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람] 박정환 일러스트레이터

경인전철 부개역 근처 우동가게 ‘쇼동’에서는 ‘그림 마레’라는 팀에 속해 있는 일러스트레이터 4명이 무빙갤러리 ‘li’s show time’이라는 이름으로 전시를 하고 있다. 우동가게에서 작품전시회를 한다는 말을 지인한테서 듣고 인터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작가 4명 중 부평구 부개동에 살고 있는, 예명이 티타(Tyta)인 박정환(41) 작가를 우동가게 겸 갤러리에서 만났다.

박 작가를 만날 수 있었던 건 우동가게 사장의 도움 덕분이다. 작가의 연락처를 알 수 없어 가게로 전화했더니 친절하게 작가와 갤러리에 대한 설명을 해줬다. 이번 전시는 이달 17일에 끝난다. 하지만 약간의 휴지기 이후 곧이어 2회 전시회를 열 계획이란다.

우동가게에서 전시회를?

▲ 박정환 작가.
“이곳 사장님 엄청 동안이죠? 20대 후반으로 봤는데 30대 중반이래요. 항상 야구 모자를 쓰고 있어요. 면과 육수를 직접 만들어요. 한번은 큰 솥에 있는 육수를 제대로 맛이 안 난다고 통째로 버리더라고요. 가게 문을 닫고 늦은 시간까지 연구하느라 불이 켜져 있을 때가 많아요”

박 작가와 사장, 둘의 관계가 심상치 않았다. 어떤 사이일까?

“작년 초에 우동가게가 개업했어요. 제가 부개동에서 산 지 11년쯤 됐는데 처음에는 비싸보여서 이곳에 안 왔어요. 단골 중국집이 있었는데 어느 날 다른 손님에게 나갔던 음식의 국물을 재활용하는 것을 보고 놀라 발길을 끊었어요. 상대적으로 깔끔해 보이는 이곳에 아내하고 왔는데 가격 대비 맛도 좋고 푸짐해 둘 다 만족했어요. 그 후로 일주일에 한 번씩은 왔습니다”

속이 좋지 않아 좋아하던 술을 끊었던 박 작가에게 밀가루 음식은 부담이었지만 이곳 음식을 먹고 나서는 속이 편했단다. 음식을 먹기 위해 방문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가게 내부가 보였고 개업한 지 얼마 안 돼 다소 썰렁해 보이기도 해 그림 전시회를 제안했다.

“올해 3월이었어요. 원래는 밀가루 반죽으로 우동을 만드는 과정을 전시하려고 비워둔 공간이라고 하더라고요. ‘바빠서 인테리어를 못하고 있었는데’라며 제 제안에 흔쾌히 동의해주셨어요. 마침 친한 작가들과 만나는 자리가 있어서 우동가게에서 전시회를 한다고 얘기했어요. ‘무슨 말도 안 되는…’이라는 반응을 예상했는데 재밌겠다고 함께하자는 작가들이 생겨 저 포함 4명이 전시 준비를 해 7월 14일 갤러리 오픈식을 했습니다”

박 작가는 인터넷 신문사에서 문화부 기자로 활동한 적이 있다. 당시 유럽에서 가게와 갤러리를 합친 프로젝트가 시너지효과를 내 유행을 탄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었다. 일부러 돈을 내고 전시회를 가지 않더라도 편한 공간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그림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일러스트레이터에서 전시기획자까지

▲ 경인전철 부개역 근처에 있는 우동가게 ‘쇼동’의 내부. 곳곳에 일러스트레이터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대학에서 응용통계학을 전공했고 심리학 관련 공부를 한 박 작가는 학교를 다니면서 만화 관련 일을 했다. 만화계에서는 꽤 유명한 황미나 작가의 문하생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러다 잡지를 통해 데뷔했지만 출판업계의 경기가 나빠졌고 또 다른 인연으로 인터넷 신문에서 기자로도 일을 했다.

