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 특종 : 량첸살인기

특종 : 량첸살인기|노덕 감독|2015년 개봉

광고주의 심기를 건드린 보도로 해고 위기에 몰린 케이블 뉴스채널 기자 허무혁(조정석). 설상가상으로 별거 중인 아내 수진(이하나)은 이혼을 요구한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했던가?

실의에 빠진 허무혁에게 어눌한 한국말을 하는 한 여성으로부터 제보 전화가 오고, 제보자를 만난 허무혁은 서울을 공포의 도가니에 몰아넣은 연쇄살인사건과 관련한 일생일대의 특종을 터뜨린다.

그러나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할 리가 없다. 허무혁이 단독 입수했다고 철썩 같이 믿고 대서특필한 연쇄살인범의 친필 메모는 사실은 소설 ‘량첸살인기’의 한 구절이었을 뿐이고, 연쇄살인범 용의자인줄 알았던 이는 극장에서 살인마를 연기하는 연극배우였던 것. 후속보도를 기다리는 보도국의 재촉과 제보자를 알려달라는 경찰의 압박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연애의 온도’의 노덕 감독이 두 번째로 연출한 ‘특종 : 량첸살인기’(이하 특종)는 주인공 허무혁을 일약 스타기자로 만든 가짜 특종이 만든 해프닝이 또 다른 해프닝을 낳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실제 현실에서도 있음직하기에 무서운 블랙코미디다.

 
진실을 보도하는 것이 사명인 기자가 주인공이고, 방송국이 무대이지만, 역설적이게도 ‘특종’은 과연 ‘진실이 있긴 한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만드는 영화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거짓말을 한다. 주인공 허무혁이야 제보자의 말만 믿고 실수로 거짓보도를 했다 치자.(물론 실수를 덮으려다보니 계속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게 되지만.) 그러나 거짓말을 하는 이는 허무혁뿐이 아니다.

방송국은 허무혁의 말이 진실인가 아닌가보다, 다른 매체보다 빠르게 특종을 보도해 시청률을 올리고 그것으로 광고수익을 따낼 것에만 혈안이 돼있다. 오히려 솔직하게 자신의 실수를 고백하며 괴로워하는 허무혁에게 백 국장(이미숙)은 코웃음을 치며 말한다. “진실? 그들이 진짜라고 믿으면 그게 진실인 거야”

경찰은 또 어떤가. 허무혁의 말에 미심쩍은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님에도 수사의 허점을 덮기 위해 허무혁의 말대로 사건을 마무리지으려한다. 그 와중에 연쇄살인범은 허무혁의 거짓보도를 대본 삼아 완전범죄를 꿈꾸고, 결국은 국민영웅의 반열에 오른다. 여기에 허무혁에게 이혼을 요구했던 아내 역시 감추고 있던 거짓말이 있다. 이건 뭐, 모든 등장인물이 거짓말을 ‘누가 누가 잘하나’ 대회라도 연 꼴이다.

거짓말의 첫 포문을 열었던 허무혁 역시 끝내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 진실을 밝힌다면 허무혁은 특종을 터뜨린 스타기자에서 기레기(=쓰레기 기자)로 추락할 것이 분명하기도 하거니와, 진실이 밝혀졌을 때 등장인물 중 그 누구도 득을 볼 사람이 없다. 허무혁의 거짓은 모든 이를 위한 최선인 셈이다. 이 영화가 나름 해피엔딩일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진실이 아니라 거짓 덕분이었다.

각자가 선택하고 믿는 것이 곧 진실이 되는 세상,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다. 보도는 클릭 수 경쟁으로 진실과 멀어진 지 오래지만, 또 대중은 연쇄살인범을 국민영웅으로 칭송하는 영화 속 네티즌들처럼 그런 기사에 광클릭으로 화답하며 믿고 싶은 이야기를 진실이라 호도한다.

영화 ‘특종’의 애매한 해피엔딩은, 관객들에게 ‘진실 따위는 없지만 모두 좋았으니 됐잖아?’ 하고 비아냥대는 것만 같다. 마치 진실은 없지만 친일과 독재의 역사마저도 아름답게 포장해 대한민국에 대한 자랑스러움을 심어주는 역사교과서가 ‘올바른’ 교과서라 말하는 그네들처럼. 정말 진실 따위는 필요 없고, 그냥 좋다고 하면 옳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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