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 마션(The Martian)

마션(The Martian)|리들리 스콧 감독|2015년 개봉

 
NASA(나사: 미연방항공우주국)의 아레스 화성 탐사대는 화성에서 거대한 모래폭풍을 만난다. 폭풍에 중심을 잃고 날아간 탐사대원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가 실종되고, 팀원들은 마크를 찾는 일을 포기하고 화성을 떠난다. 그러나 팀원들이 모두 죽었다고 포기했던 마크는 살아있었다. 팀원들이 자신의 생존을 알지 못한 채 떠났다는 것을 깨달은 마크는 어떻게든 지구로 돌아갈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크의 ‘화성 표류기’이자 NASA와 아레스 탐사대의 ‘마크 대원 구하기’가 시작된다.

블록버스터도 우주SF도 전혀 관심 밖인 영화 취향을 가진 내가 이 영화를 본 건 순전히 ‘마션’이라는 영화 제목 때문이다. 화성인이라니! 태양계에서 지구와 가장 가까운 행성이지만, 그래서 인간이 다른 행성에 비해 조금 더 알아낸 지식이 많긴 하지만, 여전히 미지의 땅일 수밖에 없는 화성. 사고로 어쩔 수 없이 낯선 땅에 표류하게 된 인간이 낯선 세계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여주려나? 적어도 낯선 세계를 통해 인간이 자신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보여주지 않을까? 인간에게 대놓고 화성인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마션’은 그런 영화가 아니다. 까놓고 말하면 화성, 즉 낯선 세계에 대해서는 일말의 관심조차 없다. 그저 마크라는 인간과 지구의 NASA, 그리고 마크를 구하기 위해 다시 화성으로 방향을 돌린 팀원들, 그들이 자신 앞에 놓인 난관을 지구에서 습득한 지식으로 하나씩 하나씩 해결할 뿐이다.

용케도 식물학자인 마크는 자신의 식물학 지식을 이용해 화성에서 감자를 재배해 생명을 부지한다. (화성은 대기층이 얇아 방사능 덩어리라던데 그 흙에서 자란 감자를 먹고 마크가 아무 탈이 없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지 않기로 하자.) 뒤늦게 위성사진으로 마크의 생존 사실을 알게 된 NASA는 9개월은 걸려야 만들 수 있는 보급선을 6개월 만에 만들어 마크에게 보내기로 한다. (3개월이라는 기간 감축이 얼마나 많은 연구자와 노동자를 착취해야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지 않기로 하자.)

마크가 생존 가능한 시간에 맞춰 아레스 탐사대에 보급선을 보내기 위해 중국은 국가기밀이었던 로켓 발사 기술을 기꺼이 NASA에 제공한다.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가 국제정세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때, 이게 가능한 설정이냐는 질문은 하지 않기로 하자.) NASA보다도 더 늦게 마크의 생존 사실을 안 아레스 탐사대 팀원들은 주저 없이 마크를 구하기 위해 방향을 돌리고, 화학자인 팀원의 지식을 이용해 화성 대기권 밖에서 아이언맨이 되어 날아온 마크와 리본체조 같은 공중부양 랑데부에 성공한다. (어떻게 단 한 명의 팀원도 마크를 구하기 위해 방향을 돌리는 것에 갈등하지 않고 만장일치 찬성할 수 있는지, 이타심과 동지애야말로 NASA에서 우주인을 선발하는 최우선 기준인 건지는 궁금해 하지 않기로 하자.)

아무튼, ‘마크가 화성에 표류했다’는 문제가 주어지자마자 마크와 아레스 탐사대 팀원들, NASA, 심지어 중국까지도 자신이 가진 매뉴얼을 이용해 문제 풀기에 돌입하고, 그 과정은 조금의 갈등도 막힘도 없이 진행된다. 결국은 미션 클리어! 그게 끝이다.

우주 앞에 서면 인간은 작아진다. 우주를 사고한다는 것은 내가 전부라 여겼던 나, 더 나아가 지구, 더욱 더 나아가 태양계마저도 한 점 먼지 같은 존재임을 깨닫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지 크기의 작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알고 있던 지식과 신념이 부분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 과학이란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모르는지 깨닫는 과정이라 하지 않던가.

그러나 ‘마션’에서 우주는 ‘무엇을 모르는지 깨닫게 하는’ 배움의 공간이 아니다. 수소(H)와 산소(O)가 만나면 물(H₂O)이 되니 마크가 화성에서 감자도 키울 수 있듯, 인간이 지구에서 습득한 지식을 실행하면 공식대로 실현되는 모든 조건이 갖춰진 실험실일 뿐이다.

허나 어쩌랴. 내가 살고 있는 지구는 실험실이 아니어서 숱한 변수에 뒤틀리고 꼬여서 공식대로 답이 나오지 않는 곳인 걸. 심지어 화성의 마크에게는 무한대로 제공됐던 청테이프와 비닐 살 돈도 없는 걸.

화성까지 다녀왔는데 아무 것도 깨달은 게 없다니, 젠장,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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