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구병 보리출판사 대표, 인천서 인문학 특강

“진정한 연대는 생명연대라고 하는데, 나무와 사람은 생명연대를 하고 있다. 생명이 우리말로 하면 목숨이다. 목숨은 목으로 들이쉬고 내쉬는 숨이다. 나무와 우리는 목숨을 주고받는 사이다. 나무가 내쉬는 숨에 섞여있는 숨을 우리가 들이쉰다. 나무 한 그루 외진 곳에 서있더라도 우리와 나무 사이에는 생명연대라는 중요한 연대가 맺어졌다”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인문도시 지원 사업으로 10월 26일 오후 3시 계양구청 대강당에서 열린 인문학 특별 강연에서 윤구병(73ㆍ사진) 보리출판사 대표가 강조한 말이다.

윤 대표는 지난봄에 간암 말기 진단을 받았지만 병원치료를 받지 않고 있다. 그는 “인생 칠십 고래희(古來稀)니 이 정도 산 것도 드문 일이고 징글맞게 오래 살았기에 이제는 병이든 교통사고든 이 나이에 죽으면 다 자연사다”라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아래는 강연 내용을 요약해 정리한 것이다.

나무의 목숨 헛되지 않는 책을 만들어야

▲ 윤구병 보리출판사 대표.
보리출판사는 1988년에 문을 열었다. 그동안 만든 책은 300여종이다. 파주 출판단지에 있는 어떤 출판사는 한 해에 500권이 넘는 책을 만든다는데, 우리는 최근에야 300종을 넘겼다. 우리 직원들은 일주일에 30시간밖에 근무하지 않는다.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하는데, 전 세계에서 근무시간이 가장 짧다.

근무시간이 짧다는 것은 책을 천천히 만든다는 것이고, 게으르다는 것이다. 책 한 권을 묶어낼 때 나무 한 그루 베어낼 가치가 있는지 고민한 후, 만들자는 확신이 들 때 출판한다. 책을 읽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일깨우게 돼 나무를 심을 마음을 갖게 하는 게 중요하다. 그게 아니면 우리와 생명연대를 하는 나무의 목숨을 헛되이 하는 것이다.

세월호 침몰의 책임, 나한테도 있다

지난해부터 중처럼 머리를 깎았다. 2014년 4월 16일, 많은 학생이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아 죽었다. 나도 책임이 있다. 팽목항에서 머리를 깎고 그 뒤로 달마다 16일 즈음 머리를 깎는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들의 슬픔을 대신할 순 없지만 3년간 동참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대학교수로 15년간 일했다. 세상에 정답이 하나라고 어른들은 말한다. 나도 그런 교육을 받아왔고 가르쳐왔다. 만일 단원고 학생들이 배가 기울어서 몸을 가눌 수 없는데 ‘선실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라’는 방송을 듣지 않았다면 본능적으로 뛰쳐나와 살았을 것이다. 어른의 말을 정답으로 알았기에 많은 아이가 죽었다. 그 탓의 일부가 나한테 있다고 생각했다.

정답이 하나뿐인 제도교육을, 12년과 대학 교육까지를 합한다면 20년 가까이 또는 더 넘게 그런 교육을 받는다. 그러면 우리 의식이 획일화돼 판단력도 창의력도 생기지 않는다.

의식이 획일화되면 무서운 경험을 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는 자신의 말이 정답이라며 유대인을 탄압했고 그렇게 국민들을 세뇌시켜 유대인 600만명을 거리낌 없이 죽였다. 정답이 하나뿐인 세상은 그렇게 무섭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요즘 무슨 일이 벌어지려하는가? 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해 정답이 하나뿐인 교육을 받으라고 강요하고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일하는 교육부 공무원이 그런 일을 할 권리가 없다.

행복해지고 싶어 농사를 짓기 시작

여러 직업이 있었지만 불리고 싶은 직업은 농사꾼이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뒤에 ‘철학자’라는 이름을 붙여 나를 ‘농부철학자’라고 한다. 2013년에 ‘철학을 다시 쓴다’라는 책을 냈더니,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철학ㆍ윤리학ㆍ심리학 부분 최우수 교양도서로 선정했다.

예전엔 유식한 척, 얘기를 어렵게 했다. 학생들도 이해를 못했고, 그런 학생들에게 실망해 행복해져야겠다는 생각에 15년 전 전북 부안 변산에 농사지으러 갔다. 평생 농사만 지은 할머니가 쉽게 얘기하는 것을 듣고 말버릇을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다.

교육이 백년지대계라고 하는데, 틀린 말이다. 다른 생명체는 교육받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는데 사람은 교육받지 않으면 먹고 입고 자는 어느 것 하나 혼자 해결할 수 없다. 교육의 한자어는 가르칠 교(敎), 기를 육(育)이다. 교육의 목표는 스스로 손발을 놀려 제 앞가림을 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또한 교육은 서로 도우면서 살 힘을 길러주는 것이다. 잊지 말아야한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교육을 받아왔는가? 내가 그런 교육을 시켜오지 못했다. 우리는 제 앞가림도 못하고 서로 도우려는 생각도 못한다.

우리 세대는 죄를 많이 지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오염되지 않은 땅과 물과 공기를 더럽혔다. 게다가 평균수명도 길어져서 여든 살 넘게 산다. 후손한테 물려줘야할 풍요로운 자연을 망치고 아무것도 물려줄 게 없는데 나이만 먹었다.

맥아더가 폭력적으로 많은 사람을 죽여 개인적으로는 좋아하지 않지만, 그의 말 하나는 좋아한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나는 병으로 죽는 게 아니라, 다만 사라질 뿐이다.

◆ 인문도시 지원 사업 개요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은 인문도시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지역ㆍ세대적 갈등 문제를 문화역사적 맥락과 인문학적 가치관으로 해소해보고자 하는 취지로 전국 50여개 대학에서 진행하고 있다.

인천에서는 경인여자대학교가 중심이 돼 인문주간행사위원회를 만들어 ‘인문학, 미래를 향한 디딤돌’이란 주제로 10월 26일부터 11월 1일까지 진행했다. 인문주간행사위에는 계양구ㆍ청정환경만들기주민추진협의회ㆍ계양산반딧불이축제조직위원회ㆍ계양평화복지연대ㆍ사)전국지역아동센터인천시협의회ㆍ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가 함께 했다.

이번 행사는 특강 외에도 계양산 둘레길 걷기와 생태 강의, ‘정호승 시인과 나무와숲’의 인문학 콘서트, 참여와 소통의 공동체 마당 등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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