지금은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고, 우동가게에서 전시한 것을 계기로 전시기획자로도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이곳에 전시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알고서 다른 분들한테 연락이 옵니다. 인테리어를 고민하고 있는 가게 사장들이 우동가게를 직접 와서 보고 특이하고 좋다고 말합니다. 저희 ‘그림 마레’팀은 일회성으로 끝내지 않고 작품을 바꿔가면서 전시회를 계속할 생각이에요. 이곳에 사람들이 와서 보면 ‘이곳은 언제나 그림이 있네’라는 생각을 하게 계속하고 싶어요”

박 작가는 전시회 오픈식을 하고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해 혼자 가게를 방문해 손님인 척 앉아있었다. 그때 머리에 흰서리가 두툼하게 내려앉은 늙은 아들과 어머니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차림새를 보아하니 밭일을 하고 온 것 같았다. 가장 싼 우동 두 그릇을 시킨 노인 둘은 그제야 그림이 보였는지 그림들을 둘러보더니 ‘이런 데도 그림이 있네. 좋다’고 했다. 박 작가는 자신의 기획 의도대로 되고 있다고 느껴 기분이 참 좋았다.

“평소 시간을 일부러 내서 전시회에 가지 못하는 분들한테 생활 속에서 그림을 제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전시회를 시도한 거였거든요. 이 얘기를 전시회에 참가한 다른 작가들한테도 전했더니, 다들 좋아하시더라고요”

어떤 작품이든 보는 이의 감정 일으켰다면 모두 예술

▲ 우동가게 ‘쇼동’의 외부 모습을 박정환 작가가 그린 작품이다. ‘쇼동’ 내부에 다른 작품들과 전시돼있다.
전시회에 참여한 일러스트레이터 4명의 예명은 ‘간세’, ‘빅트리’, ‘프리실라’, ‘티타’다. 모두 예술적이지만 어렵게도 느껴진다. 박 작가의 예명인 티타는 무슨 속뜻을 갖고 있는 걸까?

“만화 작가로 활동할 때 예명이 ‘야차’였는데 어떤 평론가가 이름이 무섭다고 하더라고요. 화실에서 같이 일하던 형들도 밝고 명랑한 것으로 바꾸라고 해서 고민했죠”

자신의 이름에 나무(木)와 물(水) 기운이 많지만 금속 기운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 금속 중에서 가장 센 티타늄의 앞 글자를 따 ‘티타’라고 정했다. 그는 예명만큼이나 생소한 일러스트 세계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줬다.

“자기가 그리고 싶거나 표현하고 싶은 것을 손이 아닌 디지털로 하는 것을 넓은 의미로 일러스트라고 합니다. 광범위하죠. 요즘은 게임 일러스트가 활발한데 상업적으로도 많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컴퓨터 기술이 발달했다고는 하나 손으로 그린 그림보다 생동감은 떨어지지 않을까? 박 작가는 표현양식이 다를 뿐이지 손에서 나오는 것은 같다고 답했다.

“디지털 나름의 매력이 있어요. 같은 작품을 계속 생산할 수 있고, 부분을 떼서 다른 작품에 응용할 수도 있습니다. 수작업으로 완성한 작품은 하나지만 디지털은 무한생산이 가능해 작품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람들이 어떤 작품을 봤을 때 받는 느낌은 디지털이든 아니든 큰 차이는 없을 겁니다. 길거리 모퉁이에서 본 낙서도 어떤 감정을 일으킨다면, 그게 예술이죠”

일러스트의 세계도 다양하다. 박 작가가 전시한 작품만 보더라도 유화의 효과를 줘 우동가게 전경과 우동가게 사장을 그렸다. 그는 일러스트로 수묵화를 공부하기도 했다.

대안 전시공간으로 신인들의 전시 공간 마련

“서울 종로나 북촌에는 음식점과 갤러리가 같이 있는 건물이 많습니다. 서울 불광동에 빵과 커피를 파는 공간이 있는데 전시회 요청이 와서 얘기 중에 있어요. 이런 공간이 많아진다면 그림을 어렵게 생각했던 사람들이 편하게 보면서 흥미를 갖지 않을까요? 그림의 종류도 여러 가지인데, 사람들한테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풍경화와 인물화도 있지만 금방 다가서기 힘든 형이상학적인 작품을 만드는 작가도 많아요. 하지만 그들한테는 전시공간이 없어요. 그런 작품을 전시하는 곳을 대안공간이라고 얘기하죠. 부천 송내에도 ‘갤러리 아트포럼’이라는 곳이 있어요. 작가들끼리 돈을 내서 가정집을 리모델링해 자기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는데, 다른 곳에서도 그런 시도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우동가게 전시회가 본인이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사람이 좋아해줘 기분이 좋다는 박 작가는 중장기적으로는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과 기회가 부족한 신인들한테 보탬이 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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