘총장 갑질’도 논란

문과대학 구조조정 발표에 교수·학생 반발 거세

인하대학교 재단인 한진그룹의 조양호(정석인하학원 이사장) 회장이 장고 끝에 선택한 한 수가 악수였던 것일까?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일방적인 송도캠퍼스 부지 변경과 개교 연기, 대학 구조조정으로 몸살을 앓았던 인하대가 다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조양호 회장은 지난해 12월 전임 총장을 그만두게 하고 올해 초 최순자 교수를 총장에 임명했다. 그러나 최 총장 또한 전임 총장과 다를 바 없는 대학 구조조정을 강행하기로 해, 인하대는 다시 갈등에 휩싸였다.

인하대는 문과대학의 인문학 분야 학과를 축소 또는 폐지하는 구조조정 계획안을 발표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산업 연계교육 활성화 선도 대학 사업(프라임 사업)’에 선정되기 위해서다.

문과대학은 한국어문학ㆍ중국언어문화ㆍ영어영문학ㆍ일본언어문화ㆍ프랑스언어문화ㆍ철학ㆍ사학ㆍ문화경영학ㆍ문화콘텐츠학과로 구성돼있다. 이중 한국어문학ㆍ중국언어문화ㆍ사학과를 제외한 나머지 학과들을 폐지하거나 축소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영어영문학ㆍ일본언어문화ㆍ프랑스언어문화ㆍ철학과를 내년부터 교양대학으로 옮기고 2017년부터 신입생 모집을 중단하기로 했다. 문화경영학ㆍ문화콘텐츠학과는 내년에 신설되는 융ㆍ복합대학으로 이전하기로 했다.

최 총장은 지난 11월 6일 조병준 문과대학장을 불러 이 같은 구조조정 계획을 전달했다. 최 총장은 “내년부터 문과대학을 3개 학과만 남기는 구조조정을 단행하겠다”며, 구조조정 계획 공론화를 조 학장에게 부탁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문과대학 교수회와 학생회는 바로 반발했다. 문과대학 교수회는 지난 12일 “문과대학의 정체성과 인문학의 본질을 외면하고 구성원들의 자존심을 짓밟은 총장은 일방적이고 황당무계한 문과대학 축소방안을 철회하고 문과대학 구성원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하라”는 규탄 성명서를 발표했다.

최 총장은 조 학장에게 구조조정 공론화를 당부한 뒤 미국 출장을 떠났다. 출장 중 문과대학 교수회의 성명서 발표 소식을 접한 최 총장은 조 학장이 교수회 성명서 발표에 빌미를 제공했다며, 조 학장에게 언어폭력에 가까운 메일을 보낸 것으로 드러나, 파장은 더욱 커졌다.

메일에는 ‘학장의 발표능력에 테크닉이 필요할 것 같네요. 학장의 리더십에 의혹이 갑니다’라고 조 학장을 힐난하는 내용도 있었다. 이 메일이 교수들에게 확산되면서 사건은 일파만파로 번졌다.

귀국한 최 총장은 지난 17일 문과대학 교수회와 간담회를 했다. 최 총장은 철학과와 프랑스언어문화학과를 당초 계획대로 교양대학으로 옮긴 뒤 폐지하고, 영어영문학과와 일본언어문화과는 폐지 대신 정원을 대폭 축소하겠다는 수정안을 발표했다.

구조조정 계획이 일부 변경됐지만, 문과대 구조조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문과대학 학생회는 18일 “최 총장은 문과대학 구성원인 학생들이 배제된 구조조정을 당장 철회하고 사과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취업률 낮은 문과대학 구조조정이 대혁신?

▲ 인하대학교의 모습.
반발이 거세지자 최 총장은 지난 23일 ‘존경하고 사랑하는 인하대 구성원 여러분’이라는 글을 발표하고 구조조정을 밀어붙이겠다는 뜻을 밝혔다. 최 총장은 이 글을 전체 교직원에게 전자메일로 보냈다.

