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 이터널 선샤인

이터널 선샤인|미셸 공드리 감독|2005년 개봉, 2015년 재개봉

 
한국 개봉 10주년을 기념해 재개봉한 미셸 공드리 감독의 ‘이터널 선샤인’에 대한 관객 반응이 뜨겁단다. 적은 상영관 수에도 10년 전 관객 수를 훌쩍 뛰어넘었다니 가히 신드롬이라 할 만하다.

10년 전 한국에서 개봉했을 때 나는 극장에 갈 기회를 놓쳤고 결국 그해 겨울 DVD로 보았다. 그리고 ‘이터널 선샤인’은 내 인생의 로맨스영화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지금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지만) 영화고 드라마고 소설이고 지루하게 반복 변주되는 영원불변의 사랑 레퍼토리에 짜증이나 내던 까칠한 삼십대 싱글에게, 이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이유를 주었다.

그래서 재개봉 소식을 듣자마자 꼭 극장에서 보리라 생각했다. 10년 전 이 영화가 주었던 그 이유는 여전히 유효할까, 궁금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여전히 유효하다. 아니 더욱 더 뭉클하게 다가온다.

조엘(짐 캐리)은 출근길 기차역에서 충동적으로 행선지를 바꿔 몬탁행 기차를 탄다. 몬탁의 해변에서 파란 머리가 눈에 띄는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을 만나고, 우연찮게도 같은 기차를 탄 조엘에게 그녀는 적극적으로 호감을 표한다. 처음엔 부담스러워하던 조엘 역시 겨울 찰스강에서의 첫 데이트 이후 부쩍 호감을 느낀다. 조엘과 클레멘타인 사이엔 그린라이트가 켜진 게 분명하다.

그러나 따뜻한 그린라이트가 반짝이던 도입부가 지난 뒤 오프닝 크레딧이 뜨자마자 상황은 돌변한다. 알고 보니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헤어진 연인이었다. 대다수의 연애가 그렇듯 시간이 흐르며 처음의 설렘은 사그라지고 서로 권태와 염증을 느껴 헤어졌다. 클레멘타인이 자신에 관한 기억을 모두 삭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조엘은 자신도 클레멘타인에 대한 기억을 삭제하기로 결심하고 아픈 기억만을 지워준다는 라쿠나사를 찾아간다.

현재에서 과거로 조엘의 기억회로를 거슬러 올라가며 라쿠나사의 기억삭제프로그램은 클레멘타인과의 추억을 삭제한다. 조엘은 클레멘타인과 함께했던 행복한 기억과 마주하며 “제발 이 기억만은 지우지 말아 달라”고 절규하며 기억삭제프로그램을 피해 도망 다닌다.

연애의 진행을 거꾸로 되감는 이 영화의 화법은 현재의 지리멸렬한 관계 역시도 죽어도 좋을 만큼 행복했던 시간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어느 연애영화보다도 효과적으로 전한다. 점점 삭제되는 조엘의 기억회로를 보며 관객들은 자신이 지나온 짜릿한 연애의 기억을 생생히 되살릴 수밖에 없다. “그래, 나 그때 정말 행복했잖아”

그러나 그 기억이 절절하면 절절할수록 현재의 이별을 전제한 과거의 아름다웠던 기억은, 죽도록 사랑했던 연인도 결국엔 ‘그렇고 그렇게’ 끝나는 게 사랑이라는, 냉정하고 건조한 현실 또한 효과적으로 전한다.

영화의 원제는 ‘Eternal Sunshine of spotless mind’다. 직역하면 ‘무구한 마음의 영원한 햇빛’ 정도? 아무런 흠결 없는 무구한 마음일 때 우리는 영원을 직감할 만큼 아름다운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상대에 대한 모든 기억을 삭제한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몬탁에서 만나 다시 사랑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함께 시간을 통과하며 많은 경험이 쌓이다 보면 무구한 마음이란 불가능하다. 따라서 영원한 사랑 역시 불가능하다.

사람의 감정은 변하고 관계 역시 변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진실을 외면하며 영원한 사랑만이 아름답다고 믿는 이들에게, 클레멘타인의 입을 빌어 이 영화는 묻는다. “사랑은 결코 영원불변하지 않은데 어떻게 할 거냐”고.

기억삭제프로그램으로 조엘의 기억회로를 거슬러 무구한 마음이 된 나는 조엘의 입을 빌어 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hat’s OK!”라고. 변해도 괜찮다고. 인간이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것은 영원불변하기 때문이 아니다. 결국은 지리멸렬한 연애, 불행한 이별로 끝난다 하더라도, 오지도 않은 미래보다는 ‘지금 여기’에 솔직한 것. 그게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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