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이 만난 사람] 이안나 아이돌봄마더센터 자원활동가

‘갑자기 일이 생겼을 때, 아이가 아파 학교에 가지 못하는데 일을 나가야할 때, 우리 동네 안전안심 아이돌봄마더센터가 함께합니다’

한국여성재단의 후원을 받아 인천여성회 연수지회와 인천영유아통합지원센터 시소와그네가 함께하는 프로젝트 아이돌봄마더센터(이하 마더센터)의 홍보 전단지 내용 일부다.

마더센터에선 이웃에 사는 엄마가 교사가 돼 아이들을 돌본다. 안전한 마을과 건강한 지역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힘을 보태고자 시작한 이 마더센터에 자원활동가로 함께 하고 있는 이안나(47)씨를 만났다. 이씨의 막내아이도 이 마더센터를 이용하고 있다. 말 그대로 이웃 엄마이자 마을교사인 것이다.

복지 수혜자 아닌, 사회 구성원으로 서다

▲ 이안나 아이돌봄마더센터 자원활동가.
“연수구영유아통합지원센터 시소와그네를 연수구가 지난해 10월 폐쇄했어요. ‘이대로 그만 둘 수 없다. 어떻게든 살려보자’는 생각으로 엄마들이 새로 만들었죠. 인천여성회 연수지부에서 많이 도와줬어요”

연수구영유아통합지원센터 시소와그네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출연해 만든 기관으로, 연수구는 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업무협약을 맺어 2012년부터 3년간 지원했다. 그런데 지난해 이재호 구청장 취임 후 연수구는 시소와그네를 육아종합지원센터로 흡수ㆍ통합해 기존 기능을 살리겠다고 했으나, 시소와그네를 폐쇄했을 뿐 그 기능은 살리지 않았다.

2013년 10월 한국사회복지행정학회 학술대회에서 이봉주 서울대 교수는 “연수구영유아통합지원센터의 성과는 시혜 대상자가 주체로 거듭난 일로, 이제껏 우리 사회에 없었던 성과”라고 평가한 바 있다.

서울에서 태어난 이씨는 결혼 후 인천으로 이사 와 20년째 살고 있으며, 딸 셋을 뒀다. 2008년 늦둥이를 낳았고, 숫기가 없어 또래 엄마들을 사귀기가 어려워 고심하고 있던 차에 시소와그네를 알리는 홍보물이 집으로 왔다. ‘정보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찾아간 그곳은 신선했다.

“다른 데와 달랐어요. 엄마 또는 엄마와 아이와 함께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일방적인 수혜나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직접 참여하는 프로그램들이었죠. 예를 들어 ‘나눔 교육’이나 ‘교육 중재’ 같은 것들입니다”

시스템을 만들어주면 엄마들이 행사의 주체로 직접 나선다. ‘나눔 교육’은 말 그대로 나눔이 무엇인지, 왜, 어떻게 나누는지를 아이들에게 설명하고 실제로 나눔을 실천하게 교육하는 것을 말한다. ‘교육 중재’는 엄마들이 저소득층 가정을 방문해 아이들과 색종이로 만들기 놀이를 하며 아이들이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표현하게 유도하거나 주먹밥을 만들어 나눠먹는 프로그램이다.

우리가 느낀 감동, 함께 나누고 싶어

전국적인 성공 사례로 회자됐음에도 불구하고 시소와그네는 2년 전부터 존속의 불안을 느꼈다. 연수구는 재작년엔 다른 단체와 흡수ㆍ통합 논의로 엄마들을 불안하게 하더니 작년에는 급기야 폐쇄한 것이다. 이용자인 엄마들은 연수구청 앞에서 기자회견ㆍ집회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항의했다.

“지금 마더센터에서 하려는 것 모두 그때 배운 거예요. 아이와 부모가 주체가 돼 활동한 소중한 경험이 있어서 가능했던 거죠. 나를 성장하게 했던 기관이 일방적인 행정으로 없어진다고 해 가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몰랐던 엄마들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어요. 싸움이 쉽지 않았지만 없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소와그네가 다른 기관과 달랐다는 말을 강조한 이씨에게 구체적으로 무엇이 달랐는지 물었다.