최 총장은 1954년 인하공과대학으로 출발한 인하대가 1972년 종합대학 승격, 1984년 의과대학 신설, 2007년 법학전문대학원 설립 등으로 성장했다고 한 뒤, 현재 학과(부) 56개에서 다양한 실용학문과 순수학문을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최 총장은 “하지만 학과 56개 중 현실 직업세계에 잘 적응하고 경쟁력 있는 학과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학과들도 있어, 적지 않은 인하대의 인재들이 사회 수요에 적절히 부응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했다.

이로 인해 인하대의 대외 평가가 10여년간 지속적으로 하락했고, 그 원인이 인하대의 리더십 부족과 사회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인하대의 교육시스템에 있다고 덧붙였다.

최 총장은 ‘직업세계’와 ‘산업 수요’를 강조했다. “경쟁력이 없어 직업세계 적응하지 못하는 학과를 조정하는 게 곧 대혁신”이라고 선언했다. 사실상 취업률을 기준으로 학과를 가려내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최 총장이 밝힌 대혁신의 기본방향은 크게 세 가지다. 각 학과의 교과과정을 사회적 요구와 산업 수요에 맞춰 개편하고, 경쟁력 있는 학과의 정원은 유지하되 그 이외 학과 정원은 산업 수요가 있는 분야로 일부 조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조정한 정원은 사회 수요에 맞는 신설 융ㆍ복합대학으로 배치하고, 현재 예상하는 신설 융ㆍ복합대학의 학과는 4~6개 정도라고 밝혔다.

최 총장이 밝힌 대혁신 방안은 이미 밝힌 문과대학 구조조정과 다름없다. 문과대학 구조조정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하지만 교직원과 학생들의 반발은 커지고 있다. 아울러 기업들도 창조적인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인문학을 강조하는 시대에, 최 총장의 이 같은 구상은 시대흐름에 배치될뿐더러, ‘진리의 상아탑’이라는 대학의 존재 근거마저 훼손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학내에 확산되고 있다.

취업률 높은 건 총장도 알 텐데 왜

최 총장의 이러한 행보에 문과대학 구성원뿐만 아니라 상당수 교직원이 의아해하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인하대 구조조정의 목적은 교육부가 펼치는 ‘프라임 사업’ 선정에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프라임 사업에 선정되면 3년간 1년에 약 50억~150억원을 정부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다. 이를 위해 최 총장은 취업률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교육부가 발표한 2014년 취업률 조사에서 인하대는 3000명 이상 4년제 대학교 중 5위를 차지했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매해 4~5위를 기록했다.

인하대 대외평가가 떨어진 원인은 취업률에 있지 않다. 인하대는 국내 언론사 대학평가와 영국 QS(Quacquarelli Symonds) 세계대학평가에서 연구실적(교수 1인당 논문 인용 횟수, 학계 평가)과 졸업생 평판도(취업률, 졸업생 평가)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반면에 교육여건(교지와 건물 확보율, 기숙사 비율 등)에서 낮은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최 총장은 취임 당시 이 부분을 해소할 것이라 했고, 이에 교직원과 학생들의 기대치가 컸다.

그랬던 최 총장이 취업률을 문제 삼아 대학을 구조조정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물론 인문계열이 이공계열보다 취업률이 낮을 수 있다. 그렇다고 전체 취업률을 따지는 대학평가에선 문제되진 않는다.

결국 문제는 돈이다. 인하대는 송도캠퍼스 말고도 용현동 캠퍼스에 부족한 교육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자금이 필요했다. 하지만 재단으로부터 지원은 없었다. 개교 60주년 기념관조차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지었다.

최 총장은 ‘5만 동문 1년 12만원 내기 운동’으로 1년에 60억원을 모으자고 했다. 5만 명은커녕 5000명 모으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인하대총동창회는 다양한 경로로 이 사업을 지원하느라 다른 일을 벌이지 못할 정도였다.

