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락기 강화고려역사재단 연구위원
작년 봄에 들끓다 잠잠해졌나 싶었던 중ㆍ고교 국사교과서 발행방식을 둘러싼 논란이 최근 국회 국정감사의 현안으로 떠올랐고, 여러 대학과 학회의 역사연구자들은 국정 국사교과서 도입에 반대하는 의견을 발표하고 있다.

나라만 그런가, 했더니 인천에서는 한 지역 언론이 1945년 10월 7일 창간된 ‘대중일보(大衆日報)’의 후계지로 자임하며 창간일과 지령 승계를 공포한 것을 두고 다른 지역 언론과 관계자들 사이에서 문제제기가 계속되고 있다.

이렇게 역사와 뿌리에 관심이 깊고도 넓게 퍼져 있다면 역사연구자 입장에서 당연히 기뻐해야하겠지만, 언론 보도로 접하는 주장을 보면 역사에 미안할 따름이다. 사실 자기 입맛에 맞게 과거를 기억하고, 그렇게 기억한 과거가 마치 사실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개인이나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왜 이런 논란이 계속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검ㆍ인정 국사교과서들의 일부 기술을 둘러싼 문제는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됐다. 일부 기술을 집필자의 정치성향 문제로 보아 논란을 거듭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런 주장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검·인정 교과서는 집필자들이 멋대로 자기주장을 담아 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교육부의 집필지침에 따라 작성해야하고, 작성된 내용은 교육부에서 위촉한 심사위원회의 검정과 인정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검ㆍ인정된 교과서에 문제가 있다면 이 제도를 설계하고 운영한 교육부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만약 ‘좌편향’된 교과서로 공부한 학생들이 ‘자학적인 역사관’을 갖고, 5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온갖 굴곡과 역경을 넘어 현재에 이른 우리 민족사를 폄훼하게 됐다면 그 교과서를 교과서로 인정해 유통한 교육부 관료들은 역사의 죄인이나 다름없다. 국민과 국가가 부여한 막중한 권한과 의무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진보진영’ 일각에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문제는 있다. 명백한 사실관계 오류는 얼마든지 비판하고 수정을 요구할 수 있겠지만, 교육부의 집필지침과 검ㆍ인정 과정을 ‘제대로’ 거쳤다고 전제한다면 역사적 사건의 인식이 다르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매도해서는 곤란하다. 검ㆍ인정제도가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의 한 언론사가 <대중일보>를 자기 신문의 뿌리라 주장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워낙 복잡한 제호 변경, 언론 통ㆍ폐합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른 것이 해방 후 인천의 언론 역사라서 깊이 공부하지 않으면 헷갈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2010년 9월 1일 창간 50주년 기념식을 열었던 그 언론사가 2015년 10월 7일 창간 70주년 기념식을 여는 것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혹시 그 사이에 새로운 자료를 발견해서 기존 해석이 명백히 잘못된 것이었다면 그런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밝히고 지역 언론계에서 토론하며 정리해가면 될 일이다.

이러한 일들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 막연한 짐작이지만 ‘힘’을 과신하는 것에 있는 건 아닐까? 과신한 힘을 바탕으로 내 ‘인식’을 모든 이의 ‘인식’으로 만들어야하고, 만들 수 있다는 자기 확신에 빠져 있기 때문은 아닐까? 지금 대한민국 사회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자 하는 것인가, 교만하게 역사를 재단하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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