“가족 같은 분위기였어요. 센터에 오면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춘기를 겪고 있는 큰 애들에 대해 복지사들과 상담도 하고 엄마들끼리도 네 일, 내 일 가리지 않고 서로 도우며 교감을 넓혀갔어요”

엄마들은 일방적인 행정으로 일관하는 구청장에게 항의하기도 했고, 센터가 폐쇄된 후에도 자발적으로 예전의 이름을 고수해 비영리민간단체 ‘시소와그네’를 만들어 사업을 이어갔다. 자신들이 받은 감동을 다른 가정에도 전하기 위해서였다.

여성과 아이를 위한 자발적 공동체

▲ 아이돌봄마더센터 자원활동가들이 아이들이 만드는 요리를 도와주고 있다.
세계적으로 ‘마더센터’라는 이름의 조직이 있다. 1980년대 독일에서 처음 생겨난 이 조직은 지역의 아이들을 돌봄으로써 가족과 이웃 공동체를 살리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긍정적인 평가가 확산되면서 유럽과 아프리카, 북미 등으로 퍼져나갔다.

“다른 나라의 마더센터 성공 사례를 착안해 프로젝트 이름을 그렇게 지었어요. ‘마더’인 엄마들이 직접 아이들을 돌보며 힘이 돼주는 ‘센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저소득층 아이들을 돌보는 기관이 여럿 있지만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편하게 아이들을 맡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자 했습니다”

마더센터를 이용하는 아이들의 연령을 제한하지 않았다.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누구나 이곳을 이용할 수 있게 열어뒀다. 주 5일 운영하는 이곳은 요일별로 테마와 하루를 온전히 책임지는 담당자를 정했다. 엄마들이 자원해 한두 명씩 돌아가며 마을교사로 해당 요일에 상근한다.

“월요일에는 ‘동네 한바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이 살고 있는 동네를 돌면서 그곳에 어떤 게 있는지 알아보고, 마을지도를 만들기도 해요. 화요일에는 마을교사나 재능을 가진 엄마가 엄마교사로 함께 해 양초나 비누공예, 공동체놀이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수요일 ‘책 놀이터’에선 주제를 정해 책을 읽고 그 느낌과 생각을 나누기도 하고, 목요일에는 ‘똑똑똑, 안녕하세요?’라는 주제로 아이들이 직접 만든 음식을 이웃 주민들에게 인사하고 전해주기도 한다. 금요일에는 실내외에서 고무줄놀이 등 전래놀이를 하며 신나게 논다. 이안나씨는 목요일 담당 마을교사다.

“처음에는 동네 주민들이 무엇을 팔거나 돈을 요구하는 것으로 착각해 꺼리는 눈빛이었어요. 마더센터와 프로그램을 설명하면 웃죠. 이제는 반갑게 맞아주기도 하고, 아이들은 서로 음식을 건네려고 귀여운 다툼을 하기도 합니다”

이씨는 인터뷰를 끝내고 목요일 프로그램을 준비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이내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다섯 살 아이부터 초등학교 3학년 정도로 보이는 듬직한 형들이 같이 모여 오늘의 요리인 고구마 만두를 만들었다. 만두 피 안에 넣을 고구마며 피자, 견과류 등을 집어 먹느라 정신없는 아이와 고구마를 곱게 으깬 아이 등, 전체적으로는 다소 산만해 보이기도 했지만 시종일관 따뜻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이씨를 도와 자원봉사를 자청한 엄마 두 명이 함께 했다.

올 11월까지 시범사업으로 운영하는 마더센터는 더 많은 이들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 자원활동가들이 나름 홍보했지만 아직 미흡하단다.

“아이들을 돌보고 엄마들이 갖고 있는 재능을 나누며, 오다가다 차 마시고 수다 떨 공간으로도 이용할 수 있는 이곳에 많은 분이 찾아오셨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이 여기에 오면 맘껏 놀면서 친구들을 사귀니까 좋아해요. 아쉬운 건 아직도 홍보가 부족해 더 많은 사람이 함께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여기까지 왔네요. 이 공간이 아이들과 엄마들에게 편한 공간으로 잘 자리 잡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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