인하대총동창회 관계자들은 “최 총장은 학교 발전을 위해 돈이 필요한데, 재단은 전혀 그럴 마음이 없다는 게 지금까지 일관된 흐름이다. 전임 총장은 송도캠퍼스를 일방적으로 변경하더니, 최 총장은 취임 초 아예 송도로 가지 않겠다고 했다. 송도캠퍼스에 투자할 계획이 없는 재단에 대한 배려나 다름없었다. 그러다 비판이 거세지자, 송도캠퍼스 부지 매입을 연기하겠다고 했다. 문제는 매입할 돈이 없어서였다”고 말했다.

익명 처리를 요구한 인하대 관계자는 “교수와 직원, 학생들은 최 총장이 재단에서 일정한 자금 지원을 이끌어낼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지원은 없었다. 재단 지원을 토대로 구상했던 사업이 물거품 됐다. 그 뒤 프라임 사업이 부각했다. 그런데 인하대처럼 이렇게 구조조정을 추진한다는 대학을 아직 못 봤다. 또, 구조조정을 해도 선정될지 미지수다”라고 덧붙였다.

정석인하학원, “구조조정은 총장의 독자 계획”

사립대학 운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학재단, 곧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정석인하학원이다. 그렇다면 문과대학 폐지를 골자로 한 구조조정 계획을 정석인하학원이 구상한 것일까?

정석인하학원 관계자는 “학교 행정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고, 구조조정을 지시한 적도 없다. 최 총장이 독자적으로 진행하는 사업이다”라고 선을 그었다.

정석인하학원 쪽 또한 최 총장의 계획과 리더십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다만, 최 총장이 취임 당시 학교발전계획을 제출한 만큼 일단 지켜보는 상태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사태엔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대학 구조조정을 비롯해 ‘총장 갑질’ 논란을 빚은 사건에 대해서 정석인하학원은 익히 알고 있었다.

최 총장의 갑질 논란은 <동아일보>가 지난 10월 23일 “IUT(=우즈베키스탄 타슈겐트 인하대학교)가 강사 부족과 실험실습 장비 부실은 물론 칠판도 없는 비좁은 강의실에서 65명이 수업을 받는 등, 부실 운영되고 있다”고 보도한 데서 비롯됐다.

최 총장은 같은 날 오후 시간강사 A씨를 총장실로 불러 1시간 20분가량 추궁했다. ‘문제가 있으면 나에게 이메일을 보내지 왜 언론에 제보를 했느냐’고 추궁했고, A씨는 ‘알리지 않았다’고 부인했으나, 최 총장은 추궁은 계속됐다.

A씨는 약 6개월간 IUT에 파견됐다가 돌아왔다. 최 총장은 A씨 말고도 다른 교직원 4명도 불러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하대는 “총장이 직원 세미나 일정으로 A씨를 야간에 만난 것이지, 제보자를 색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IUT의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 A씨 등을 만난 것으로 안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이 일은 순식간에 ‘인하대 총장 갑질’ 논란으로 확산됐다.

그리고 이번에 문과대학 학장에게 보낸 ‘언어폭력’ 논란 메일이 더해졌고, 지난 10월 학교 공간문제 해결과 구조조정 방안에 대해 학생대표자와 진행한 간담회에서 학생회를 자치기구로 인정하기보다 ‘훈시와 계몽’의 대상으로 대하면서 최 총장의 리더십은 또 훼손됐다.

정석인하학원 관계자는 “재단에서 자금을 지원해도 학교 입장에서는 만족하지 못할 수 있다. 총장이 추진하는 구조조정은 재단이 돈을 안 줘서 추진하는 게 아니라, 총장이 자기 계획에 따라 추진하는 것이다. 재단과 무관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총장 갑질 논란’에 대해서는 구체적 언급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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